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입장 대변하며 "푸틴案 안 받으면 그가 우크라 파괴할 것"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와 협상하라고 몰아붙이면서 회담 내내 욕설을 퍼부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담은 지도를 집어 던지며 "지긋지긋하다(sick)"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시종일관 전날 통화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장과 주장을 대변하는 말을 하면서 협상을 타결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가 파멸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FT는 "트럼프가 푸틴의 수사를 호전적으로 반복하자 우크라이나의 많은 유럽 동맹국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늘리도록 트럼프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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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18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FT는 이날 회담에 대해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여러차례 '고함치는 싸움(shouting match)'으로 치달았고, 트럼프는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다(cursing all the time)"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푸틴이 제시한 전쟁 종식 조건을 젤렌스키에게 강요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어 러시아군이 한 번도 점령하지 못했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도네츠크주(州)의 땅까지 푸틴에게 양보하라고 했다. 대신 전략적 중요성이 한참 떨어지는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의 러시아 점령지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러시아 경제가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없이 "훌륭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했고,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의 특수 작전"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어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지고 있으며 "푸틴이 원한다면 당신(우크라이나)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회담 중간에 우크라이나 전장의 지도를 집어 던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선 지도를 계속해서 보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이 붉은 선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같은 트럼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 지역의 방어 지역을 러시아에 넘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렉산드르 메레즈코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싸워보지도 않고 돈바스 전체를 러시아에 넘기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푸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푸틴의 목적은 우크라이나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단결을 훼손하려는 것"이라며 "푸틴은 영토를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내부에서 파괴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