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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하) '정책 전문가' 서왕진 "전문성 확고한 정치인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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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이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정책 전문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정치 입문 과정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서 의원은 21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모범생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했던 일화까지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서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혁신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최고위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현재 최고위원과 혁신정책연구원장을 겸하며 당내 정책을 주로 총괄하고 있다.

서 의원은 1964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이곳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토박이다. 서울대 신문학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시민운동을 하며 환경문제를 접했고, 미국 델라웨어 대학교 대학원에서 에너지 환경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 의원은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환경정의연구소 등을 거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책특보로 임명돼 정책 개발에 참여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서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안녕하세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오늘은 조국혁신당의 서왕진 의원님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서왕진 의원. 이하 서) 반갑습니다. 조국혁신당의 서왕진입니다.

-(윤) 정책이라는 게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의원님은 전공을 뭐 환경 기후 이쪽으로 하셨지만 다른 거를 또 다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서) 그게 이제 저한테 그래도 도움이 됐던 게 제가 경실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그랬잖아요. 경실련은 옛날에 부정적으로 말할 때는 백화점식 운동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많이 다뤘었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해서 그런 활동들을 했었기 때문에 우선 그런 네트워크이 좀 비교적 좋았고요.

그다음에 시민운동이라고 하는 게 자기 분야의 어떤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지만 또 연대 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특정한 중요한 국가적 이슈가 있으면 그 분야를 담당하는 운동 단체들이 중심에 서지만 다른 분야의 운동 단체들도 거기에 함께 참여해서 힘을 이렇게 싣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런 어떤 중요한 사회적 정책 아젠다 이런 것들이 낯설지는 않아서 그리고 또 많은 전문가 네트워크이 좀 비교적 원만하게 연결될 수가 있어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좀 아마추어였죠.

-(윤) 그때 당시에 좀 추진했던 정책이나 관련해서 캠프에서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 같은 게 좀 있으신가요?

▲(서) 그 당시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선 아주 초기에 박원순 후보하고 안철수 당시 후보하고 단일화를 이뤘던 게 아주 기억에 남고요. 나중에 이제 나경원 후보가 소위 상대 경쟁 후보로 나왔었는데 그때 이제 정책 토론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박원순 후보는 기존의 어떤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어떤 생활 밀착형 아젠다들을 많이 다뤘었어요.

예를 들면 마을 도시 서울이라는 도시지만 어떻게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과거 마을 공동체처럼 서로 이렇게 교류하고 아이들을 돌본다든지 또는 복지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서로 협력하는 그런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거냐 또 도시에서 농업을 어떻게 활성화시켜 가지고 기후 문제에 좀 대응할 거냐 이런 그런 그 정책들은 당시에만 해도 일반 정당들에서는 다루지 않은 주제들이었거든요. 그런 새로운 주제들을 다뤘던 게 좀 기억에 남고 언론에서도 상당히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윤) 성공했던 정책이 또 있을까요?

▲(서) 예. 제가 이제 그 선거를 마치고 보궐 선거이기 때문에 인수위나 이런 것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출근을 하거든요. 그래서 박 이제 박원순 당선자하고 바로 시청에 다음 날 출근해서 저는 정책특보를 맡아가지고 서울시 이제 정책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그런 작업들을 시장님하고 늘 의논하면서 함께 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2011년 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뭐였냐면 벌써 이제 우리 기억 속에 많이 사라졌을 것 같기는 합니다마는 뉴타운 문제가 전임 이명박 시장 오세훈 시장을 거치면서 이명박 시장 때 막 활성화를 해가지고 부동산 버블을 일으키면서 뉴타운 문제가 그냥 어마어마한 이슈였거든요.

이명박 전 시장 시절에는 그게 굉장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막 사람들이 굉장히 환호하고 기대를 많이 가졌는데 잠깐 그거는 부동산 버블이 있을 때고 2008년 금융위기가 오면서 완전히 이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뉴타운 개발을 한다고 지구 지정을 해놨는데 사업은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구 지정을 해놓으면 무슨 사고 파는 것도 힘들고 건물을 뭐 이렇게 새롭게 개보수하는 것도 힘들거든요.

그래서 거기 사는 사람들은 굉장한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는데 어떤 주민들은 여전히 개발이 되면 뭔가 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한편에 있고 한편에서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 개발을 한다고 그래놓고 내 재산권만 묶어놓고 있어서 너무 불편하다. 두 그룹의 주민들이 정말 심각할 정도로 갈등을 했어요. 제가 지금도 그 눈빛들이 잊혀지지 않는 게 이제 시장이 보궐선거로 새로 당선이 됐으니까 현장도 가고 지역의 어떤 일들을 이렇게 보러 갈 거 아닙니까?

그러면 시장이랑 저희들이 쭉 가면은 길 양쪽으로 한쪽에는 뉴타운 개발을 계속 해달라고 주장하는 주민들 한쪽에는 빨리 중단하고 해제해 달라고 주민들이 계속 목소리를 높이면서 우리를 따라오는데 양쪽 다 눈빛이 정말로 이렇게 이 고통과 갈등 속에 그러면 낯이 가 있다고 해야 되나요?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근데 그게 한두 군데가 아니라 서울시 수백 곳이 그렇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가장 큰 숙제였고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 같고요.

그 외에 이제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했던 많은 일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건강하고 쾌적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좀 생태친화적인 도시로 어떻게 만들어 갈 거냐 하는 문제를 많이 다뤘는데요. 대표적인 게 이 원자력 발전 문제에 대한 굉장히 우려들이 있었고 그다음에 지방에서 만든 전력을 서울로 가져오려면 송전선을 많이 해야 되는데 그 송전선에 대한 갈등도 굉장히 많아서 밀양 송전탑 문제가 굉장히 큰 갈등이었어요.

기후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재생에너지를 좀 많이 만들어야 된다 뭐 이런 고민들이 많이 있어서 서울시에서 전국 최초로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원전 1기만큼 우리가 재생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서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지 않도록 하는 캠페인을 하자고 그래서 원전 하나 줄이기라고 하는 정책 캠페인들을 했었는데 그거를 그냥 시민단체 캠페인이 아니라 서울시라고 하는 주요한 지방자치단체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사업을 진행했던 것 그거를 이제 기획했던 게 제가 중요하게 했던 역할이라서 그 기억이 상당히 많이 나고요.

그 외에도 뭐 요즘 젊은 분들 많이 이용하시는 따릉이 따릉이가 초보적인 수준으로 있었는데 그게 제대로 이렇게 활성화되려면 따릉이를 굉장히 여러 곳에 설치하고 어디든지 편하게 타고 또 어디든지 세워둘 수 있도록 해야 되거든요. 그거를 확 늘려서 따릉이를 지금처럼 이렇게 많이 보급한 거 뭐 그런 것도 제가 시장님하고 굉장히 많이 고민하면서 없는 재원을 막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했던 기억도 나고요.

그 서울역 그래서 그 고가도로 있잖아요. 서울역 옆에 그게 이제 서울로 7017이라고 하는 건데 원래는 거기가 남대문하고 이렇게 연결하는 자동차 전용도로였거든요.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였는데 그게 굉장히 낡아서 그거를 아예 허물고 새로 건설할 거냐 아니면 아예 없앨 거냐 막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정책 제안을 선거 때 공약으로 제안을 해가지고 그거를 보행 전용로로 바꾸자 보수를 해서 도시재생이라고 하는 정책으로 그래서 지금의 서울로 7017 일종의 보행 산책로로 해서 즐기는 분들은 편안하게 지금 즐기죠. 그런 것들이 기억이 납니다. 꽤 제가

-(윤) 많이 하셨네요.

▲(서) 들어보니까 제가 꽤 오래 했습니다. 서울시에서 몇 년 동안 하신 거 그러니까 정책특보 역할만 한 4년 했고요. 네 비서실장을 한 2년 했고 나중에 또 서울연구원장을 한 4년 했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한 10년 가까이 서울시 관련된 일을 했다고

-(윤) 그러네요. 10년 10년 동안 하시다가 이제 작년 총선에 국회에 입성을 하신 건데 그러면 그 총선 직전까지 어떤 활동을 좀 하고 계셨던 거예요?

▲(서) 서울연구원장을 2021년 정도까지 했었고요. 마치고 나서는 서울시립대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 활동을 하면서 2022년 대선이 있었잖아요. 지난 대선 지난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정책 분야를 꽤 이렇게 총괄하는 그런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 활동을 하고 정말 아쉽게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그때 참여했던 꽤 많은 좋은 전문가들하고 지금 대한민국이 이렇게 처해 있는 굉장히 중요한 국가적인 난제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뭐 지방 소멸 문제 인구 소멸 문제, 기후 문제 또는 정치 양극화 문제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좀 해결해야 되느냐 이런 대안을 좀 미리 만들어서 우리는 정책 전문가들이니까 다음 대선까지 가장 좋은 정책을 만든 다음에 다음 대선에서 개혁 진영이 집권에 성공하면은 그런 정책들이 좀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하자 그런 활동을 대전환 포럼이라고 하는 포럼을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가 총선 직전에 사실은 정치 개혁 문제가 이제 정치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정치 개혁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연동형 비례제가 굉장히 논란이 됐었고 그전에 사실은 지금 이재명 대표조차도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병립형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고민을 한참 했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제가 참여하고 있던 대전환 포럼의 멤버들하고 그다음에 시민운동 쪽에서 정치 개혁 활동을 많이 했던 참여연대라든지 경실련 그룹들 그다음에 국회의원 중에는 이탄희 지금 민주당의 민병덕 그다음에 가장 열심히 하셨던 분 중에 한 분이 지금 우원식 국회의장, 이학영 부의장 이런 분들이랑 하니까 용혜인 의원도 있네요.

병립형으로 후퇴해서는 안 되고 다당제 구조가 더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고 선거법을 어 연동형 비례제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런 활동들을 많이 하고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노력들을 한참 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런 활동의 와중에 조국 대표를 만나서 조국 대표가 고민하고 있던 논의를 하면서 조교 혁신당을 만드는 쪽으로 저는 좀 힘을 싣게 됐었죠.

-(윤) 그러면 총선 직전에 조 전 대표님을 알게 되신 거예요? 직접적으로

▲(서) 원래는 잘 아는 사이입니다.

-(윤) 원래는 언제부터 잘 아는 사이셨던 건지?

▲(서) 조국 전 대표가 서울대 법대 교수이기도 했지만 소위 사법개혁에 관련한 굉장히 전문가로서 참여연대 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때 그리고 학생운동에 같은 범주에 있었던 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시민운동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고 뭐 이렇게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어서 알고 지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청와대 민정수석이 되면서 워낙 이제 어렵고 힘든 자리였고 그 와중에 또 소위 윤석열한테 이제 소위 검난에 휩싸여 가지고 굉장히 고통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한동안 이렇게 못 보고 지내다가 21년이죠.

21년 연말에 정치에 참여해 볼 고민을 하고 있고 뭔가 좀 여러 가지 논의를 좀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우선 정치를 본격적으로 할 건지 어떨 건지는 좀 고민을 해야 되지만 정책과 관련된 논의의 장이라도 좀 먼저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저한테 제안을 해서 저는 뭐 그거는 이미 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조국 대표랑 리셋 코리아라고 하는 이 포럼을 만들어서 한 서너 차례 정치 세미나 정책 세미나를 함께 열었었습니다. 그걸 하면서 정책 논의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관여할 거냐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거냐 이런 논의를 21년 연말부터 함께 계속 쭉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조국 대표가 창당도 하고 본격적으로 한번 나서보겠다 이런 결심을 하면서 당을 함께 만들고 준비를 하게 된 거죠.

-(윤) 그러면 의원님도 21년 말부터 혹은 22년 초 제안이 들어온 이후부터 이제 국회의원 에 대한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전에는 그런 생각이 없으셨다가

▲(서) 예 뭐 사실은 그 생각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 연도를 막 좀 헷갈리게 말씀을 드렸네요. 22년 대선이 있었고

-(윤) 저도 잘못 얘기했어요. 24년 작년

▲(서) 24년 총선이 있었고 조 대표랑 만나서 의논한 건 23년

-(윤) 네 23년

▲(서) 말에 했었습니다. 그래서 22년 대선 이후에 뭔가 좀 많은 고민들이 좀 있었고 저는 정책 전문가로서 활동을 했지만 실제로 그 정책을 확정하고 또 제도로서 정착시키고 또 정부가 그거를 이렇게 추진하도록 하는 역할에 있어서 국회의 역할 또 행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결국은 작동이 돼야지만 정책이라는 게 가동된다 이런 거를 너무 이제 많이 알게 되고 외곽에서 조언하고 자문하는 전문가 역할을 좀 넘어서서 적극적인 정책을 실행하고 제도화하는 부분에서 기회가 있다면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있었습니다.

네 그런 게 뭐 그런 바람이 있다고 길이 쉽게 열리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적극적인 무슨 계획이나 이런 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이제 조 대표하고 그런 논의를 하게 되면서 사실은 뭐 창당을 하고 도전을 한다고 그래서 국회의원을 이렇게 당선될 수 있다라는 것은 뭐 누구도 그거를 확신하기 힘들잖아요. 더구나 새로운 창당에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조 대표를 돕고 조 대표랑 함께 당을 만들어서 이런 활동을 해볼 만하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저도 함께 참여한 거고 어떻게 보면 조국혁신당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획해서 만든 창당 동지라고 할 수 있죠. 영입이라기보다는 저는 이제 오히려 함께 준비하고 만들었고 나중에 비대위원으로 이제 나가야 되기 때문에 형식은 영입 3호 이렇게 해가지고 영입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저는 오히려 영입해야 될 분들을 찾고 지원해 주고 조 대표 돕는 역할을 오히려 한 거죠.

-(윤) 초창기부터 같이 하셨으니까 그래서 저는 이제 혁신당에서 의원님의 활약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처음에 들어오시자마자 정책위장 하셨고 최고위원 나가셨고 이후에 지금 다시 또 그 혁신 정책 연구원장도 맡고 계시고 너무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좀 힘들지 않으셨는지

▲(서) 네 조 대표님이 좀 저를 괴롭혔죠. 많이 그 당을 처음 만들 때부터 정책 논의를 함께 했었고 제가 오랫동안 그런 정책 활동을 서울시에서 했던 거라든지 포럼 활동이나 이런 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기 혁신당이 이제 초기 창당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다 갖추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정책을 총괄해서 맡아달라 해서 창당하면서부터 제일 처음 당직으로 정책위의장을 저한테 요청을 했었고 그렇게 시작을 했고 나중에 이제 선거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당 활동을 할 때는 혁신 정책연구원장을 좀 겸해서 왜냐하면 아주 창당 초기고 우리가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책위와 연구원이 함께 좀 힘을 합쳐 가지고 뭔가 끌어가 줘야 된다라는 판단 속에서 그런 요청을 받았었고, 검찰 개혁이라고 하는 게 이제 조기 혁신 단계에서 가장 1번 과제였지만 동시에 사회권 선진국이라고 하는 정책 비전을 준비하고 대외적으로 이렇게 잘 만드는 게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이었는데 검찰 개혁은 이제 조국 대표나 우리 박은정 의원이나 뭐 황운하 원내대표나 전문성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다른 사회 정책 분야는 제가 좀 책임지고 해야 되는 그런 과제가 있어서 그렇게 맡았던 것 같고요.

조 대표님이 이제 뭐 어쩔 수 없이 감옥에 들어간 이후에는 또 당의 의사결정과 지도 체계 자체를 좀 안정화시켜야 되기 때문에 최고위에 또 나가서 최고위원 역할을 좀 빈 자리를 맡고 뭐 그렇게 했는데 뭐 제가 역할을 많이 맡아서 힘든 것도 있지만 조국 혁신단 자체가 생각하지 않았던 굉장히 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투표로 이렇게 뭐 어떻게 보면은 생각보다는 큰 성과를 냈지만 그래도 12명 의원이잖아요.

12명 의원이 동분서주 해야 되고 이것저것 이렇게 해야 되는 일이 많아서 국민들이 했던 기대에 비해서 작은 의원으로 국회 내에서의 역할을 하려다 보니까 꽤 열심히 뛰어도 잘 보이지 않는 아마 윤 기자님은 꽤 아실 텐데 그러다 보니까 저 말고도 나머지 의원들도 굉장히 바쁘게 뛰는 팀이라고 보여집니다.

-(윤) 혼자서 몇 개의 역할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바쁘시고 한데 이제 그런 게 좀 홍보 과정이라든가 이런 게 조금 아쉬움이 좀 남는

▲(서) 윤 기자님이 그래도 많이 챙겨주셔서 늘

-(윤) 네 저는 혁신당 담당이니까. 또 혁신당이 보면 비례 국회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거잖아요. 사실 지역구랑 좀 다른 게 있다면 지역구에 살지 않아도 되고 없으니까 또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점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또 다른 고충도 좀 있을 것 같아서 비례 국회의원으로서 지내는 점에 대한 고충 그런 게 좀 있다면요.

▲(서) 사실 요즘 뭐 이렇게 특히 이제 123 내란 사태 이후에는 너무 많은 일정과 시간들이 뭐 원래 그냥 일반 국회의원들이 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이 생기면서 너무 일정도 많고 다 힘든 것 같아 모든 국회의원들이 다 힘든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면은 지역구 가지고 있는 분들 특히 지방에 지역구가 있는 분들 주말이면 꼭 내려가야 되잖아요.

도대체 1년 내내 쉬는 날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이 들어서 비대위원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그래도 조금은 자유로운 편이어서 나은데 상황이 좋다라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게 주말이면 항상 광장에 나가야 되고 일정이 있고 뭐 이렇더라고요. 그래서 비대위원의 자유를 별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다 저는 사실은 조국 혁신단이 아까 의원이 12명밖에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제 시도 당을 다 만들어서 또 그걸 맡아서 해야 되는데 물론 의원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저 같은 경우는 조기 혁신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 광주 호남이거든요. 광주 호남에서 사실은 1등으로 비례 투표를 해줬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광주 호남 유권자들이 또 시민들이 생각하는 바를 잘 알고 또 부응하는 역할을 당이 해야 되는데 묘하게 광주 호남 출신 광주 출신 광주 전남 출신이 저밖에 없어요.

우리 당에 전북에는 이제 강경숙 의원이 있는데 그래서 제가 광주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주시당을 또 건사하고 최근에는 그 시당 안에 지역위원회를 또 꾸려서 이거를 운영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만큼 제대로 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또 광주를 가서 광주시당 또 우리 광주 당원들하고 이렇게 함께 활동을 해야 돼서 별 차이를 못 느끼겠습니다.

-(윤) 그냥 똑같이 바쁜

▲(서) 바쁘다

-(윤) 의원님의 22대 국회 지상 과제는 뭔지 좀 궁금하더라고요. 이것만큼은 꼭 해내고 가고 싶다 이런 게 있다면요.

▲(서) 뭐 개인적으로는 사실은 기후 문제 에너지 문제를 좀 사실은 문재인 정부 때 좀 이렇게 방향성을 잡아가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온 뒤로는 완전히 그게 또 사라지고 오히려 퇴행하는 그런 상황이어서 이 기후 에너지 정책을 다시 본 궤도에 올려서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우리나라가 좀 앞서 나갈 수 있는 그런 제도적 기반도 만들고 정부가 그런 정책을 하도록 좀 잘 끌어나가는 역할을 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는 좀 크고요.

전체적으로 보면은 역시 이번 상황과 사태를 슬기롭게 잘 마무리를 하고 저희 입장에서는 민주 헌정을 존중하는 세력들이 정권 교체를 잘 이루고 특히 개헌을 통해서 대한민국이 지금 겪고 있는 여러 가지 혼란 또 민주주의의 한계라든지 권력 구조의 문제 이런 것들을 좀 개선하고 혁신하는 그런 기반을 만들어야 되고 그런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정치 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내서 지금의 이 거대 양당이 너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진영 정치 이거를 좀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 가능성을 좀 열어 나가는 것 그러려면 사실은 두 당 말고 다른 작은 정당들이 제 역할도 하고 또 조정하고 중재도 할 수 있는 어 그런 어떤 조금은 열린 유연한 다당제 구조를 정착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정치 개혁 과제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이게 이번 국회가 해야 될 역할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 기후 문제 정치 개혁

▲(서) 그렇습니다. 가장 우선 된다면 그 두 가지고 저희 당으로서는 사실은 정치 개혁과 함께 이제 검찰 개혁 이것이 핵심 사명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그러면 의원님은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서) 조금 늦게 어떻게 보면 정치에 본격 뛰어든 셈이어서 크게 욕심은 없습니다. 사실은 초선이긴 하지만 초선이 금방 이런 이야기하는 게 무섭습니다마는 큰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저는 이제 또 아주 대중적으로 아주 재미있거나 언변이 뛰어나거나 뭐 그런 어필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정책적 전문성이 이 정치 영역에서 잘 이렇게 발휘되고 가장 효과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전문성이 아주 확고한 정치인 이렇게 자리를 잡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 의미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있어야 되고 그 전문성이 그냥 뭐 외부 그냥 일반 교수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입법이나 제도화를 잘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실제 행정에서 이렇게 작동하게 만드는 그런 메커니즘을 잘 알고 전문성을 가진 그걸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인

-(윤) 완벽한 정치인인데요.

▲(서) 전문성도 있고 일을 할 줄 아는 정치

-(윤)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서) 특히 만약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역할을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 부분에 유능한 정치인이 된다면 저로서는 과분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윤) 저도 의원님이 꼭 그렇게 꿈을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오늘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님에 대해서 알아본 시간이었고요. 의원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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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범, 이제 판잔러 잡으러 간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수영 대박'이 아닐까. 불과 1년 전 세계선수권 탈의실에서 중국 수영의 상징 판잔러에게 키링을 받고 기뻐하던 소년이 이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거리 샛별' 김영범(20·강원특별자치도청)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김영범은 21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66의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로써 전날 자유형 100m에서 판잔러와 접전 끝에 0.04초 차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렀던 한을 풀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이번 금메달은 이번 대회 대한민국 경영 대표팀이 획득한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예선부터 기세가 매섭틀렸다. 김영범은 이날 오전 열린 예선에서 21초71을 기록해 3년 전 항저우 대회에서 지유찬(대구광역시청)이 세웠던 종전 대회 기록(21초72)을 0.01초 앞당겼다. 이어 불과 몇 시간 뒤 펼쳐진 결선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0.05초 줄이며 정점에 올랐다. 2006년생으로 한국 남자 계영 대표팀의 막내인 김영범은 전날 자유형 100m 결선에서 반환점을 1위(22초81)로 돌며 세계 정상급 스타 판잔러를 위협했다. 비록 막판 추격을 허용해 47초65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으나 세계적인 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 만에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50m 결선에서 누구에게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김영범의 가파른 성장은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대담한 승부욕에서 비롯된다. 195㎝, 체중 90㎏에 발 크기 300㎜, 윙스팬 216㎝에 달하는 축복받은 피지컬은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단거리 종목에서 강력한 무기다.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장착한 그는 '단거리 박태환'의 탄생을 알리며 한국 수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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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홉킨스 음반 영국차트 1위 [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꿈입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앤서니 홉킨스(88)가 작곡가로 낸 첫 데카 클래식스 음반 'Life Is A Dream'으로 발매 1주 만에 영국 오피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라이프 이즈 어 드림' 녹음 현장의 앤서니 홉킨스. [사진= 유니버설뮤직] 홉킨스는 "평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명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비르투오소 솔리스트인 첼리스트 그레고리오 니에토 및 클래식 피아니스트 세르히오 티엠포와 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음반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녹음됐다. 그래미상 수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바흐 합창단과 윈체스터 대성당 소년 합창단도 참여했다. 홉킨스의 자작곡 12곡이 실렸으며 연주 시간은 1시간 7분이다. 앨범 제목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겼다. 홉킨스는 "이 앨범의 제목은 Life Is A Dream으로, 삶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긴 작별로 본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작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록곡은 웨일스와 가족의 기억에서 나왔다. '마르감'은 그가 태어난 포트탈봇의 지명에서 따왔고, '나의 조국'은 제빵사였던 아버지와 웨일스에 대한 헌사다. '스텔라 아리아'는 아내를, '타라'는 조카를 위한 곡이다. 홉킨스는 어린 시절과 부모, 웨일스에 대한 기억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며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고 말했다. 2012년 앨범 '컴포저'에 실렸던 '마르감', '1947 모음곡', '앤드 더 왈츠 고즈 온'도 이번에 새로 녹음돼 다시 수록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홉킨스는 "모든 것이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로 모였다"고 했다. 바턴은 2006년 영화 '슬립스트림' 음악 작업 이후 홉킨스와 협업해 왔고, 이번 음반에서도 여러 곡의 관현악 편곡을 함께 맡았다. 홉킨스는 두다멜에 대해 "우아하고 정밀한 지휘봉으로 각각의 음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했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음반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금관 중심의 팡파르에서 우아한 왈츠까지 폭넓다고 평하며 홉킨스의 화성 감각을 높이 샀다. 로라 몽크스 데카 사장은 차트 1위 소식에 "작곡가로서의 재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은 일"이라며 축하했다. 홉킨스는 베네수엘라 국민 지원을 위해 CD와 바이닐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창작 과정에 대해 홉킨스는 "제 마음의 구조는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이것이 제 영감의 근원이다"고 말했다. 다음 계획으로는 "요즘 즉흥적으로 새 곡들을 만들고 있고, 그 곡들을 이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 영화음악을 작곡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앤서니 홉킨스의 앨범 'Life is a dream(라이프 이즈 어 드림)' 커버. [사진=유니버설 뮤직] 홉킨스는 1937년 12월 31일 웨일스 포트탈봇 마르감에서 제빵사 리처드 아서 홉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립웨일스음악연극대학을 1957년 졸업하고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를 배웠으며,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초청으로 영국 국립극단에 합류했다. 1987년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고 199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992년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21년 제93회 시상식에서는 '더 파더'로 같은 상을 다시 받아 83세의 나이로 이 부문 역대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영국 아카데미(BAFTA) 4회, 에미상 2회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작곡가로서의 이력도 길다. 1964년 쓴 왈츠 '앤드 더 왈츠 고즈 온'은 2011년 네덜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앨범으로 내놨고, 이 앨범은 2012년 클래식 브릿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홉킨스는 2008년 바턴과 공동 작곡한 '마스크 오브 타임'과 '스키조이드 살사'가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초연됐다. 2012년 1월에는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마이클 실 지휘로 클래식FM과 함께 첫 작곡 음반 '컴포저'를 냈다. fineview@newspim.com 2026-09-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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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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