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말한 모든 생물의 살아남기 위한 싸움, 생존경쟁,적자생존이 시작됐다.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개인이든 기업이든 가혹한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 바로 지금 증권업계의 얘기다.
최근 자문형랩 수수료 적정성 논란으로 촉발된 금투업계 수수료 분쟁. 공급과 수요의 논리속에 증권사들의 제각각 속내와 경쟁양상, 선의의 경쟁구도로 가기 위한 요건, 이로 인한 소비자 선택의 향방 등 수수료를 둘러싼 업계내 역학관 계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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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대우증권 임기영 사장,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삼성증권 박준현 사장, 우리투자증권 황성호 사장, 현대증권 최경수 사장. |
[뉴스핌=홍승훈기자] 자문형랩 수수료인하 논란 속에 대형증권사 CEO들이 전면에 나섰다. 17일에는 SK증권 이현승 사장도 수수료인하파(派)에 가담했다. 수수료 인하 혹 서비스 질의 증진을 통해 고객을 '모시겠다'는 증권사 최고 경영자들 발길이 바쁘다.
금융전문그룹 증권사, 그룹계열 증권사등 각 사의 CEO들은 이번 수수료전쟁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각각의 선택에 그룹차원의 지원도 있을테고 개인의 시장관, 경영관도 담겨져 있을 게다. 실리을 챙기면서 자존심도 살려야 하는 '힘들고 긴' 다툼이 진행중이다.
박현주의 선택은 이래저래 업계내 긴장감을 팽팽하게 부풀렸다.
평소 두문불출형으로 알려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오랜만에 나선 공식석상에서 자문형랩 수수료 인하 당위성을 언급하며 불씨를 당기자, 다음날 삼성증권 박준현 사장이 기자간담회 자리를 빌어 반박 공세를 폈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내 시장을 침탈하려는 상대방을 쏘아부치는 것은 금융자본시장에서 당연한 '도전과 응전'이다.
박회장 언급후 3%대에서 1.9%로 자문형랩 수수료 인하를 최초 발표한 미래에셋증권은 박현주 회장에 이어 최현만 부회장의 직접 코멘트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공세 고삐를 바짝 당겼다.
미래에셋 보다 더 파격적인 수수료(1.5%) 인하책을 내놓은 현대증권도 CEO가 직접 나서긴 마찬가지. 최경수 사장이 보도자료를 들고 직접 기자실을 방문해 수수료 인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미래에셋이 10일 오전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밝힌지 불과 2시간 만이다.
이어 우리, 한국, 대우증권 등 대형증권사들도 자체 긴급회의를 거쳐 고객서비스를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일제히 수수료 인하에 대한 반대입장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는 자문형랩 수수료 이슈에 대해 대형사 CEO들의 각별한 관심과 애착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자존심을 건 대형사 CEO들간의 한판 전쟁이 시작됐다.
◆ 박현주 회장의 발빠른 시장대응
이번 논쟁에 최초 불씨를 당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회사 설립 초기부터 업계내 파격적인 전략과 조치로 관심을 받아왔다.
10년 이상 증권업계내 예민한 이슈로 이어진 온라인 브로커리지수수료 인하 경쟁도 사실상 미래에셋증권이 불을 당겼다.
지난 2000년 1월 국내 최초 온라인 전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증권이 온라인수수료를 0.1%로 낮추자 두달 뒤인 3월, 미래에셋증권은 이를 0.029%로 더 떨어뜨렸다. 미래에셋이 내놓은 10bp 이하 수수료는 당시로선 상당한 충격. 당시 박현주 사단의 3인방이던 현 미래에셋증권 최현만 부회장은 한국거래소 기자실을 찾아 이같이 밝히고 수수료 인하 전쟁을 예고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당시 온라인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이 다음달 즉시 0.025%로 낮췄고 같은해 5월, 키움증권 김봉수 사장(현 한국거래소 이사장)는 울며 겨자먹기로 0.025%로 내리며 수수료 인하 경쟁에 합류했다.
당시 0.025%의 수수료는 거의 10여년을 이어오다 2009년 대형사들의 공세로 추가 인하, 현재의 0.015% 수준까지 내려오게 됐다.
온라인증권사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에선 업계내 출혈경쟁이 이정도 수준까지 이르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경쟁사로선 인하 조치가 불가피했다"며 "결론적으로 보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전략은 성공했고, 고객 입장에서도 비용절감 효과가 있었"고 회고했다.
◆ "수수료 전쟁, IB시장 경쟁력도 떨어뜨려"
수수료경쟁은 온라인 브로커리지시장 뿐이 아니다. IB시장에서도 미래에셋의 수수료 전략은 먹혀들었다. 특히 감사원 감사를 받는 공기업이나 펀더멘탈이 좋은 중견기업의 경우 저가수수료 전략은 최대의 승부처다.
지난 2009년 한국관광공사가 대주주인 GKL(그랜드코리아레저) 상장 당시 미래에셋은 또 한번 증권 IB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IPO(기업공개) 주관사 수수료는 공모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평균 1% 수준이었는데 미래에셋은 파격적으로 0.01%의 수수료를 제시해 주관사를 맡게 됐다. 경쟁사보다 100배를 낮춘 것이다. 당시 코스닥기업에 대한 IPO 트랙레코드는 많았지만 유가증권시장 IPO 트랙이 없었던 미래에셋으로선 트랙 레코드를 올리기 위한 저가수수료 전략이었던 셈이다.
물론 이같은 저가수수료 전략으로 딜을 수행한 미래에셋은 이후 다른 딜을 주관할 때 과거 저가 수주건이 업계내 공공연하게 알려지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증권업계 IB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IPO 주관사의 서비스 수준은 엇비슷하다는 인식이 있어 기왕이면 더 싼 수수료를 제시한 곳을 택하는 추세"라며 "특히 공기업의 경우 감사원 감사를 받기 때문에 아무리 트랙레코드가 좋다해도 수수료 차이가 벌어지면 싼 곳을 택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실이 증권사 IB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일부 사실이다.
특히 시장공모에 자신없는 불안한 기업은 수수료보다는 증권사 IPO의 내공을 택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펀더멘탈이나 재무구조가 탄탄한 기업의 경우 수수료는 주관사 선정의 주요 잣대가 돼 왔다. 중소형 증권사가 속속 생겨나는 현 시점에서 수수료 인하 효과는 딜 수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는 IPO 주관업무 뿐 아니라 증자나 채권발행, M&A 자문업무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는 게 IB 실무자들의 전언이다.
◆ 왜 펀드 버리고 랩에 열광할까
하지만 랩어카운트를 중심으로 한 자산관리분야는 다르다. 우선 랩 등 자산관리의 경우 IB분야와 달리 개인고객이 대부분. 즉 개인 한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수수료 1~2%의 차이보단 본인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신뢰를 주는 회사를 찾게 된다는 지적이다. 안정적인 운용과 금융회사 명성을 더 많이 본다는 얘기다.
반면 IB의 경우 오너 외에 임원과 실무진 등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다.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수수료율이 주관사 선정의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실무진으로선 수수료를 깎으며 윗선에 소위 '일한 티', 본인의 노력과 능력도 보여줘야 한다. 결국 개인이냐 법인이냐의 차이에 따라 수수료율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번 수수료 전쟁을 두고 증권업계 일각에선 박현주 회장에 대해 "펀드 비즈니스에 대한 '감'은 좋았지만 랩 비즈니스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여타 수수료 비즈니스와는 달리 랩의 경우 보수를 깎아 영업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님에도 수수료 인하 조치를 취한데 대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다.
결국 박현주의 파격은 펀드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자산관리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봤다.
"고객들이 펀드가 아닌 랩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요. 고객은 자기 재산이 어떻게 운용되는 지를 명확히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랩과 달리 펀드는 제대로 알 수 없어요.분기마다 집으로 배달되는 운용보고서 또한 전문가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게 돼 있습니다. 펀드가 다시 투자자 관심을 모으기 위해선 펀드의 운용 투명성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개선해야지 랩을 걸고 넘어져선 안된다. 자칫 업계가 공멸할 수도 있다"
대형증권사 한 고위관계자도 "국내 대형증권사를 포함한 금융회사들은 해외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과 역량을 갖춰야 하고 이는 당국과 업계 모두의 공통된 요구이자 사명"이라며 "그런데도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안방서 밥그릇 싸움만하는 대형사들이 답답할 뿐"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이투자증권 이기헌 고객자산운용센터장은 "수익획득 상품인 '금융상품 세일즈'와 수익획득과 이에 대한 관리 개념을 포함한 '자산관리'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국내증권사 CEO는 사실 전무한 상황"이라며 "실무진 외에 금융회사 CEO들도 이에 대한 인사이트를 갖을 때 진정한 자산관리영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사 CEO의 선택의 방향과 그에 대한 후속작업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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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