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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기업인] 성현상 대표 "평생 일군 사업 포기 못해...정부, 힘 실어달라"

기사입력 : 2021년07월24일 06:00

최종수정 : 2021년07월24일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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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상 개성공단 입주기업 '만선' 대표 인터뷰
"갑작스런 중단 통보...차량 한대로 철수 지시"
"60% 이상 기업이 존폐 기로...정부 보상 절실"

[편집자] 2016년 2월 북한의 무력 도발로 남북경협의 상징 개성공단이 가동을 멈춘지 이제 5년이 지났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개성에 투자했던 기업인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그 이후 악전고투하고 있지만 언젠가 공단이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인들은 회사가 정상 가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개성공단 재개에 맞춰 조금이라도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피해보상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에 뉴스핌은 개성공단 기업의 현주소을 짚어보고 기업인들의 절박한 바람을 들어봤습니다.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60% 이상이 기로에 놓여있다. 그 중에서는 우리처럼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한 기업들이 많다. 대출도 있고 공단에 재산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현상 개성공단 입주기업 (주)만선 대표는 최근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입주기업들의 절박한 상황을 토로했다.

[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개성공단기업협회는 27일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성공단 재개와 기업인의 공단 방문 승인을 정부에 요구했다.2021.04.27 oneway@newspim.com

1993년 설립된 만선은 남성복, 여성복, 학생복 등 스포츠 의류를 생산하는 회사다. 2004년 남북이 화해무드를 이루던 당시 성 대표는 가깝게 드나들 수 있고 질 좋은 제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에 개성공단행을 택했다.

다만 2016년 2월 정부가 일방적인 공단 출입 금지를 결정하며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성 대표도 큰 피해를 입었다. 성 대표는 당시 상황을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하루 만에 공단에서 짐을 빼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 회사당 차량 한 대로 짐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면서 "드나드는 시간을 감안하면 주어진 시간은 불과 4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짐을 실을 수도 없거니와 실을만한 인력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후 5년 간 기업들은 보상책을 요구하고 반발했지만 그에만 의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성 대표는 "평생 해왔던 사업을 포기하고 정부만 원망한다고 되는 것은 없지 않나"면서 "나이가 70대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30대처럼 일하면서 회사를 재건하려고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

성 대표는 "아무리 정부가 실책을 해도 원망만 하지는 않는다. 이를 이겨내는 것은 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정치권이나 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아픔을 갖고 있는 피해자 기업들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공단 기업인들이 개성에 투자한 금액 만이라도 보장해달라는 것이 성 대표의 주장이다. 보험금 확대를 해서라도 기업들이 공단 재개까지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개성공단 운영 전면 중단을 발표해 철수작업이 시작된 11일 입경한 개성공단 화물차들이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를 건너 남측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다음은 성현상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어떤 업을 하시는 회사인지 소개를 부탁드린다.

▲ 저희 회사는 만선이고 1993년도에 설립했다. 남성복, 여성복, 학생복 등 스포츠 의류를 생산한다. 국내 의류제조 납품도 하고 수출도 하는 회사다. 

-개성공단에는 어떻게 입주하게 되셨나

▲ 2004년도에 남북 간 정치적인 화해무드가 잘 이뤄졌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내 인건비도 비싸고 해외 출구가 당시에는 중국이었는데, 우리 회사는 개성공단을 선택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고 북측은 같은 민족이고 풍습도 같고 어떻게 보면 단절의 역사가 길었지만 전통적으로 우리 같은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한국과 가장 가깝게 입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성공단을 선택하게 됐다.

-공단 입주 후 상황이 어땠는지

▲ 당시 상황은 남북 교류 중단이 장기화 됐기 때문에 서로 적대시했고 양 국민들이 서로 만나면 긴장을 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 긴장도 됐고 말은 되지만 서로 눈치를 보면서 제재가 있었고 북측은 남쪽 사람들을 처음에는 어렵게 2인1조로 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런걸 감시도 하고 굉장히 경제활동을 하는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매출이 어느정도였나

▲ 그당시 매출은 100억정도 했다. 개성공단에 들어가서는 150억정도 매출을 올렸었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은 질이 우수하고 근접생산으로 비용도 적게 들어가고 품질도 우수하고, 납기도 빠르고 또 원가가 적게 들어가니까 좋은 상품을 싸게 팔 수 있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좋았다.

-이후 남북관계 악화로 개성공단에서 갑작스레 나오게 됐다.

▲ 당시 2005년~06년에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들어가서 경제활동을 공장을 세우고 근로자들을 받아서 기술을 가르치고 회사를 세워서 같이 땀을 흘리고 10년을 넘게 일을 했다. 그래서 2016년도 2월 11일로 기억하는데, 정부에서는 여유도 없이 하루 만에 통보를 하고 그때가 아마 구정 끝 휴가날이었다. 전날 우리에게 통보를 하고 들어가서 간단한 짐만 가지고 내려오는데 한 회사에 차량 한대를 가지고 들어가서 짐을 가지고 나오라고 지시를 했다. 일방적으로 기업들은 정부 조치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들어가는 시간 싣는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4시간 만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시간에 실을 수도 없고, 또 실을만한 인력도 들어가지 못했다. 1인 2명씩 올라갔는데 어떻게 싣나. 물건을 실을 수도 없고 짧은 시간에 가지고 나올수도 없어서 저희 회사는 실제적으로 모든 재산을 다 두고 몸만 온 셈이 됐다. 그러니까 기숙사에 개인 비품도 그대로 놔두고 짐을 싣다가 지쳐서 그냥 빈 차로 내려왔다.

당시에 기업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최소한도 통보를 주고 철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절차를 밟아야지 그냥 이렇게 아무런 절차 없이 군사작전을 하듯이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것은 기업들의 재산을 놓고서 몸만 빠져나오라는 일방적인 조치였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납득할수 없었다.

[파주=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지난달 16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개성공단 일대 들녘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2020.10.16 photo@newspim.com

- 당시 정부에서는 이에 대해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으로 발표를 하고 국회에 가서 개성공단 철수 결정을 설명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투자 금액의 90%를 지원보상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재원은 보험을 통해서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정부가 갑자기 정책을 펼 때는 재원을 마련을 해야 하는데 재원을 만들기가 쉽지가 않다. 그럴 때는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그 명분은 보험을 정부가 그동안 교류협력자금이라는게 있는데 보험금에 대한 예산이 있을 거라고 본다.

1인당 투자금이 100억원이라고 하면 행정부에서는 확대만 시켜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없는 세목같은 경우에는 이를 다시 국회에서 예결위에서 편성하기가 쉽지가 않으니가 명분은 제 생각에는 보험금을 통해서 지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를 확대했으면 기업들은 어느정도의 최소한도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확대가 너무 안됐었고 통이 90%라는 약속을 했으면 그만큼만 확대하면 되는데 굉장히 적게 하고 통이 언론에는 국민에게 발표하면서 국민들은 그렇게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정부가 당시 대국민 발표할 때 개성공단 기업인에게는 90%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그 문구가 전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됐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국민들은 개성공단 기업들에게는 정부가 투자금의 90%를 지원해줬다고 각인돼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정부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험을 통해 지원을 해줬는데 애초에 보험금이라는 것이 평소에 기업들이 만일을 대비해서 들어둔 것이다. 이를 확대라도 해줬으면 좋은데 이를 안해줬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 보험금을 적게 탔다. 보험금의 성격은 수출입보험 성격이기때문에 다시 재개가 되면 이 보험금을 다시 반납하는 조건이다. 결국 정부에서 실질적인 보상은 없었다는 거다. 보험금조차도 이자없는 대출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의 재산을 투자하게끔 개성공단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이는 개인이 만들어놓은 공단이 아니고 국가가 추진해서 만들어놓은 공단이아니냐. 그렇다면 철수명령을 내렸으면 공단 기업인들을 생각했다고 하면 시민들의 재산은 국가가 보존을 해야 할게아니냐. 책임을 져야하는 명분이있는데 이를 다하지 않는 국가가 돼버렸다. 이는 기업인들이 고스란히 빚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기업 상황은 어떤가

▲기업이라는 것도 그렇고 생업이라는 것도 제조공장을 중단시켰으면 한국에있는 영업이라든지 다 중단된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잇는 회사는 자동적으로 연명이 어려워졌다. 제3국에 투자를 하려고 보험금 받은걸로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대다수 다 실패를 보고 온다. 생산 기반을 그 회사는 당장 개성공단에서 잃어버렸다. 바이어들은 떠날 수 밖에 없다. 해외로 나가서 생산 기반이 금방 만들어지는게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데 누가 기다려주겠나.

그러다보니 이 회사는 어차피 개성공단에서 투자해서 손해받고 은행빚 정부에서 보험금 받은 걸 가지고 해외로 나가서 1년간 투자를 했는데 바이어는 없는거다. 결국 회사는 고사되고 망해버리는 상황이다. 철저하게 정부가 정책을 변경해서 기업들은 망하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런 책임이 없이 과거 정부가 시기가 돼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분노하고 남북관계 마중물이고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정치적 이유로 닫았을 때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통일부에서 개성공단 중단이 정당한가 합법적인가 하는 것을 당시에 현 정부가 이를 조사를 했다. 개성공단 중단은 불법적인 절차에 의해 중단됐다고 조사 발표가 됐다.

통일부에서 조사를 의뢰를 했다. 실태조사단이 만들어지고 거기서 나온 결과가 그 당시에 개성공단 중단은 과거 정부가 법을 적법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어떠한 절차 없이 통치자의 단순한 행동으로 중단시켰다 해서 위법이라고 적법하지 않다고 발표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이 근거에 의해 민주당 현 정부에서는 사실 정확하게 정당하게 기업들에게 아픔이있는 사람에게 위로해주고 보상을 해준다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

대선 때도 마찬가지로 공공연하게 개성공단 기업은 억울하게 됐고 중단된 사태는 과거 정부의 단순한 정치적 행위에 의해 실행됐다고 이야기하고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별 조치를 안했다. 정치인들은 역시 필요에 따라 자기네들의 책임지지 않는 부분을 너무 느꼈다. 적법하지 않은 절차라고 발표가 됐는데 행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따라 국회든 행정부든 기업들을 최소한 조치에 대한 부분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언론에서 다뤄주지 않고 잊혀지면 사장돼서 지금까지 흘러오는거다. 이런 기업들이 아픔이 있는 건데 생산 기반을 잃은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서 무슨 사업이 되겠나. 도산하고 망하고 굉장히 어려운 기업이 너무 많다.

중기중앙회에서 조사하니까 60%이상의 기업이 기로에 있다는 조사가 나왔다. 그 중에서는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왜냐면 기존에 대출도있고 공단에 재산도있으니 폐업도 못하고 휴업 내지 폐업에 준하는 회사도 15%~20%정도 된다. 실질적으로 나머지 40% 이상은 굉장히 불안한 구조로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이렇게 발표를 했다고 봤다.

개성공단 철수작업이 시작된 첫 날인 11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화물차들이 입경하고 있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공단 입주 기업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 정치권이나 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아픔을 갖고 있는 피해자 기업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해주면 한다.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인데, 기엄인들은 정부 정책이 부재하다고 놀거나 그렇지는 않는다. 그거에 대해 의지만 하고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청년처럼 나이가 70이 다됐는데도 저는 30~40대처럼 일하면서 회사를 재건하려고 열심히 뛰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조치가 만 6년째 되고 있는데 가만히 평생 해왔던 사업을 포기하고 정부만 원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한 개인이 어깨에 메고 가야하는 문제다. 아무리 정부가 실책을 해도 원망만 하지는 않는다. 이를 이겨내는 것은 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재기할수 있게끔 모든 노력을 통해서 성공하기를 저도 열심히 뛰고 있다.

보상까지 바라는게 아니다. 최소한 기업인들이 투자한 금액만이라도 돌려받았으면 한다. 투자 금액에 대한 것은 명백하게 우리 회계상으로 꼼꼼하게 따져져서 검증돼서 정부가 알고 있다.

이 역시 실질적 투자금액에 비교하면 약 60~70%뿐이 안되겠지만 그래도 정부가 확인한 금액은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는 보상이 아니고 보험금 확대를 통해서 기업들에게 최소한도 너무 힘드니까 확대를 해서라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게 우리 입장이다.

사실 보상을 해야 하는데 보상을 안하고 지원을 해줬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게 대출이다. 이자없는 대출이다. 이를 보험을 통해 확대해달라는거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확인한 금액을 보험금을 통해 확대해달라는 뜻이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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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만 남기고... 노만석 '떳떳하게' 퇴임 [서울=뉴스핌] 김지나 김영은 기자 = 노만석(54·사법연수원 29기)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로 논란이 확산되자 14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퇴임사에서도 논란의 핵심인 항소 포기 과정에서의 '윗선 압력' 의혹에 대한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날 노 대행이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서는 항소 포기 결정에 구조적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해 퇴임 이후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항소 포기' 정쟁 한가운데 세워놓고...'외압 의혹'엔 입 닫은 퇴임사 이날 오전 10시 30분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노만석 직무대행의 퇴임식이 진행됐고, 약 30분 후인 오전 11시경 퇴임사가 공개됐다. 특히 관심을 모은 대목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과정에서 법무부 외압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노 직무대행이 퇴임사를 통해 해당 의혹의 진실을 밝힐지 여부였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 논란 끝에 사표를 낸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을 타고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5.11.14 yooksa@newspim.com 하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은 퇴임사에 없었다. 항소 포기와 관련해 퇴임사에서 언급된 부분은 "최근 일련의 상황에 대하여 검찰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검찰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저 스스로 물러나는 만큼, 일각에서 제기되는 검사들에 대한 징계 등 논의는 부디 멈추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항소 포기 과정과 관련된 내용은 공식적으로 공개된 퇴임사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전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상황과 자신의 입장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됐다. 인터뷰에서 노 대행은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같았으면 무난했을 텐데 솔직히 지금은 (정권과 검찰이) 완전히 역방향"이라며 "검찰청을 폐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결이 다른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모든 것은 나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윗선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를 경우 선택지는 끝까지 맞서 싸우든가 받아들이든가 딱 두 가지"라며 "(윗선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건 내 생각이고 내 결정이 됐기 때문에 이제 와서 외압을 받았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윗선에서 항소 포기를 요구했고 자신은 항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생각이 달랐지만, 끝까지 맞서 싸울 수 없었다는 점을 내비친 대목이다. 노 대행은 또 자신의 결정은 조직을 위한 일로 떳떳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표를 쓴 날 아침 출근길에 왜 지하가 아니라 기자들이 모인 출입문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아느냐"고 반문하며 "조직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고, 그래서 떳떳했기 때문에 정문으로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퇴임식에서도 노 대행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고 퇴청했다. ◆ 與 이참에 '검찰파면법' 강행... "내부 우려를 항명으로 보는 것 안타까워"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금주•백승아•김현정 원내대변인(오른쪽부터)이 14일 국회 의안과에 검찰청법•검사징계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2025.11.14 pangbin@newspim.com 노만석 대행은 스스로 '대장동 항소 포기'에 책임을 진다며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미 항소 포기 외압 논란이 정쟁으로 번진 만큼 검찰 조직은 외풍에 더욱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검찰총장을 포함한 검사를 탄핵 절차 없이 일반 공무원처럼 파면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검사 파면법')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을 '정치검사'로 규정하며 '검사 힘 빼기'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일 노만석 대행이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의 항소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항소 불허 지휘를 한 이후, 전국 검사장 18명은 노 대행에게 항소 포기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했고, 참모진인 대검 부장(검사장)들까지 노 대행을 찾아가 사임을 요구한 바 있다. 노 대행은 이에 대해 퇴임사에서 "검찰 구성원들이 검찰의 기능과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를 내부적으로 전한 것임에도, 이를 항명이나 집단행동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는 조희영 전주지검 인권보호관이 글을 올려 "검사의 징계를 일반 공무원보다 엄격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검찰 내부 반발을 '정치 검사들의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검사들의 반발을 가용한 법적·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해 저지·분쇄하겠다'며 발의한 법안이 '검사 파면법'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유사 입법으로 검사 파면을 강화해도 실질적으로 검찰 업무의 성격상 파면 요건에 해당할 만한 사례가 많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조직 독립성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이번 법안은 당장의 정치적 시그널이나 검찰 견제 성격이 강하고, 실무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검찰의 반발을 무조건 정치적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abc123@newspim.com 2025-11-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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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왕수복, 광대 조건 다 갖춘 인물"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신개념 국악 방송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의 2-1편이 19일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스팟(K·SPOT)'을 통해 공개됐다. 앞서 제1화에서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준비됐다. 제1화 '광복'에서는 제1편 '작금'을 시작으로 2편 '김구, 판소리 배우다', 3편 '이승만과 아리랑', 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제2화는 '기생'을 주제로 다루며, 이날 2-1편에서는 '왕수복, 기생이 되다'를 주제로 한 내용이 공개됐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 제2-1편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변상문. 2025.11.13 alice09@newspim.com 왕수복은 1917년 평양에서 태어나 2003년 사망했으며, 조선 민요를 세계에 알렸던 기생이기도 하다.왕수복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성격은 쾌활하고 명랑했다고 한다. 당시 잡지 '삼천리'에서는 '왕수복의 목소리가 청아했다', '우리 민족의 한의 정서를 잘 표현했다'고 평했다. 평안남도 강동군 입성면 남경리에서 태어난 왕수복은 , 화전을 일구는 농사꾼의 4남매 중 셋째다. 아버지가 이름을 '성실'로 지었으나 할머니가 '수복'으로 바꾸었고, 훗날 불같은 사랑을 나눈 소설가 이효석은 왕수복을 '실'로 불렀다. 변사로 나선 변상문 이사장은 왕수복에 대해 "그 당시 언론에서 표현하기를 '목소리가 청아했다',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인 한을 아주 잘 표현했다'라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7살 어린 나이에 부잣집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주는 일을 했다. 그때 풍금 소리를 듣고 마음 속에 내재된 소리를 하게 되고, 이를 듣게 된 선생님의 추천으로 명륜 여자 공립 보통학교에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 제2-1편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변상문. 2025.11.13 alice09@newspim.com 변 이사장은 "가난해서 3년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이후 어머니한테 기생을 권유받고, 기생 권번에 입학하게 됐다. 그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소리'였다. 가곡, 민요, 시조, 판소리 등을 배웠다"고 소개했다. 최한이 소리꾼은 "정가(가곡·시조), 민요, 판소리 등이 전통음악의 3대장이다. 저는 국악 중·고등학교를 통해 정가를 배웠는데, 변사님은 알고 계시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변 이사장은 "시조는 가난한 사람들이 장구 장단에 맞춰서 부르는 것이고, 삼현육각 제대로 깔고 부르면 가곡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최 소리꾼은 "'가난'이라고 말하신 것은 개그인 걸 알고 있다. 삼현육각 편성 유무에 따라 정가가 나뉘기도 한다"라며 "시조는 한시와 고시를 가지고 운율을 붙여서 부르는 노래로, 사랑방 음악이라고도 불린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2화 제2-1편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변상문. 2025.11.13 alice09@newspim.com 이어 "맑은 소리는 경기 민요, 한의 정서는 판소리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진도 아리랑' 한 구절을 가창했다. 그러자 변 이사장은 "우리 음악은 애이불비(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않다는 뜻)하고 낙이불류(즐거워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다라는 뜻)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절제의 미악이 바로 우리의 소리"라고 정의했다. 또한 변 이사장은 "왕수복은 이렇게 노래뿐만 아니라 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등 악기도 배웠다"고 말했다. 이에 최한이 소리꾼은 즉석에서 가야금 연주를 선보였다. 이후 최한이는 광대(조선 말 소리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 얽힌 판소리를 가창하며 "광대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인물치레, 두 번째 말 잘하는 사설치레, 그리고 다음이 득음이고 춤"이라며 "왕수복은 이를 다 갖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alice09@newspim.com 2025-11-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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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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