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용된 재무적인 스킬이 무(無)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단순하죠. 금융사를 끼고 있는 그룹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재계의 한 재무 관계자가 동양그룹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 소식을 접하고 한 말이다.
한때 재계서열 5위까지 올랐을 만큼 국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은 그룹이라고는 납득되지 않는 대응책이자 일반적인 기업의 경영상식에도 벗어나는 위기탈출 전략을 펼쳐왔다는 게 이 관계자의 갸웃한 시선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동양그룹 핵심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냐, 치밀하게 계획된 전략이냐를 놓고 설왕설래를 이어가고 있다.
동양그룹은 지난 30일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어 1일 현재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동양그룹의 총 부채는 4조4273억원. 이 부채 중 회사채와 기업어음(CP)만 약 2조원에 달한다. 이곳에 투자한 5만여명의 개인투자자는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단 동양그룹은 이번 법정관리 신청 배경에 대해 "유동성 위기가 알려지면서 동양파워 등 주요 계열사나 자산 매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화가 쉽지 않았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신속한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에 앞서 "계열사 및 자산 매각이 극도의 혼란상황이 아닌 철저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제 가치를 인정받아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동양그룹이 이처럼 벼랑 끝에서 추락하게 된 것은 대내외 불황과 성장동력 부재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빚이 빚을 부르는 재무구조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개인투자자의 희생을 담보로 그룹을 유지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금액이 커서 막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다소 우량한 계열사를 통해서 출혈을 막아보자니 그룹 전체의 붕괴가 우려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반면 동양그룹이 이 과정에서 보여준 대응은 일반적인 그룹들이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은행 등 금융권에 기대는 것과는 명백하게 달랐다. 은행 여신을 메인으로 가져가면서 재무구조를 기업과 은행의 공동운명체로 보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동양그룹은 대부분을 회사채와 CP 발행을 통해 짊어지려 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통상 기업의 위기상황에 금융권과 채권단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등도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심지어 동양시멘트는 산업은행 등 금융권이 채권단 공동관리를 검토하던 상황에서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동양시멘트의 부채비율은 196%로 다른 동양그룹 계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처럼 동양그룹이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금융권을 극도로 기피한 것은 왜일까.
재계 일각에서는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최우선으로 검토했을 가능성을 꼽는다. 은행이 주채권단을 구성하면 경영권은 물론 그룹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경영권 유무의 차이다.
워크아웃은 회생 과정에서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채권채무 동결, 채권단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경영 간섭이 심하다.
이에 반해 법정관리는 채권단 협의가 필요치 않다. 비록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통상적으로 법정관리인으로는 현직 CEO가 관리인에 선정돼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채무, 자산이 동결돼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산매각을 통해 2조원의 현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동양그룹 내부에서도 명백하게 끝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결국 수익을 내기 힘든 계열사를 부채와 함께 털고 일부 핵심 기업만 가져간다는 방안을 수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동양그룹의 잇따른 법정관리가 향하는 곳은 현재까지 분명해 보인다. 모든 것은 다 잃더라도 동양그룹의 모태만큼은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고(故) 서남 이양구 회장 묘소가 삼척시 동양시멘트 본사 안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 회장으로서는 동양시멘트만큼은 지키고 싶었으리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청산된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재무구조가 양호한 동양시멘트를 남겨 회생절차를 밟을 수 있다면 동양그룹의 규모는 대폭 줄지만 명맥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두고 동양그룹 내부에서도 다양한 방향을 두고 시뮬레이션을 했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동양증권 및 동양파워 등을 매각하고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등은 청산을 통해 부채를 털 경우 현 회장 일가의 동양 명백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장래성높은 동양파워는 통째로 매각하기 보다는 재무적투자자(FI)를 물색해 지분을 쪼개 현금을 마련하면서 경영권을 보장받는 방안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한 굴지의 그룹사 고위 관계자는 "동양그룹이 지난 1~2년간 보여준 위기탈출 방안은 회사채를 찍어내고 CP를 발행하는 등 2조원을 마련하겠다면서 다 마이너식의 지극히 단순한 방법을 지속해 왔다"면서 "어쨌든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살릴 회사와 안살릴 회사의 선을 긋고 장래성 있는 사업을 받쳐줄 수 있는 시멘트 등을 중심으로 사이즈를 줄여가는 전략이 상식적"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