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1. 지난 4일 오전 8시경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한 엘리베이터 내부. 8~9명의 삼성 임직원들이 타고 있었다. 그중 한 직원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어디서 술냄새 나지 않아요? 누가 어제 술 마셨나".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웃음기 있던 일부 직원들의 얼굴 표정은 이내 굳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이들 임직원들에게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2. 삼성전자의 한 부서는 추석연휴 직전, 서초사옥 인근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회식자리를 가졌다. 그동안 고깃집이나 횟집이 주요 회식 장소였지만 이번만큼은 부서장이 이곳 레스토랑을 적극 추천했다. 이날 메뉴는 피자와 파스타 등 이탈리아 대표 음식에 간단한 음료수가 전부였다. 맥주는 일부 원하는 직원에게만 딱 한잔씩 허용됐다. 매번 회식 때마다 하던 건배사도, 원샷의 외침도 없었다. 오후 7시께 시작한 회식은 9시쯤 서둘러 마무리됐다.
삼성그룹이 지난달 19일부터 '음주문화 개선 캠페인'을 시작했다. 2주 만에 계열사들의 음주문화는 눈에 띄게 확 바뀌었다. 계열사들이 체감하는 분위기는 사실상 '금주(禁酒)' 수준이다.
5일 삼성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이 기침하면 계열사는 오한드는 것 아니겠냐"면서 "건전한 음주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캠페인이지만 계열사 입장에서는 강력한 금주 시행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이 이번 캠페인을 진행한 것은 조직 내부의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과 임직원 건강 증진, 음주 관련 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그동안 각 계열사 자율적으로 음주 자제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성과가 미흡했다는 게 미래전략실의 판단이다.
실제 일부 계열사는 '한 가지 술로 1차에서 끝내고 오후 9시 이전에 귀가하라'는 뜻의 '119 캠페인'을 이번 캠페인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시행해 왔다.
삼성 사장단은 지난 8월 말 수요 정례회의에서 음주가 두뇌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개입하지 않으면 음주문화 개선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각 계열사는 이에 따라 '벌주', '원샷 강요', '사발주' 등 '3대 음주악습'을 금지하는 선포식을 실시했고, 과도한 건배구호 제창도 지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삼성은 내년 1월부터 그룹 주관의 신입·경력입문, 승격, 임원양성 등 교육과정에서 절주 강의를 필수과정으로 반영키로 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각 계열사들은 추가적인 조치에 속속 들어가고 있다. 캠페인에 더한 강력한 후속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 금융 계열사는 업무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9시 이후 법인카드 결제를 못하도록 강력한 규제책을 내부 지침으로 내렸고, 음주 후 사고가 발생하면 주의나 경고 없이 곧바로 강력한 인사조치에 나서겠다는 한 중공업 계열사도 등장했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서초사옥 주변에서는 임직원들이 아예 개인적인 약속도 잡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높다"면서 "서초 삼성타운 직원들이 회식으로 자주 가던 인근의 일부 주점은 이번 캠페인 실시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캠페인이 그룹 차원에서 이처럼 전격적이고 강력하게 공표된 배경은 회식 자리에서 잇따라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난 8월 한 계열사의 사업장 회식자리에서는 직원 간 매우 강도높은 폭력행위가 발생, 그룹을 긴장시켰다.
내부적으로 음주 자제를 권장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같은 사건이 '주당'인 삼성의 일부 최고경영진까지도 강력한 금주령 의지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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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