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수장을 그것도 그룹에 몸담고 있는 현직 '최고 권력자'를 수백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은 대한민국 금융사에도 전례가 없는 일로, 그 내막을 놓고 각종 설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신상훈 죽이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룹 내 파벌 싸움인지 아니면 금융 비리를 단절하고 기업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내부 개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향후 검찰의 수사 진행상황 및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 동안 우리 기업 문화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 '신상훈 죽이기'냐 '내부 금융비리 엄단' 차원이냐
금융권 한 관계자는 3일 “설사 이런 비리를 알았더라도 내부적으로 해결하면서 덮고 가는 게 우리네 기업 문화 아니냐”며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권이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그룹 1인자인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상훈 사장의 ‘파워 게임’에 무게를 둔다. 라 회장이 4연임하는 것을 신 사장이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후 두 사람간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불똥이 그룹 내 갈등으로 번지면서 이번 사태가 초래됐다는 시각이다.
라 회장은 지난 2007년 타인명의 계좌에서 50억원을 인출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박연차 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사건은 유야무야됐고 라 회장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라 회장이 4연임에 성공한 뒤 다시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검찰이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알고도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라 회장이 현 정권의 실세 그룹으로 알려진 '영포(영일·포항)라인'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급기야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회장의 차명계좌와 관련한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라 회장은 궁지에 몰렸다. 정치권은 “라 회장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했다면 이는 금융권 전체의 법과 윤리를 뒤흔드는 문제”라며 사실상 그의 퇴진을 요구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라 회장은 이렇게 자신을 겨누고 있는 칼끝의 배후에 신상훈 사장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는 게 여의도 금융가 및 정가의 관측이다.
◆ "라응찬, 악수(惡手) 둔 것 같아"-"신상훈 가만있겠나?"
이번 '신상훈 고소건'이 신 사장 자신도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그룹 내에서 아주 은밀하게 그리고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진 점도 눈길을 끈다. 신 사장은 1일 신한금융지주 창립 9주년 행사 참석 때까지도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닥쳐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검찰 고소를 주도했지만, 라 회장의 재가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신상훈 사태'는 일종의 '친위 쿠데타'에 가깝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신 사장이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기습 작전'을 하듯 고소건이 진행됐다. 다음주초 이사회를 열어 신 사장을 해임할 예정으로 고소 이후 진행절차도 속전속결이다.
이번 '신상훈 사태'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부터 "신상훈 사장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신상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여당 중진 의원은 “라응찬 회장이 악수(惡手)를 둔 것 같다"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야당 소속 한 의원은 "없는 사실을 덮어씌울 수야 있겠냐"며 "신 사장이 횡령·배임을 했다면 그 또한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자칫 이번 사태가 서로 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공멸의 길'로 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라 회장도 금융실명제법 위반이 드러나면 자리를 보존키 어려울 테고, 신 사장도 고소건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며 “이러다 신한금융이 만신창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편 '신상훈 고소건'과는 별개로 정치권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태세다. 여당 내 한 관계자는 3일 “금감원이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감사원 감사청구를 요구할 계획”이라며 “이미 절차는 다 마쳐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