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 기사는 지난 10월 30일 오후 3시 프리미엄 뉴스서비스 'ANDA'에 출고됐습니다.
[뉴스핌=한기진 기자]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7일 시중은행장을 만나 ‘기업구조조정’을 독려하자, 모 은행 기업여신심사 부행장은 “나중에 배임죄에 걸려 처벌받는 게 두렵다”고 반응했다.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되기 일쑤여서다. STX그룹이나 금호산업 채권단 회의에서는 “나중에 싸게 팔았다고 은행에 손실을 입혔다는 소리가 나오거나 기업이 망하면, 채권단 실무자는 배임죄로 처벌받을 우려가 있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배임죄는 금융권에서 ‘걸면 걸리는’ 것으로 영업부터 구조조정까지 두려움 대상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재산상 손해 발생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따져, 금융사 직원의 배임죄 부담을 덜어주는 판결을 내놨다.

30일 대법원에 따르면 우리은행 전 봉은사로 지점장 박 모씨가 본점 승인 없이 거래업체 A사에 물품대급지급보증서를 발급해 B사에 넘겨 은행에 1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법률위반(배임)으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 씨가 업무 규정을 위반했지만, 보증서를 받은 B사가 석연찮은 점을 발견해 실제로는 석유를 납품하지 않아 우리은행이 1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손해가 발생한 것과 같은 정도로 구체적 위험이 발생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서 “박 씨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1년 10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은행 봉은사로 전 지점장 박모 씨는 자신의 직무실에서 A사의 실소유주인 김모 씨를 만나, A사의 납품기업인 B사 영업부 대리에게 A사의 지급보증서를 건냈다. 이를 토대로 B사는 A사에 석유를 납품하고 우리은행에서 대금 10억원을 청구할 참이었다.
김 씨의 속셈은 A사가 B사로부터 석유만 받고 대금은 우리은행이 지급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에게는 돈 한푼 없이 석유를 납품받을 수 있는 제대로 심사되지 않고 발급된 물품대금지급보증서가 있었다.
그러나 B사가 지급보증서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석유는 실제로 납품하지 않았다.
원심은 박 전 지점장이 배임행위를 저질렀고 김씨가 10억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죄로 판시했다. 10억원의 재산상 손실 위험이 발생한 것을 배임죄 성립 요건으로 본 것이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손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할 것과 같은 수준의 구체적 위험이 존재해야만 유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배임죄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이 같은 취지의 판결은 최근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건에서도 있었다. 대법원은 이 회장이 일본 부동산을 매입해 계열사인 CJ일본법인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워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에 대해, "부동산 임대수익과 변제능력을 감안할 때 실제로 CJ일본법인에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연대보증을 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배임죄를 구체적 위험범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구체적으로 얼마의 손해가 발생했는지, 개연성이 있다면 고도의 수준인지 따져 판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모 임원은 “직원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일하다보면 종종 절차가 무시되거나 결과가 나빠 배임 우려로 은행에서 제재받는 일이 종종있고 기업구조조정에서 실무자는 배임죄 공포를 항상 갖고 있다”면서 “앞으로 배임죄 기준에 관한 구체적 기준이 나와야 기업구조조정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