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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등하는 양적완화설, 중국판 QE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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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대출프로그램 위주로 시기조율, 전문기관 관측

 


[편집자주] 이 기사는 4월 30일 16시 51분 뉴스핌의 프리미엄 뉴스 ′안다(ANDA)′에서 표출한 기사입니다.

[베이징= 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중국의 양적완화(QE) 시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 언론을 통해 중국판 양적완화가 시행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나온 이후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나서서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또 다시 비슷한 소식이 전해지며 중국 금융당국이 조만간 지방부채 해소를 위한 모종의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데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욱 늦기 전에 양적완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안팎의 매체들은 지난 27일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곧 중국판 QE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국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자산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장기적 융자 비용을 낮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마켓뉴스인터내셔널(MNI)는 소식통을 인용, 중국 중앙은행이 지방채를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기업 실적을 개선하고 경기를 부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본격적인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27일 상하이종합지수는 무려 3% 이상 급등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일찍부터 중앙은행이 QE 시행 여부를 둘러싸고 많은 검토를 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런 분위기 하에서  정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채 직접 구매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8일, 중국 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쥔(馬俊)은 “중앙은행이 지방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본원통화를 공급한다는 보도는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마쥔은 특히 기존의 법률에 따를 때 정부가 지방채를 직접 매입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이 맞춤형 대출•금리•지급준비율과 다양한 유동성 조절 수단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통한 유동성•통화량 및 신용대출의 안정적 증가 유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법 자체로도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융자를 제공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금융당국이 중국판 양적완화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경제하향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유동성 공급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사실. 따라서 중앙은행이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 지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중앙은행의 공식적인 입장해명이 있던 다음날 29일 경제포털 턴센트는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용, 중국 중앙은행이 지방채를 직접 사들이는 대신 유럽중앙은행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과 유사한 방식으로 대대적인 자금 수혈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LTRO는 상업은행으로부터 지방채를 담보로 받아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최종적으로 LTRO 형식을 취한다면 이는 그간 금리와 지준율에 의해 통화량을 공급해왔던 중앙은행의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도 지적되었다.

모건스탠리 화흠증권 거시경제 연구원 장쥔(章俊)은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 중앙은행이 두 가지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는 유럽의 LTRO와 유사한 형식으로, 은행이 보유한 고등급의 현금화 가능자산을 매입하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현재의 담보보완대출(PSL) 적용 범위를 국가개발은행에서 일반 상업은행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지난해 중앙은행은 PSL을 통해 국가개발은행에 1조 위안을 지급, 판자촌 재개발에 사용했다.

마쥔 역시 지방채 직접 매입과 같은 QE는 부정하면서도 유럽중앙은행의 LTRO와 유사한 방식에 대해서는 시행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는 “재대출은 인민은행의 주요 통화정책 중 하나로, 국제관례상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공급할 때 금융기관에 적격의 담보물을 요구한다"며 "중소 금융회사가 고등급 채권 담보물을 제공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신용대출자산 저당을 통한 재대출로 자금을 제공해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의 QE 시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급증하는 지방부채 문제가 깔려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부작용으로 촉발된 지방정부 부채는 줄곧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며 정부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턴센트가 인용한 중국 재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보고한 총 부채 규모는 16조 위안으로 2013년 6월 대비 5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 지방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42.2%에 달하는 30조 위안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며, 중국의 부채 증가속도가 일본•한국•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기 직전 속도를 초월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늦지 않게 QE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황금등 귀금속 투자 업체 세원금행(世元金行) 고급 연구원이자 경제 평론가 샤오레이(肖磊)는 “중국은 통화 발행 남발 행위를 배척해야 하지만, 시장이 자체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때에는  ‘정부 간섭이 시장을 해친다’는 논리로 수수방관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샤오평론가는 또 “현재 중국의 지방부채 문제의 심각성이나 시급성이 미국이나 유로존 보다 덜하지 않는 상황에서 명확한 전략적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오로지 재정수단 혹은 수동적인 채무치환이나 금리•지준율 같은 방법에만 의지해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QE를 통해 지방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은 시장 자신감을 안정시키고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라며 “동시에 금리나 환율, 자본항목 등의 조건까지 받춰준다면 민영기업과 국유기업간, 국유기업과 구미기업간 융자비용 격차를 줄이는 데 중국판 QE가 확실한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홍우리 기자 (hongwoori@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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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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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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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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