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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부터 李까지 네명 대통령의 '킹메이커'...'민주 역사' 이해찬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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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장관 시절 '이해찬 세대' 별칭
노무현 정부서 실세 총리로 국정 주도
이 대통령의 정치 멘토...위기 때 방패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25일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진보 진영의 역사 그 자체였다. 네 명의 더불어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집권을 주도한 '킹메이커'였다. 정치 상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시대를 앞서가는 기획력을 가진 민주 진영 최고의 전략가였다. 7선 의원 출신에 교육부 장관과 국무총리, 민주당 대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라는 화려한 이력이 고인의 삶을 함축한다.

◆대선 판세 분석하는 뛰어난 기획력

고인의 정치 이력은 민주당 역사의 압축판이다. 정치 입문 후 대선 판세를 분석하는 뛰어난 기획력으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고, 그 공로로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며 '이해찬 세대'라는 별칭을 낳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인 고인은 실세 총리를 맡아 국정 운영을 주도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당 대표를 역임한 고인은 이재명 정부서 민주평통 2인자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이 25일(현지시간) 베트남 출장 공무 수행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민주평통]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양 면장 출신인 부친 이인용 씨 아래서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 덕수중·용산고를 졸업한 뒤 1971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자퇴한 뒤 다음 해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으로 다시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 민주화 투쟁에 투신했다. 1972년 10월 유신이 결정적 계기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집행유예로 1년 만에 출소했다. 1978년 서울대 인근의 신림동에 광장서적을 열었고, 다음해 출판사 돌베개를 창업했다. 

1980년 복학해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신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것은 입학한 지 14년 만인 1985년이었다.

◆초선 때부터 정책·기획 밝은 실력파로 통해 

대학 시절 고초를 겪은 고인은 정치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정계 입문은 DJ의 권유로 이뤄졌다. 1988년 13대 총선 때  서울 관악을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와 김종인(민주정의당·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김수한(통일민주당·전 국회의장) 후보를 꺾고 화려하게 정치에 데뷔했다. 초선 시절부터 정책과 기획에 밝은 실력파로 통했다.

특히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부 관계자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한 번 걸리면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공무원들 사이에선 '저승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5공 청문회에서 송곳 질의로 정치인 이해찬의 존재감을 알렸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대선 판세를 정확히 읽어 DJ 당선에 기여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DJ 정부서 만 45세에 초대 교육부 장관에 발탁됐다. 정치적 소신과 철학이 강한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해 전교조 합법화와 교원 정년 단축, 성과급 제도 도입, 야간 자율학습 강제 금지, 학생 체벌 가이드라인 마련 등 고강도 교육 개혁을 단행해 논란을 불렀다. '이해찬 세대'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이 25일(현지시간) 베트남 출장 공무 수행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의 사진. [사진=이해찬 캠프 페이스북]

노무현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인 고인은 '실세 총리'에 올랐다. 대개 허수아비였던 역대 총리와는 다른 말 그대로 힘이 실린 총리였다. 국회 대정부 질문 때 야당 의원의 공세성 질의에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설전을 벌여 '버럭 총리''버럭 해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4년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 공세에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고 받아쳐 화제가 됐다.

고인의 이 같은 직설 화법은 종종 구설수를 낳았다. 2012년 생방송으로 진행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인터뷰를 계속 이렇게 하실 겁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려 논란을 불렀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년 집권 플랜'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민주당 대표가 됐다. 민주당의 사령탑으로 치른 2020년 21대 총선에서 총 180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다. 오늘날 민주당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권리당원 권한 강화가 처음으로 이뤄진 것은 그의 작품이었다. 당 지도부 선출 시 권리당원 의사를 반영한다는 고인의 공약은 최근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가치를 1대 1로 하는 1인1표제의 뿌리가 됐다.

◆성남시장때부터 정치 자문 구한 '李대통령의 멘토' 

이재명 대통령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당내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정치 자문을 구한 멘토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 때마다 방패 역할을 했다. 2018년 친문(친문재인)계가 '혜경궁 김씨' 사건을 빌미로 이 대통령을 향해 탈당 압박을 하자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공격을 차단했다. 외곽 조직을 앞세워 이재명 대세론의 씨앗을 뿌린 것도 고인이었다.

가까운 정치인으로는 고인의 보좌관을 지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민주당의 정태호·김현·이해식·최민희 의원등이 꼽힌다. 이들 의원이 고인이 쓰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베트남 현지로 달려간 것도 이런 인연에서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옥 씨와 1녀가 있다.

leejc@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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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호주에 모가미급 11척 수출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이 호주 해군 차세대 범용호위함(SEA 3000) 사업의 최종 사업자로 공식 확정되면서, 모가미급 개량형 11척을 공급하는 대형 계약을 따냈다. 총사업비는 옵션을 포함해 최대 150억달러(약 2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일본의 이번 수주는 2014년 '방위장비이전 3원칙' 도입 이후 일본이 성사시킨 최대 완성 무기 수출이란 점이 의미를 가진다. 호주 ABC방송과 로이터·AFP 등 주요 외신도 이번 계약을 "2차대전 이후 일본 방산 수출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대형 함정 수출 사례"로 소개하며, "일본이 전통적인 '무기 수출 금기국'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가미급, 4800톤급 스텔스 다목적 호위함 = 호주가 선택한 플랫폼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운용 중인 만재 4800톤급 모가미급(FFM) 개량형으로, 평시 해상교통로 경계·감시 임무뿐 아니라 대잠·대공·대수상·기뢰전까지 통합 수행하도록 설계된 다목적 호위함이다. 레이더 반사면적을 줄인 스텔스 선체 형상과 통합 마스트, 최신 통합전투체계를 적용해 중형급임에도 고밀도 임무 수행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함내 각종 장비·시스템의 자동화 수준을 대폭 끌어올려 승조원 규모를 약 90명 수준으로 줄인 점이 운용유지비 절감과 인력 운용 효율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일 MEKO(다목적용 모듈 조합형 전투함) 계열과의 경쟁에서 호주가 일본안을 택한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호주 해군 차세대 범용호위함(SEA 3000) 사업에서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모가미급 개량형 호위함 조감도. 최대 150억달러(약 20조원) 규모, 11척 일괄 수출 계약으로 2차대전 이후 일본 방산사(史) 최대 함정 수출 사례로 평가된다. [사진 출처=미쓰비시중공업] 2026.04.21 gomsi@newspim.com ◆잠수함·초계기 수출 좌절 뒤에 얻은 첫 성과 = 일본은 2014년 '무기수출 3원칙'을 대체하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도입하며 동맹·우방국에 대한 무기 수출 길을 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의미 있는 완성무기 수출 실적을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2010년대 중반 호주 차세대 재래식 잠수함 사업에서 소류급 수출형을 앞세워 약 44조원 규모 수주전에 나섰지만, 기술이전 범위와 산업협력 조건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프랑스에 사업을 내준 바 있다. 영국을 상대로 한 P-1 해상초계기 수출 시도 역시 비용 문제와 정치·전략적 고려가 겹치며 최종 선정에 실패하면서, "규제는 풀었지만 수출 경험과 레퍼런스 부족으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는 자성론을 낳았다. 이번 호주 모가미급 호위함 수출은 이런 잇단 좌절 끝에 얻어낸 첫 대형 완성무기 수출 사례라는 점에서, 일본 방산 수출 전략이 본격적인 '실적 단계'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범정부 수출 사령탑 추진 = 일본 정부는 이번 수주를 계기로 외무성·방위성·경제 관련 부처 국장급 인사가 참여하는 범정부 무기 수출 컨트롤타워 신설을 추진하며, 제도·조직 차원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핵심은 '방위장비이전 3원칙' 운용지침 가운데 살상력이 높은 무기 수출을 5개 유형으로만 제한해 온 구조를 재검토해, 예외 인정 범위를 과감히 넓히거나 사실상 폐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데 있다. 지금까지는 각 건별로 "수출 가능한 품목을 찾아 예외를 허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법·제도와 정부 조직을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호주형 모가미급을 포괄적 모델로 삼아 인도·태평양 역내 제3국으로 수출을 확장하는 구상까지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무기 수출 대국' 노리는 일본… K-방산과 정면 경쟁 구도 = 모가미급 11척 수출 계약은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 논쟁을 넘어, 방위산업을 본격적인 수출·성장 산업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드러낸 신호탄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이번 사례를 발판으로 호주·영국·인도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 국가에 대한 함정·미사일·센서 체계 수출을 확대하고, 자국 조선·방산업계의 생산 기반을 유지·확대하는 선순환을 노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리튬이온 배터리 탑재 재래식 잠수함과 전차·자주포 패키지 계약을 앞세워 중동·동유럽·동남아 시장에서 이미 공격적인 수출 실적을 축적해 왔다. 그 결과로 양국은 글로벌 해양·지상 방산 시장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는 '창과 방패의 경쟁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일본이 호주에서 전후 최대 호위함 딜을 따냈다면, 한국은 폴란드 등에서 초대형 패키지 계약을 기반으로 연간 방산 수출 200억~300억달러를 노리는 상황이다. 인도·태평양과 중동을 축으로 한 '한일 방산 수출대전'이 본격 점화된 것으로 보인다. gomsi@newspim.com 2026-04-2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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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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