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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4-3) 소비에트 체제 극복에 몰두한 옐친

기사입력 : 2019년01월30일 14:29

최종수정 : 2019년01월30일 14:30

우랄지방 출신 '시골뜨기' 옐친, 현장중심 정면돌파형 행동가
고르바초프에 발탁된 후 벼락출세→숙청 거치며 '은원' 깊어져
러시아 최초 대통령으로 재기...소비에트 공산주의 타파 앞장

[서울=뉴스핌] 김흥식 객원논설위원 = 옐친은 거의 모든 면에서 고르바초프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 고르바초프가 최고 명문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지성적이고 논리적인데 비해 옐친은 우랄 지방대학 출신으로 토목공학도 답게 현장 중심적이며 정면 돌파형 행동가로 유명하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고르바초프 쪽이 서구적이라면 옐친 쪽은 다분히 슬라브적이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핌]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1995년 9월 연설 자료사진. 2018.01.01.

◆옐친, 우랄지방 출신 토목공학도...현장중심 정면돌파형 행동가

그 부인들도 부창부수라는 말처럼 서로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성격이었다. 고르바초프 부인 라이사 여사는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미래의 남편 고르바초프를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라이사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어서 전통적인 러시아 여성과는 아주 달랐다.

남편이 집권하자 소련 문화재단의 부총재직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부부동반으로 해외방문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나랏일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고르바초프의 훌륭한 보좌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민족주의적 성향이 농후한 보통 러시아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반면 옐친 부인 나이나 여사는 남편처럼 우랄지방 대학에서 수리관개학을 마치고 평범한 연구원 생활을 했다가 옐친을 만났다. 퍼스트 레이디 신분임에도 가정부를 두지 않고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들고 남편 옷을 다림질 하는 등 보통 가정주부와 다르지 않았다. 옐친이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정적 타입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대조적인 커플이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한 달 차이인 1931년생 양띠이고 라이사와 나이나는 1932년생 원숭이띠로 서로 동갑나기들이라는 점이다.

◆‘시골뜨기’ 옐친, 고르바초프에 발탁 후 벼락출세→숙청...깊어진 ‘은원’

둘 다 지방당 서기를 거쳐 중앙으로 진출했다. 당시 정치국 실세인 안드로포프와 수슬로프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 중앙당에 먼저 입성한 고르바초프는 1985년 체르넨코 사망으로 대망의 당 서기장이 되었다. 소련 역사상 최연소 지도자가 되었지만 보수파에 둘러싸여 개혁·개방을 야심차게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개혁지지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우랄지방 스베르들로프스크(지금의 에카체린부르크) 지방당 서기이던 옐친을 발탁, 당 중앙위원회 건설담당 서기로 임명했다. 옐친은 얼마 후 핵심 요직의 하나인 모스크바 시 당 제1서기와 정치국원으로 파격 승진했다. 고르바초프와 달리 정치적 배경이 없던 시골뜨기 옐친으로서는 고르바초프의 신뢰를 바탕으로 벼락출세길에 오른 셈이다.

공고해 보였던 정치적 동지 관계에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혁의 본질적 문제와 속도를 놓고 고르바초프의 온건론과 옐친의 급진개혁론이 맞부딪치면서 파열음이 생겨난 것이다. 옐친은 고르바초프 개혁을 공개 비판했다는 이유로 모스크바 시 당 서기와 정치국원에서 밀려나 당 중앙위원 후보위원으로 대폭 강등됐다. 사실상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은덕을 입은 옐친의 배신에 격노해 다시는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옐친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한이 맺힌 옐친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한때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심적 타격이 컸다고 한다. 나중에 정상에 오른 옐친이 정치적 은인이기도 한 고르바초프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을 보면 마치 응징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같다.

러시아 격동기를 주도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실제모습을 쏙 닮은 입상이 모스크바 시내에 설치돼 시민들과 관광객의 기념사진 촬영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뉴스핌DB]

◆옐친, 러시아 최초 대통령으로 재기...쿠테타 진압 새 지도자 부각

절치부심하던 옐친에게 재기의 기회가 왔다. 1989년 소련인민대표대회 대의원으로 당선된데 이어 다음해 5월 실시된 러시아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고르바초프와 달리 민선으로 당선된 옐친의 정치적 위상이 순식간에 고르바초프와 대등한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1년 후 발생한 쿠데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쿠데타군 탱크에 올라 사자후를 토하며 영웅적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신감을 잃어가는 고르바초프와 점점 커지는 대담함을 보이는 옐친 간의 정치적 처지는 완전히 역전됐다.

고르바초프에게 개인적 감정이 많은 옐친은 소비에트 체제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고르바초프를 가차 없이 몰아쳤다. 공개적으로 수모를 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고르바초프에게 동정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옐친의 지나친 적대감 표시에 비판도 있었다. 오죽하면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콜 독일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 구하기에 나서기까지 했겠는가.

소련을 주도적으로 해체하고 기세높게 출범한 옐친이지만 그의 통치는 희망보다는 실망을 안겨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의회보수파와 내란에 가까운 정쟁을 벌이고 민영화를 포함한 시장경제 정책이 시행착오를 거듭하자 소련해체 이전보다 모든 것이 악화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96년 재선에 겨우 성공했지만 경제사정의 악화로 98년에는 국가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까지 선포돼 '세계의 병자'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정치에 흥미를 잃은 옐친은 다음해인 1999년 돌연 그동안 후계자로 키워온 푸틴 총리를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하고 자신은 사임해 버렸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숙명의 정적관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모든 면에서 서로 달랐지만 특히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입장에서 첨예하게 대립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느슨한 형태로나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으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2004년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세계뉴스통신사 대회' 참석자. 왼쪽에서 두번째는 야마노우치 일본교포통신 사장,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김병호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사진=뉴스핌DB]

◆옐친, 공산주의 타파에 앞장...레닌 묘 이장명령-‘소비에트’ 명칭 사용금지

옐친은 정반대였다. 어린 시절 그의 부친이 반 소비에트 활동으로 수년간 투옥된 사실을 잊을 수 없었던 옐친은 소비에트 체제를 철저히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소련이 해체되자마자 붉은광장에 안치돼 있는 레닌의 시신을 이장하라는 결정을 내릴 정도였다.

레닌의 묘 이장 명령은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여겨졌다.(이장명령은 반대여론 등으로 계속 연기되었고 후임 푸틴대통령도 역시 집행을 계속 미루면서 붉은광장에 그대로 안치돼 있다). 러시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공산주의 골수분자였던 옐친이 철두철미한 반공투사로 변신한 것이다.

미국을 방문한 옐친이 미 의회지도자들과의 회동에서도 자신의 반공 입장을 명쾌하게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국에는 공산당이 있지만 우리 러시아에는 이제 공산당은 없다”고 했다.

공산주의 타파에 자부심을 가진 옐친은 스스로를 ‘러시아 민주주의 수호자’로 불리길 원했고 추종자들이 ‘러시아 민주주의 아버지’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이 힘겹게 일궈놓은 ‘민주화’와 ‘자유화’라는 정치적 자산을 옐친이 가로챘을 뿐이라는 혹평도 있다.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옐친의 단절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다음의 실례로도 짐작할 수 있다. 옐친은 ‘소비에트’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다. 고르바초프를 물리치고 ‘도전받지 않는 지도자’ 반열에 오르자 모든 정부기관과 공공기관들에 ‘소비에트’가 붙은 명칭을 모조리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대부분의 정부 기관들이 지시에 따랐다. 문제는 타스통신이었다.

타스 통신 사장직을 20년 이상 유지한 '처세의 달인' 이그나텐코가 한국 뉴스통신사와 협력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09. [사진=뉴스핌DB]

◆소비에트연방 뉴스통신사 '타스'→기형적 별난 이름 '이타르-타스'로 한때 개명 

원래 타스라는 명칭은 ‘소비에트 연방 통신사’라는 뜻으로 러시아어 앞머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따라서 옐친 지시대로라면 타스라는 명칭은 쓸 수 없다. 정부기관 명칭이야 내부적인 사항이라서 ‘소비에트’를 빼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타스라는 이름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오래전부터 인식되어온 브랜드라 ‘소비에트’를 제거한 이름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이타르-타스‘라는 이름이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이타르-타스에 대해 처음에는 모두들 갸우뚱했다. ’이타르‘라는 이름 자체가 ’러시아 정보통신사‘라는 의미로 러시아어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타르-타스‘로 하면 ’러시아정보통신사-소비에트 연방 통신사‘가 되는 것이다. 별난 이름으로 10여년 사용하다가 최근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원래의 ’타스‘로 되돌아갔다.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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