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적 구조와 책임 회피, 혁신 걸림돌로 작용
비효율 의사결정에 따른 사업 지연…신뢰도 하락
SH공사·GH 등과 협업 확대…체질 변화 필요
직원 비리와 부실 경영으로 신뢰를 잃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은 번번이 좌초되며, 거대 공기업은 다시 관성 속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대해진 조직과 누적된 부채, 무뎌진 감시 체계 속에서 LH의 혁신은 왜 멈췄는가. 본지는 LH의 구조적 문제와 향후 개편 과제를 다섯 꼭지로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정부가 연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직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어떤 LH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단순한 조직 축소나 기능 재배치만으로는 누적된 비위, 사업 지연, 정책 신뢰도 하락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 운영체계 개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LH 내부에는 관료적 의사결정, 책임 회피성 조직문화, 특정 기능에 편중된 사업 구조에서 비롯된 폐쇄적 운영 방식이 고착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혁신 동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정책 수행 영역이 확장되면서 역할 충돌과 업무 과부하도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조직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골든타임"이라며 실효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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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적 구조와 책임 회피, 혁신 걸림돌
2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조직개편 초안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개편 방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편안의 방향에 따라 LH의 향후 운영체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LH는 주택 공급, 도시개발, 토지 조성 등 국가 주거정책 전반을 수행하는 공기업으로, 사업 규모와 정책 범위는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LH의 주택 공급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지만,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의사결정 속도는 느려지고 책임 소재는 모호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과거 감사원 감사와 국토부 조사에서도 LH의 복잡한 의사결정 절차와 다중 부서 검토로 인한 사업 지연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신규 사업 추진 시 여러 부서가 순차·병렬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안–보완–재검토–재심의'가 반복되고, 책임 소재가 분산돼 명확한 결정권을 가진 부서가 없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승인까지 걸리는 기간이 다른 공공기관보다 긴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현 체계에서는 혁신적 시도보다 리스크 회피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3기 신도시 본청약 일정이 토지 보상 등 핵심 절차가 예정보다 지연되면서 연쇄적으로 밀린 점이 거론된다. 이러한 내부 의사결정의 비효율성과 과도한 검토 절차가 사업 속도를 늦추고 공급 차질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비효율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사업 속도가 늦어질수록 공급 시점이 뒤로 밀리면서 정책 효과는 감소하고, 시장 대응력도 떨어지며 결과적으로 LH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LH의 또 다른 구조적 제약으로는 특정 기능에 역할이 집중된 사업 구조가 꼽힌다. 공공주택 공급과 공공택지 개발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온 LH는 사업 주도권이 한 기관에 쏠린 구조를 가지고 있어, 지자체 도시 공사나 민간과의 역할 분담·협업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 SH공사·GH 등과 협업 확대…체질 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조직개편 논의에서 협업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조직을 쪼개는 방식이 아니라 기능별 경쟁과 견제, 협력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지자체 개발기관과 역할 분담 및 공동 사업 모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간의 효율성과 공공의 안정성을 조합해 주거공급 체계를 유연하게 바꾸자는 취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외곽 지역보다는 도심권과 접근성이 좋고 기존 교통 인프라가 구축된 곳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며 "사업 효율성을 위해 경기도나 서울시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공급 가능한 사업지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LH 조직개편은 크게 ▲조직 슬림화 ▲사업 기능 재조정 ▲지자체·민간과 역할 분담 ▲의사결정 투명성 강화 등이 핵심 방향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표면적 구조조정만으로는 근본적 변화가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이번 개편의 성공 여부는 '일하는 조직'으로 체질을 바꾸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인사·평가·보상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책임 중심의 업무 구조를 만들며, 부처 간·기관 간 협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행정학과 교수는 "조직을 쪼갤지, 그대로 유지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운영하느냐가 핵심"이라며 "공공성·효율성·투명성을 중심으로 체계를 재정비해야 LH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직개편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공급 확대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LH의 지연, 오류, 내부 관리 부실 문제가 반복되며 국민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LH가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책임 중심 업무 시스템 ▲지자체·민간과 협업 확대 ▲투명한 의사결정 ▲공공성 확보 ▲효율성 개선 등 전방위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 논의는 LH 존재 자체를 흔들었던 여러 사건 이후 찾아온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자 이미지 반전을 꾀할 계기"라며 "비효율성과 경쟁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새로운 운영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7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