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탁윤 기자] # 지난달 2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의원들 200여명이 모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이자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박영선 의원도 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의원들과 달리 박 의원은 파란색 서류 파일을 들고 있었다. 자신이 추진중인 법안에 의원들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의원들이 동료 의원들에게 법안을 직접 서명 받기도 하지만 통상 이는 보좌진들의 몫이다. 이날 박 의원이 직접 발품을 팔며 동료 의원들에게 서명받은 법안은 일명 '이학수법'인 불법이익 환수법안이었다. 발품을 판 덕에 동료 의원 104명의 동의를 받아 박 의원은 같은 달 17일 이학수법을 대표발의했다. 서명한 의원 가운데는 국회 기재위원장인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도 포함됐다.
문제는 공동발의자로 서명한 의원들 모두가 이 법안에 찬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박영선 의원과의 관계 때문에 또 품앗이 차원에서 이름을 올린 의원이 취재 결과 꽤 있었다.
'법안 품앗이'는 여러 차례 지적된 국회의 구태다. 법안 품앗이란 국회의원이 개별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1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의원들끼리 서로 서명을 주고 받는 관행(?)을 말한다.
A 의원실 관계자는 31일 "의원회관에서 보좌진들끼리 서로 법안을 주고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쟁점이 크지 않은 경우는 일단 서명을 해준 뒤 의원한테 사후보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국회 의원회관에는 박영선 의원 처럼 파란 서류 파일을 들고 의원실을 돌아다니는 보좌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법안의 서명을 받기 위한 것이다.
보통 법안 발의는 의원 4년 임기중 첫해에 가장 많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의원과 보좌진 모두 의욕에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이같은 '법안 품앗이'가 성행한다. 시민단체나 유권자가 법안발의 건수를 주요 의정활동 평가 지표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화제가 되는 법안을 발의하거나, 법안을 많이 발의해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것처럼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총선을 1년여 앞뒀다면 더욱 품앗이의 유혹이 강해진다. 
정부 입법을 제외한 의원 법안 발의 건수는 지난 16대 국회(2000~2004년) 1912건에서 17대(2004~2008년) 6387건, 18대(2008~2012년) 1만2220건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서는 지난 30일까지 의원입법만 1만2932건으로 내년 임기 마지막까지 포함하면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B 의원실 관계자는 "간단한 한 줄짜리 조문을 바꾸는 법률안 개정은 인턴(비서)들도 쉽게 할 수 있다"며 "(본회의 통과와 상관없이) 일단 법률안 발의를 하면 의원에게는 물론 인턴에게도 실적으로 잡히니 안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의원들의 입법발의를 보다 신중하게 하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아울러 법안발의 건수 보다 사회적 영향력이나 국회 본회의 통과여부 등 질적인 평가가 우선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그 동안 의원입법 발의 절차를 신중하게 하는 공청회나 전문가 의견은 많았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며 "발의요건을 강화하거나 법안 발의시 비용추계나 공청회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하는 등의 질적 개선대책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한편, 품앗이 입법의 문제는 일부 법안의 경우 경제와 산업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졸속 입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 6월 국회에서 제정된 화학물질 등록ㆍ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대표적이다. 화학제품 독성 피해나 사업장 내 화학물질 사고를 막으려고 만든 이 법은 현실을 무시한 과잉 입법으로 지나친 규제란 비판을 받았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안도 졸속입법 사례로 거론된다. 2013년 당시 사회적인 경제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국회를 통과한 일감몰아주기법은 이후 부작용과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 의원이 발의한 '이학수법' 역시 이중처벌과 소급입법이란 논란을 낳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정탁윤 기자 (tac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