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환자에 감염돼 숨져…유족, 3억원 손배소 제기
법원 "정부 역학조사 부실책임 인정"…원고 일부 승소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80번 환자로 확진 판정을 받고 숨진 피해자 유족들에게 정부가 대응 부실로 인한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심재남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고(故) 김모 씨의 배우자 배모 씨와 아들 김모 군이 국가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정부는 배 씨에게 1200만원, 김 군에게 800만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 '80번 환자'의 유족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정부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02.18 mironj19@newspim.com |
재판부는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가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를 부실하게 한 책임을 인정해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림프종을 앓았던 김 씨는 2015년 5월 27일 기저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그는 당시 '슈퍼 전파자'로 불린 14번 환자와 3일간 응급실에 있다가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같은해 6월 7일에서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 격리됐다. 그러나 같은해 10월 1일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격리해제조치로 퇴원했다가 다시 메르스 증상이 의심돼 격리병실로 이송됐다. 그는 172일간의 투병생활 끝에 같은해 11월 25일 숨을 거뒀다.
이에 배 씨 등 유족은 2016년 6월 국가와 병원을 상대로 3억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배 씨는 국가가 14번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부실하게 해 초동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4번 환자는 폐렴으로 평택성모병원을 찾았다가 1번 환자와 접촉해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접촉 사실이 간과된 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배 씨는 또 14번 환자의 감염 확산에 대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삼성서울병원과 메르스 치료 때문에 김 씨의 기저질환인 림프종 항암치료를 적기에 하지 않은 서울대병원에도 책임을 물었다.
배 씨 측 대리인은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당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호흡기 질환이 의심되는 14번 환자의 엑스레이 촬영 직후 80번 환자가 촬영했다"며 "비말감염에 의한 접촉가능성을 문제삼아 책임을 물은 것이고 재판부가 국가의 관리부재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경우 정부에서 노출자와 확진자들의 노선을 공개하고 있는데 당시 그런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호흡기 질환자인 14번 환자와 림프종 환자인 80번 환자의 노선을 중첩적으로 방치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감염에 따라 인정된 국가배상 위자료 액수가 적고 병원 측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점 등은 항소심에서 따져볼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배 씨도 판결에 대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2015년에 받았어야 하는 사과를 2020년이 돼서 이런 결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절망적이다"라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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