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이통3사, 주파수 재할당료 두고 줄다리기
"디지털 뉴딜로 투자부담 커졌는데 재할당 대가 과중해"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들어오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나갈 돈이 많으니 난감합니다."(한 이동통신사 관계자)
"재할당 주파수 대역은 손님이 줄어 죽어가는 상권과 비슷합니다. 한창일 때의 임대료를 죽어가는 상권에서도 유지한다면 사업주는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또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
수조원대 주파수 대가부터 수십조의 디지털 뉴딜 투자금 등 궁지에 몰린 이통사들이 롱텀에볼루션(LTE) 일부 대역 재할당 포기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올 연말부터 내년까지 3세대(3G) 이동통신서비스, LTE 이동통신용 310메가헤르츠(㎒) 대역폭 주파수 재할당이 이뤄지는데, 주파수 대가가 너무 높게 매겨진다면 이중 LTE 이동통신용 주파수 대역 일부는 재할당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거 경매대가를 반영했을 때 정부가 재할당 대가로 요구할 수 있는 금액은 2조6000억원에서 최대 3조원 사이. 현재 이통사들이 생각하는 금액은 약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정부안과 1조원 이상 차이가 난다.
정부가 주파수 재할당 대가산정 방안을 마련하는 올 연말까지 정부의 주파수 대가 산정방식에 대한 추측만 무성하다. 다만 이통3사는 디지털 뉴딜, 5G 인프라 구축 등의 투자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이용자가 계속 줄고 있는 주파수 대역의 사용료마저 높게 책정된다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에 차라리 일부 대역을 포기하겠다는 '초강수'까지도 입길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주파수 재할당 논의 지지부진한 새 투자항목만 확대
5일 업계에 따르면 주파수 재할당 이슈의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5월 주파수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한 전파정책자문회의에서 주파수 재할당 논의는 아직 재할당 대가와 같은 구체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반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를 비롯한 이동통신3사는 올해 말 재할당 대상이 되는 3G와 LTE 주파수 총 320MHz 폭 중 LTE 일부 대역을 포기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부터 불거진 주파수 재할당 대가 산정을 사이에 둔 정부와 이통업계의 줄다리기가 하반기 들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데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대가 산정에 대한 내용은 크게 진전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그 사이 이통3사의 투자 부담은 크게 늘었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위해 5G 전국망 구축 시기를 2023년으로 기존 계획보다 3년 단축하겠다고 밝혔고, '미디어 발전전략'을 위해 K-콘텐츠 투자 생태계 구축에도 이통사들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을 위한 이통3사의 총 투자금액만 24조5000억~25조7000억원이다.
그럼에도 홍진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지난달 15일 미디어 브리핑에서 "주파수 재할당 이슈는 디지털 뉴딜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5G 투자시기를 늦출 수 없다면 LTE 일부 대역 포기까지 불사하겠다는 이야기가 이통3사에서 나오는 이유다.
◆"LTE 대역 포기는 이통사의 협상카드…실제 포기 가능성은 낮아"
이통3사가 재할당 포기를 검토 중인 LTE 주파수 대역은 전국망이 아니라 인구밀집지역에 구축된 일부 대역이다. 사용자들이 몰릴 경우 원활한 통신을 위해 구축해 둔 것이다.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트래픽 헤비 유저들이 5G로 갈아타는 추세여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실상 현재 이동통신서비스 중 가장 많은 가입자 수를 가진 LTE 이용자들이 입을 불편은 불가피하다.
다만 현실화 가능성은 크게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주파수 재할당 포기 이야기가 나오기에는 이른 시점일 뿐 아니라 이용자 보호의무가 있는 이통사들이 쉽게 내릴 수 없는 선택이어서다.
앞서 김희규 SK텔레콤 정책개발실 기술정책팀장은 "주파수 재할당은 생태계를 다 조성해 두고 그 안에 이용자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규할당과 달리 이용자 보호가 제1원칙이다"라며 이통3사의 주파수 재할당 포기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전파정책자문회의에서는 주파수 일부를 회수하지 않고 이통3사가 원하면 할당한다는 정도의 방향성만 정해진 상태"라며 "논의 초반이기 때문에 이통사 입장에서는 주파수 대가를 낮게 받으려고 LTE 일부 대역 포기안을 협상카드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통3사가 주파수 대가 내면 수혜는 네이버·카카오가?...재원활용 명확히 해야
이통사들은 주파수 대가를 내도 수혜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돌아간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이통3사의 시가총액 변화 [자료=KTOA] 2020.08.04 nanana@newspim.com |
김희규 팀장은 "시가총액을 비교해보면 네이버와 카카오 각 기업이 이통3사를 다 살 수 있다"며 "그럼에도 이통3사는 수조원대 주파수 할당대가와 R&D 기금을 내고,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엔씨소프트는 R&D 기금의 수혜만 받는다"고 한탄했다.
현행법상 주파수 할당료는 방송통신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들어가 방송통신 및 정보통신 연구개발 사업 등에 쓰인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의 100%, 방송통신발전기금의 60~70%가 주파수 할당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주파수 재할당 대가의 용처를 좀 더 명확히 함으로써 통신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에서는 주파수 이용계획서에 통신요금 인하계획을 포함시키면 심사시 가점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이통업계는 이 역시 실효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김희규 팀장은 "요금인하계획을 반영해 (해당 사업자에) 메리트를 주겠다고 하지만 그 메리트가 재할당 대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메리트가 아니다"라며 "어떤 메리트를 주겠다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재할당 대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영길 과기정통부 주파수정책과장은 "지금은 연구반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단계로 사업자와도 소통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nanan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