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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의 자존심, 어니스트 헤밍웨이

기사입력 : 2017년09월13일 08:06

최종수정 : 2017년09월13일 08:06

예술보다 사랑, 사랑보다 예술(11)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5일째 되는 날 조그만 낚싯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노인은 거대한 청새치와 며칠 동안 끈질길 사투를 벌여 매우 힘겹게 청새치를 작살로 잡아 승리의 드라마를 쓰는 듯했으나, 결국 돌아오는 길에 뜻밖에 상어 떼의 매서운 공격을 받게 된다. 거대한 청새치는 결국 앙상한 뼈만 남은 채로 노인이 탄 배와 함께 해안으로 돌아온다. 녹초가 되어 버린 노인은 피곤에 젖어 이내 잠이 들지만, 다시 사자의 꿈을 꾸게 된다.”
《노인과 바다》는 쉬운 단어의 선택, 간결하지만 상상과 명상을 유발하는 문장, 인생에 대한 문학적 관조가 녹아 있는 작품이다.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 하우스 전경 <사진=이철환>

헤밍웨이는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그의 작품 내용은 기본적으로 비정치적이고 인간적이다. 또 경험이라는 신앙을 믿었기에 등장인물들을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고, 그들이 내적인 본성을 드러내도록 했다. 문체는 간결하고 명료하며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다. 그의 대다수 작품들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헤밍웨이는 사안에 따라 뚜렷이 대조되는 상반된 성향을 드러냈다. 한편으로는 자기중심적이고 쾌락적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에 불탔고 국가를 위해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삶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고백했듯이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 타고난 스포츠맨이자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냥이나 낚시에 시간을 덜 소비했다면 더 많은 글을 썼을 것이라고 만년에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전쟁에 관심을 가져 평생 전쟁에 몰두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 그는 이탈리아의 전방부대에 입대하여 구급차 운전사로 참전했다. 그러다가 1918년 심하게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전쟁 경험은 1929년 발표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의 소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이자 후에 독재자가 된 프랑코에 맞서 싸우는 공화국 정부군 편에서 참전하기도 하였다. 스페인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헤밍웨이는 4차례나 그곳을 여행했다. 한 번은 통신원으로 방문했다. 그 전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가 씌어졌다. 그는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파리해방 전투에도 참여했다.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 1961)는 1899년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17년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Star)'신문사 기자가 되었다. 저널리즘 특유의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갖가지 사건에 관한 기사를 신속하게 작성한 이때의 경험이야말로 훗날 이른바 ‘헤밍웨이 문체’로 일컬어지는 독특한 문체의 밑거름이 되었다. 압축성과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가급적 짧고 명료한 문장을 구사하는 법을 가르쳤던 신문사의 기사 작성 매뉴얼이야말로 “글 쓰는 직업을 위해 배운 최고의 규칙들이었다.”고 헤밍웨이는 회고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의무대 운송병으로 참전했던 그는 전후 다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토론토 스타'지의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특파원으로 파리로 건너가 소설을 쓰게 된다. 1920년대의 파리는 예술가의 천국, 특히 미국인 예술가의 천국이었다. 전후 달러의 가치가 크게 상승해서 가난한 미국인 예술가의 수입으로도 파리에서는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거기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F.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피카소 등과 교류하였다. 이 파리 체류 시절 전후의 '잃어버린 세대'를 다룬 장편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를 발표했는데, 이 소설로 처음으로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헤밍웨이는 모두 네 차례 결혼을 하였다. 그의 작품은 이들 뮤즈들과 함께 탄생한 영감의 기록물이었던 셈이다. 1921년 결혼한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은 연상의 여인이었다. 결혼 이후 이들 부부는 헤밍웨이가 해외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은 파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7년 '보그'의 편집자인 폴린 파이퍼를 만나면서 해들리와 이혼하게 된다. 재력가의 딸인 폴린 덕분에 헤밍웨이는 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 헤밍웨이는 파리를 떠나 휴양지로 유명한 미국의 최남단 마이애미 주 키웨스트로 갔으며, 이후 12년간 이곳에 살게 된다. 언제부턴가는 집필보다 오히려 바다낚시로 소일하며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냈다.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다룬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쓴 것은 그녀와 함께한 기간 중이었다. 또 당시의 생활은 1952년 발표된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낳은 밑거름이 되었다. 1933년에는 아프리카를 여행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반영된 그의 대표적인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폴린 파이퍼와도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이혼하게 된다. 1936년 스페인에서 내전이 시작되어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헤밍웨이도 1937년 이 전쟁에 뛰어들었는데, 여기서 함께 전장을 누비던 미국 기자 마서 겔혼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헤밍웨이는 폴린과 헤어지고 1940년에 9세 연하의 마서와 결혼했다. 마서 겔혼은 헤밍웨이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결혼 후 그들은 아예 쿠바로 건너가서 아바나의 ‘핑카 비히아’라는 작은 농장에 정착했다. 여기서 스페인내전을 소재로 한 장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완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헤밍웨이는 또 다시 전쟁에 뛰어든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헤밍웨이의 사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유명 작가의 부인으로서보다는 언론인으로서의 명성을 더욱 바랐던 마서가 결국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이후 헤밍웨이는 전쟁 말기에 만난 신문기자 메리 웰시와 1946년 네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메리 웰시와는 여생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쿠바의 핑카 비히아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곳에서 다시 진지하게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노인과 바다》를 출판한다. 이 작품은 1953년 소설부문 퓰리처상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 다음해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뒤 이들 부부는 널리 여행을 다녔는데, 아프리카 여행 중 에는 두 차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마친 후 헤밍웨이는 쿠바로 돌아왔다. 수도 아바나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Hotel de Ambos Mundos) 등에서 기거하면서 짬짬이 집필활동을 했고, 저녁이면 엘 플로리디타 바에서 칵테일을 즐기며 현지인들과 담소를 즐겼다. 그러나 점차 우울증이 심화되어 갔고 폭음을 일삼았다. 더 이상 집필활동이 불가능해져 갔다.

1959년에 쿠바혁명으로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정권을 잡게 되자 헤밍웨이는 이듬해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왔다. 카스트로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통해 게릴라전을 배웠다고 말하며 존경을 표시했지만, 독재정권을 싫어하는 헤밍웨이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웠다. 이후 미국 아이다호 주의 케첨에 정착해 살았다.

우울증을 앓던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오전 7시 30분 케첨 자택에서 사냥총으로 자살했다. 그의 아내 메리는 '헤밍웨이가 사냥총을 닦던 중 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다 1966년에야 자살을 인정했다.

다음은 헤밍웨이가 남긴 명언들이다.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태양이 저녁이 되면 석양이 물든 지평선으로 지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떠오른다. 태양은 결코 이 세상을 어둠이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태양은 밝음을 주고 생명을 주고 따스함을 준다. 태양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희망이 곧 태양이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승리한다면 어느 곳에서도 승리할 것이다. 이 세상은 멋진 것이며, 싸워 볼 만한 가치가 있기에 나는 이 세상에서 떠나기를 대단히 싫어한다.”

“사람은 모든 길을 갈 수는 없다. 성공은 한 분야에서 얻어야 하며, 우리 직업은 오직 하나의 인생 목표로 삼아야 하며, 다른 모든 것은 이것에 종속되어야 한다. 나는 일을 어중간하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이 옳으면 대담하게 하여라. 그것이 그르면 하지 말고 버려라. 이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성공적인 삶이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There is nothing noble in being superior to your fellow man; true nobility is being superior to your former self.)”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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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세협상, 명백한 중국의 승리"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미중 관세협상에 대해 중국내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승리'를 거뒀다며 고무된 분위기다. 중국의 매체들은 13일 일제히 미중관세협상 결과를 보도하고 나섰다. 관영매체들은 '승리했다'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지만, 협상이 성공적이었다는 논조를 유지했다. 중국의 SNS상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중국이 승리했다는 반응 일색이다.  12일 미중 양국의 협상단은 스위스 제네바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145%에서 30%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추가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5년전인 2020년 1월 타결됐던 미중 관세협상 결과와는 차이가 크다. 당시 중국은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 구매할 것을 약속했고, 강도 높은 지재권 보호 ,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 환율 투명성 강화 등을 보장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관세를 일부 인하했다. 하지만 이번 미중 관세협상에서는 양국이 모두 동등하게 115%의 관세를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중국의 미국산 물품 구매나 시장개방에 대한 약속은 없었다. 양보 일변도였던 5년전과 달리 이번 미중 관세협상은 공평하고 평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매체 블룸버그는 "이번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얻었고, 미국은 끝내 양보했다"며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강대강 전술이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양국의 제네바 경제·무역 회담 공동성명 발표는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승리이자 중국이 투쟁을 견지한 결과"라며 "미국의 무역 괴롭힘에 맞서 항쟁할 용기가 조금도 없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번 승리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논평했다. 광다(光大)증권은 13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국제 무역 투쟁에서 패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굳건하게 맞선 결과 단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가장 먼저 미국에 대등한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국내적 국제적으로 대응조치를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자오상(招商)증권은 "중국은 미국과 공평하고 평등한 협상을 진행했으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호평했다. 이어 "중국은 우호적인 국가들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중국 경제의 대미 의존도를 낮췄고, 기술 진보와 군사력 확충 등이 이뤄졌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같은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여론이 지나치게 고무되는 것을 경계하는 논설기사도 나왔다. 신화사는 '중미 경제무역 회담이 세계 경제 압박을 낮추고 신뢰를 증진시켰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양국의 대화 재개는 기쁜 일이지만, 양국간의 의견 차이 해소는 복잡하고 어려우며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오성홍기와 미국 성조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ys1744@newspim.com 2025-05-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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