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인생의 가을, 중년은 아름다워라
- 아버지의 무게 1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쁜 놈이 되었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그 시절, 수입이 꽤 괜찮은 직장이나 일거리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만은 자신과 달리 좋은 여건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인 자신은 사회적으로 나쁜 놈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뒷골목의 범죄조직에 몸을 담아야했고 결국은 형무소에서 남은 삶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써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책임감을 항상 안고 살아가야만했다.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직장을 구해내야만 했다. 또 어렵사리 직장을 구했다 하더라도 직장생활은 그 직장을 구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웠다. 애시 당초 휴일이란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거의 매일을 야간작업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게다가 직장상사의 잔소리는 왜 그리 심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놈의 직장 그리고 이놈의 상사를 한번 혼내주고 직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든 어려움을 참고 또 참았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폭음을 했다. 성질 더러운 직장상사를 맛있는 안주삼아. 이런 재미없고 어려운 시간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신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갔다.
그러나 몸이 아프더라도 가족들에게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이고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인 아버지는 항상 근엄해야만 한다는 신념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을 키웠다. 견디다 못해 결국은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의사의 진단결과 암이란다. 그것도 말기라고 했다. 의사는 왜 이제야 병원을 찾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조금이라도 좀 더 일찍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었을 터인데 왜 이렇게 까지 병을 키웠느냐고. 이제는 더 이상 살아날 가능성과 희망이 없게 되었노라고. 아버지의 무게였다. 지금의 중년들은 이 아버지의 무게를 감당해내어야만 했던 것이다.
1997년에 맞은 IMF경제위기란 전대미문의 격랑의 회오리 속에서 수많은 지금의 중년들은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가족들에게 알릴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대책 없는 걱정을 하염없이 해댈까봐 이를 미리 사전에 차단하였다. 직장에서 쫓겨난 그들은 가족들에게 직장에 간다며 집을 나와서는 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 다녔다. 혹시나 일할 곳이 있는지를 알아보거나 또는 귀가할 때까지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그들은 한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걱정은 자신이 혼자 짊어지고 가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어쩌면 자신은 고개 숙인 남자가 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마초이즘(Machoism)의 발로였다.
‘기러기아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용어이다. 자녀의 해외유학에 아내를 딸려 보내고, 아버지는 홀로 한국에 남아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집에 들어가 보았자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썰렁한 공간뿐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거의 매일 밖에서 술을 마시다보니 건강도 크게 해친 상태이다. 소파에 쓰러져 심장마비로 숨져있는 기러기아빠가 발견된 것은 숨을 거둔지 며칠이 지난 뒤였다...
(아버지의 무게 2에 계속)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