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박지원 기자] KBS 1TV ‘인간극장’은 1~5일 ‘윤화백이 웃던 날’ 편을 방송한다.
이날 ‘인간극장’에서는 일흔 다섯 윤명호 화백의 도전 인생을 전한다.
2016년 6월 12일 일요일, 평화로웠던 전북 완주군 내아마을에는 까만 연기가 솟구쳤다. 그곳은 바로 한국화의 맥을 잇고 있는 백당 윤명호(75) 선생의 화실 청우헌이었다.
평생을 일궈 온 70여 점의 그림과 예술품이 한 순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땅을 치며 대성통곡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청우헌의 주인은 타오르는 화실 앞에서 껄껄 웃고 있었다.
올해 일흔 다섯의 윤명호 화백. 내년이면 그림 인생 60년을 맞이하는 터라 전시회를 준비 중이었다. 전시회가 다가오니 작업에 몰두하긴 했지만 윤 화백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망설여지고, 공연히 불편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찰나 불이 나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잡념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답을 찾은 듯, 그는 가슴이 뻥 뚫려 울음 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
◆예술의 피가 흐르는 그 아버지에 그 딸
삼남매 중에서도 소문난 효녀 윤수연(42) 씨는 아버지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주 시내에 살며 자주 아버지의 집을 오가는 수연 씨는 한 걸음에 달려왔고, 아버지가 무사하다는 것에 우선 안도했다. 그러나 아버지 평생의 역작들이 불에 탄 작업실을 보니 깊은 슬픔에 잠겼다.
아버지의 작업실이자 자신의 음악연습실이기도 했던 청우헌. 아버지가 막내딸을 위해 직접 꾸며 준 음악연습실이라 수연 씨에겐 더 특별한 공간이었다.
어릴 적 가난했던 아버지가 처음 사 준 플루트로 음악을 꿈꿨던 소녀가 어느 새 플루티스트 윤수연이 됐다.
수연 씨는 학벌 없이, 인맥 없이, 돈 없이 오로지 예술의 혼을 불태우던 아버지를 존경했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용기를 내 독학으로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한때는 아버지의 예술적 기질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열망했고, 그러기에 전시회를 준비하던 아버지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런데 불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잿더미 앞에서 껄껄 웃는 아버지의 긍정적인 모습에 수연 씬 눈물을 거두고 그 자리에서 플루트를 꺼내 연주했다.
아버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진심어린 연주였다.
◆불은 많은 것을 앗아간 것 같지만, 실은 가장 큰 기회를 줬다
윤 화백은 작업실 위에 마련해 둔 작은 황토방에서 새로운 독거 라이프를 시작한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모르고 작은 거처 하나를 손수 지어놓은 공간인데,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것 같이 요긴하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 했다고, 미루었던 백내장 수술도 하게 된 윤 화백. 눈까지 불편하니 설상가상 심신이 괴로울 법도 한데, 윤 화백은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며 기꺼이 불편함을 즐기고 있다.
이런 아버지가 너무도 안쓰럽고 걱정되는 수연 씨는 하루 빨리 아버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실을 마련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작은 공연을 올린다.
매일 같이 잿더미를 뒤져 그나마 남아있는 낙관과 각종 화구들을 보물찾기하듯 찾는 게 일상인 윤화백. 화방에 들러 화구를 사고, 새롭게 그림을 시작하는 윤 화백은 십대 때 처음 붓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설레고 열정에 들떠 있다. 한 평생을 묵묵히 걸어온 길이지만, 갈림길에서 새로운 길을 정한 듯 그는 거침없다.
이런 윤 화백에게는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가 하나 있다. 10년 넘게 별거 중인 아내 정길순(70) 씨와의 만남. 자신의 길을 걸어가느라 아내와 아이들에겐 소홀했던 남편에게 아내는 모든 정을 내려놓은 상태. 수연 씨 삼남매는 지금 아버지 옆에 가장 의지가 되어 줄 사람이 어머니기에 중재를 해보지만, 어머니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평생을 일궈 온 역작들이 모조리 타 버리는 불길 속에서도 호탕하게 웃었던 윤명호 화백의 미소. 모르긴 해도 그 웃음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시련은 있어도 결코 실패는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 멋진 웃음이 아니었을까. 일흔 다섯,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긍정의 힘을 가진 노장이 다시 붓을 들었다.
화재가 휩쓸고 간 자리. 그곳에서 보여준 윤 화백의 하회탈 같은 웃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일흔 다섯 윤 화백의 도전 인생을 ‘인간극장’에서 만나본다.
한편, KBS 1TV ‘인간극장’은 매주 월~금요일 오전 7시50분에 방송된다.
[뉴스핌 Newspim] 박지원 기자 (pj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