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속, 일곱 시 오십구 분. 아뿔사,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 나는 오층에서 내렸다. ‘일층 현관에서 기다려!’ 아이들에게 말하곤 잽싸게 다시 올라갔다. 오늘만큼은, 이 핸드폰이 내 아내인데. 놓고 갈 수 없다. 어떻게 불지 모를 바람, 온 신경을 세워 일기예보를 들어야 하는데, 이 핸드폰은 바로 아내의 몸인데. 빈 방에 자칫 하루 종일 방치될 뻔한 아내를 품고, 다시 뛰어나왔다. 여덟 시 이 분. 뛰었다. 양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가슴 포켓엔, 상실할 뻔한 아내를 품고. 말이 없어도 좋은 그대. 우린 지금 네 식구가 아침 출근 중이네.
택시 안에서, 그럼 그렇지, 전화벨 울렸다. 보나마나 당신이다. 난 당신과 통화하였다. 운전사가 쳐다보건, 방송에서 시끄런 정치 얘기를 하건, 난 당신과 얘기하고 있었다. 눈물 속에서, 창 밖을 본다. 경혜는 유치원 현관에서 하얀 실내화로 갈아 신을 테고, 주혜는 교실로 막 뛰어들어가겠지. 당신은 좀더 자유롭고 가벼워진 기분으로 어디선가 아침을 먹겠지.
길이다. 사방팔방. 깨어질 뻔한 시간 속에서, 신뢰의 길이, 여명의 길이 기지개를 켠다. 당신은 약한 미소지만 힘을 내어 웃고 있다.
늦은 출근길이지만, 차 잘 빠져나간다.
아내가 며칠 만에 긴 외박에서 돌아왔다. 억지로 미소는 짓지만 피곤이 역력해 보인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 않았다. 그날 밤 늦게, 그 남자로부터 전화가 또 왔다. 받았다.
“현주 바꿔주세요”
내 존재는 생략해 버리는 게 편한 모양이다. 그의 말에는 짙은 편집광적 냄새가 배어 있다. 그것은 편집증 환자만이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기이다. 수화기를 확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며 묵묵히 들고 있다가 아내에게 토스했다.
그의 집중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나도 집중되어 있었지만, 나의 집중은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나도 그처럼 마구잡이로 드러내는 순간 일은 왕창 꼬여버린다.
통화가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남자는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아내도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의 집요함과 나의 묵묵함 사이에서 힘겹게 견디고 있었다. 평소의 화사한 재잘거림은 어디 가고 “응....”, “그래....”, “알아....”, “몰라....”, “그래....” 등의 간단한 말들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강렬하고 심도 있게, 그는 계속 얘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강렬한지 말이 수화기 밖으로 흘러 물처럼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밤 한 시가 넘고 있었다. 헐떡거리는 짐승의 맥박 같은 그의 숨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감정 다스리기가 어려웠다. 통화 중인 아내 곁으로 다가앉았다. 전에 몸이 약해져 단전호흡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그때 배운 복식호흡을 해대고 있었다. 양손을 공중에 처들어 기를 받는 동작도 취했다. 이 얼마나 해괴한 일인가.
심야에 아무 제동 없이 유부녀의 집에 전화를 거는 남자나, 남편 앞에서 당당하게, 거리낌 없이 받는 여자나, 그 곁에서 말도 못하고 애꿎은 손이나 벌 받는 학생처럼 들고 있는 나. 하지만 해괴한 상황 속에, 해괴한 것 외엔 길이 없었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얼마나 해괴한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