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소셜믹스 요구로 심의 보류
압구정4구역엔 주동 외 층수 하향 의견 제시… 한강 조망 이유
업계 "공공기여가 정비사업 발목 잡아선 안 돼"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서울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서 공공기여를 두고 서울시와 조합 사이 갈등이 이어지면서 사업 속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통한 주택 공급량 확대가 절실한 만큼 기부채납 등을 원인으로 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임대 가구도 한강 조망" 서울시 의견에… 잠실주공 조합원 '황당'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에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안건을 보류했다. 공공보행통로를 늘리고 한강변 동 배치를 '소셜믹스' 차원에서 수정하라는 이유에서다.
소셜믹스는 공동주택 단지 안에 분양과 임대 가구를 함께 조성하는 정책으로, 서울시는 2021년 10월부터 모든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소셜믹스를 의무화했다. 분양과 임대 가구가 외부에서 봐도 구분되지 않도록 고른 층 배치와 강·하천 조망권 배제 등 차별 요소를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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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여로 갈등 겪은 서울 주요 정비사업지.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조합원 사이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한 조합원은 "한강 조망권에 따라 가격이 몇 억씩 달라지는데 임대 가구를 배치하라는 건 사실상 조합원을 향한 역차별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단지 안에 공공기여 차원에서 대형 공원 두 개와 한강으로 이어지는 입체보행로까지 신설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소셜믹스가 안 된다고 심의를 반려한 서울시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의견을 수용해 건축, 경관, 교통 심의를 다시 짜서 심의위원회에 올리려면 최소 두 달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은 현재 연내 사업시행계획인가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어 이 또한 미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강남권 재건축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 또한 공공기여를 두고 조합원 사이 의견이 분분하다. 은마는 현재 지하 4층~지상 최고 49층, 5962가구 규모로의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통과 당시 계획에 따른 용적률은 300%이었으나, 역세권 개발 인센티브를 활용해 용적률을 320%까지 상향하는 정비계획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가구 수는 5962가구로 늘어나지만 임대주택 수도 기존 678가구에서 1013가구로 대폭 증가한다. 용적률을 높이는 대신 기존 전용 84㎡ 가구의 평형을 좁혀 전용 59㎡로 변경한 뒤 수를 늘려 단지 내에 분산하기로 한 것. 이에 일부 조합원은 "상향한 용적률에서 공공기여분을 제외하면 실제 조합원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이걸 받자고 임대주택 350여 가구를 늘리는 건 오히려 손해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남권 기대주인 압구정4구역 재건축 조합도 지난달 서울시에 정비계획 변경 고시 재심의를 요청,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는 올 3월 압구정4구역 재건축 조합에 랜드마크동(200m 이상) 외 타 동은 50층 미만으로 건축하라고 지적했다. 조합은 당초 랜드마크가 될 최고층 동을 2개 이상으로 건축할 계획이었으나, 서울시는 한강변 조망 확보를 위해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는 설계는 불허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범 또한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2021년 신속통합기획 신청으로 사업에 속도가 붙은 후 이듬해 최고 65층으로 재탄생하는 기획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지난해 입주민들은 신통기획에 반대하며 철회 의사까지 밝히고 나섰다. 서울시가 신통기획 조건으로 단지 내 노인 요양시설(데이케어센터) 건립을 제안했지만 같은 신통기획을 진행한 한양아파트의 경우 지하철 역사와 공공청사가 들어서 비교된다는 이유였다.
서울시는 주민 반발에 정비계획 결정고시가 1년 넘도록 미뤄지자 정해진 기간까지 수정가결 의견을 보완하지 않으면 신통기획 절차를 취소하겠다는 초강수를 놨다. 오세훈 시장까지 "데이케어센터가 없다면 신통기획도 없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서자 결국 조합은 지난해 11월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수용하고 수정한 정비계획 공람에 나섰다.
◆ 공공기여, 과해도 부족해도 문제… "관련 규정부터 재정비 해야"
정비사업과 공공기여는 불가분의 관계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기반시설의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만의 재정 여건으로는 이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기에, 조합에 용적률・건폐율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기반시설을 받는 '윈윈' 관계로 시작된 것이 공공기여다.
그러나 최근 도시계획 관련 인・허가 과정에서 지자체가 조합에 무리한 기부채납을 요구하면서 민원이나 분쟁이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다. 반대로 일부 지역에서는 기부채납에 따른 인센티브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기도 한다.
전문가 사이에선 공공기여를 둔 사업시행자와의 갈등을 막기 위해선 이를 둘러싼 모호한 법적 기준과 규정부터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토부는 올 3월 복합용도 개발이나 5000㎡ 이상 유휴부지·이전적지 개발 등의 지구단위계획구역 또는 공간혁신구역 지정을 통한 정비사업을 둘러싼 공공기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다만 지구단위계획을 별도로 수립하지 않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국토계획법'상 공공기여 적용 대상이 아니라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재개발·재건축 공공기여의 경우 '지구단위계획수립지침'에서 부담 수준의 상한을 정하고 있으나, 지자체의 상황에 따라 기부채납 부담률을 상한선보다 더 높게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사업 시행자는 사업 추진 시점에서 부담 수준을 예상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준호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공기여의 법적 성격을 고려했을 때 공유재산의 공익성이나 공공성 제고를 위한 관리·통제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기준 정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사업시행자와 지자체 간 갈등 재발을 막기 위해 중간 지원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개발사업의 공익 효과와 더불어 사업 초기 어려움을 고려할 때 전담조직과 더불어 도시재생사업처럼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 설립을 검토해야 한다"며 "도시계획, 건축, 감정평가 등과 관련한 전문가가 컨설팅을 제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