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시키는 대로 가라(홍신자)”
“산다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
“당신은 시간이라는 보물을 무심코 버리고 있다(세익스피어)”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정서적인 보호이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구속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 영혼의 기슭 사이에 일렁이는 바다를 두어라(칼릴 지브란)”
“그대의 눈으로 세상을 만나다”
“너무나 강한 자아는 일종의 감옥이다. 인생을 즐기려면 모름지기 이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러셀)”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은 고통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마르셀 프루스트)”
그리고, 이혼에 들어서는 부부의 담담하고 결연한 사례들. 이혼 이후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들. 결손 자녀에 대한 교육.
결손 자녀란 말에선 가슴의 패임이 한층 도드라졌다. 주혜, 경혜가 결손 자녀라는 생경한 단어에 빨려들어가는 상상을 견딜 수 없었다. 고아원 냄새가 훅 끼치며 내 패인 가슴에서 핏물이 도지는 것 같았다.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다룬 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제2의 삶을 살아가라는 희망의 메시지. 지상의 덧없음을 버리고 무위나 피안에로의 귀의를 권유하는 글들.
아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같은 따스한 책들이었는데. 따뜻한 모닝 커피, 가족 오락관, 휴먼 드라마 같은 책들이었는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고는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몇 권이나 사두었는데...
미사리가 어른거렸다. 그남 밤 술에 취한채 미사리를 향해 밟던 엑셀레이터에 풀밭을 뛰어다니며 아이들을 향해 눌러대던 카메라 셔팅 소리가 달라붙는 듯했다.
아내가 창을 말하던 순간도 새삼 떠올랐다. 닥터 최가 다녀간 다음 날 집 근처의 인근 공원에서였다. 아내는 우리 아파트 십오 층의 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Q 회사의 물건을 팔기 전에도 귀가 길에 저 창에 불빛이 비쳐들면 가슴이 덜덜 떨리며 검은 그림자가 몰려 들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눈물을 삼키며 발길을 돌려 한강으로 가서 강물을 혼자 바라보곤 했었다고도 했다. 결혼 후 전셋집에서 살다가 우리가 애써 모은 돈으로 마련해 이사를 온 후 둘이 같이 닦으며 즐거워하던 창이었다. 주혜가 찰흙으로 초록색 기린이건 푸른 하마건 빚어 붙이던 곳이었다.
그것들을 보며 그 앞에 둘이 마냥 부둥켜 안고 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집을 나서 출근할 때면 두 딸을 껴안고 그 창 안쪽에서 함빡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그 창에 불빛이 비쳐들면 마음이 쿵쾅거려 되돌아서고 불이 꺼져 있으면 슬그머니 들어오곤 했다는 것이다.
손짓, 눈짓, 몸짓. 아내가 정감 어리고 떨림 있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 세 단어가 우리의 창을 찢는 것 같았다. 손짓, 눈짓, 몸짓을 감미롭게 느꼈을 장소가 어디였는지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우리의 창은 더욱 찢겨져 나갔다. 현주와 닥터 최 사이의 온화하고 다정한 기운이 서로의 몸을 포근히 감고 있고 그 연인들의 실루엣을 지그시 담고 있는 또다른 창의 환각도 일어나고 있었다. 미치도록 괴롭지만 함부로 어찌 할 수도 없는 치명적이고 불길한 현실이 우리의 창 아닌 저들의 창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다. 소리도 없이 시간 차도 없이 소멸되고 싶었다. 약간의 시간이라도 흘러 감정의 변이가 뒤따른다면 그것은 치욕일 것이다.
아. 언제부터, 언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