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미국 애플이 국내 회사에 이메일을 먼저 보내 구리가격 상승 때문에 '(구리를 원료로 쓰는) 부품사들의 원가 압박이 심할테니 납품가격을 20% 올려주겠다'고 했다더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공개적인 석상에서 여러차례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발언이다.
이같은 최 장관의 발언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높은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타고 삽시간에 '리트윗(재송)'되면서 트위터라는 매체 특성상 이렇다할 검증이나 배경 설명없이 마치 당연한 것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 장관은 지난달 25일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 통신 및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수차례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물론 지난달 30일에는 휴양지인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경제인 연합회 하계세미나 강연에서도 같은 내용을 또다시 언급했다.
최 장관은 이같은 사례를 들며 "애플이 이 정도로 기업 생태계를 중요시하고 관리하고 있기에 오늘날 스마트폰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이와 함께 최 장관은 최근 어느 자리에서건 '대기업-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애플의 사례를 빼놓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국내업계, '애플 발언' 현실과 달라. "최 장관, 잘못들었나?"
하지만 이는 업계의 현실 상황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최 장관의 현실 인식과 관련해 논란으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최 장관이 잘못 들었거나 최소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그대로 옮겨와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업체들이 애플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이나 태블릿 PC인 아이패드 등에 납품하는 주요부품은 ▲연성회로기판(FPCB)과 ▲카메라 모듈 ▲디스플레이 패널과 모듈 ▲메모리칩반도체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5가지 분야로 집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부품에서 실제로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따라서 구리값 인상으로 인해 부품사들의 납품원가를 20% 올려줬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단순화의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주요 FPCB 제조업계 관계자는 "보통 회로기판의 경우 곳곳에 구리가 붙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회로기판에 사용되는 금속재료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소량만 붙어있다"고 말했다.
◆ 애플 아이폰·아이패드 부품내 구리 비중 높지 않아
한 통신업계 전문가는 "하지만 최 장관의 말처럼 구리라는 금속 원재료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제품 가격을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 하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또한 애플 아이폰에 주로 사용되는 카메라 모듈 부품에도 역시 구리가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워낙 소량이라 그다지 납품가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애플에 카메라 모듈을 납품하는 모 대기업 관계자는 "구리가 원재료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는 않는다"며 "물론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리티컬(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신 및 전자부품업계의 한 전문가는 "구리가 들어간 스마트폰 부품의 경우 군소업체에서 2차 하청을 통해 납품을 받아 재가공하고 있다"며 "때문에 구리가격 인상에 따른 충격은 이미 하청업체 원가 수준에서 흡수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영향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LCD용 디스플레이 모듈이나 패널, 저장장치인 메모리칩반도체, 컴퓨터의 메인프로세서에 해당하는 AP프로세서 등 고도의 집적 회로 반도체 기술이 바탕이 돼 있는 제품들은 대부분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들이 애플에 부품을 직접 공급하고 있다.
◆ 전문가들, 최 장관 애플 납품단가 20% 자진인상 발언 실체 "뭐지?"
그렇다면 왜 이같은 발언이 장관의 입에서 나오게 됐을까?
최 장관이 들었다는 애플의 납품단가 20% 자진 인상 조치의 배경이나 발언의 실체가 사뭇 궁금해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 장관의 말처럼 부품업체의 원가 상승 부담으로 인해 애플이 납품단가를 먼저 20% 올려주기로 했다 하더라도 이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상생 사례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또 "만약 애플이 납품단가를 20% 올려주기로 했다면 아무런 댓가없이 그냥 가격만을 올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전자전기업종을 분석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이는 애플의 품질관리 측면의 캐릭터(성격)를 보여주는 본보기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애플의 이메일 내용이 납품단가 인상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납품업체들에게 부실한 부품을 사용해 자사 제품 이미지 실추의 원인이 되지않도록 품질관리 차원에서 반드시 확약을 받겠다는 취지일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납품업체가 이를 무시하고 품질이 저급한 부품을 사용해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애플로부터 무시무시한 페널티 조항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같은 사례는 분명 애플이라는 기업 만의 독특하고 까다로운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뉴스핌 취재 과정에서 완곡한 거부 의사를 밝힌 국내 유수 대기업 전자업체 관계자는 자신의 회사가 "애플에 납품한다는 사실을 회사 차원에서 확인해 줄 수는 없다"며 "업체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에 납품하고 있다는 사항 자체를 확인하는 것조차도 애플과의 법적 계약상 컴플라이언스 고지 사항의 위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애플 20% 단가인상 국내업체는 어디? 전문가도 '갸우뚱'
그렇다면 최 장관이 언급한 애플에게서 직접 이메일을 받은 국내 업체란 도대체 어느 곳일까? 분명한 것은 업계 전문가들도 이 같은 물음 자체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최 장관이 말한 것과 같이 애플과 직접적으로 이메일로 납품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최 장관이 정말 그렇게 들었다면 현실적으로 그 내용은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이들 기업이야말로 애플의 의사결정과 나아가서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주요부품 벤더(협력사)들이자 파트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기업이 삼성이나 LG쪽이라면 20% 라는 납품단가 인상은 신기술을 적용시킨 획기적인 차세대 부품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최 장관의 언급 내용의 취지에서처럼 동일한 부품 단순 비교로만 인상률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같은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그 위상도 애플 못지않은 대기업이지 단순 중소하청업체는 아니다.
결국 따라서 최 장관이 언급한 애플의 납품단가 먼저 인상 주장은 '대기업-중소기업'간 상생의 사례로는 부적절한 것으로 분석된다.
◆ 혹시 애플 中납품업체 폭스콘 노조 14명 연쇄 투신자살 관련?
또한 이와 관련 최 장관의 발언은 애플의 최대 납품업체로 최근 노동자 14명이 열악한 근로고용 조건 개선을 주장, 집단 연쇄 투신자살한 바 있는 중국계 폭스콘사의 경우와도 관련되었거나 이에 와전된 사례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만에 본사를 두고 중국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폭스콘은 지난해 이같은 사태가 중국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급기야 노동자들의 급료와 복리후생 비용을 올려준 바 있다.
이에 따라 폭스콘도 애플에 두자릿수대, 20% 전후의 납품가격 인상을 요구해 이를 상당부분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국내증시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중소업체들의 경우에도 폭스콘이나 대만의 애플 협력사 등에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애플로부터 구리값 인상에 따른 원가압박으로 납품단가 인상통보 이메일을 받을 수 있는 처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 국내 기업이 애플에겐 중소기업? 부적절한 "사대주의?"
물론 대한민국 지경부 장관이라도 미국 애플의 독특한 성공 사례와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의 경영 수완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고,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 칭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기업이 애플에 납품한다고 해서 반드시 중소업체는 아니다. 오늘 날 복잡한 글로벌 기업생태계 상에서 규모나 업력 면에서 동등한 입장이거나 더 큰 업체로부터도 부품을 납품받아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도 여럿있기 때문이다.
최 장관은 만약 다시 한 번 애플의 납품단가 20% 인상과 관련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 협력 사례로 언급할 때는 자신이 들은 내용을 먼저 명확히 정리하고, 가능하다면 애플이나 잡스 CEO에 대한 자신의 성향이나 관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도 좋을 것으로 풀이된다.
그 이유는 애플의 사례가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협력 중소기업에 납품단가를 후려쳐 원가 경쟁력을 가지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는 그의 주장의 주된 근거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경부 관계자는 "최 장관이 해외 애플의 사례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장관께서 인터뷰를 한 지가 오래돼 그 기업의 이름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한민국 지경부의 수장이 특정 기업의 사례를 들어 지나치게 일방적인 관점이나 현실과는 다른 내용을 제시해 업계나 시장에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그다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애플과 구글 등의 해외 기업사례를 언급하기를 즐기는 최 장관은 불식간에 이른바 애플식 디지털 '사대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 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시간도 필요할 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