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4대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 당선인은 취임 전부터 침체의 수렁에 빠진 미국 경제를 건져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함을 강조해왔다. 취임전 지지도가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되는 만큼 미국민들 이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부양책에 거는 기대는 크다.
문제는 지금 미국이 직면한 경제 위기가 만만치 않은 만큼 부양책 카드를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사용해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특히 금융 위기가 다시 강화되고 있는 마당에 마땅히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 부담이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하는 동안 월가의 금융주들은 일제히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추가적인 손실 우려 외에 금융사 지원이 영국처럼 사실상 해당 기관의 국유화로 이어져 주식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금융 위기 빠른 해소책 없나.. 오바마 고민 중
이에 따라 남아 있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자금 2차분의 용처에 대한 결정이 주목된다.
이미 전 부시 행정부에서 TARP 자금의 절반을 은행권 부실 정리에 사용한 상태에서 오바마와 민주당측은 나머지 절반을 소비자, 지자체 등에 우선 배분할 것이라는 의중을 밝힌 바 있다.
금융권에 대해 퍼주기식의 지원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 의회를 비롯한 여론의 불만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를 비롯한 금융권에 대한 부실 우려가 다시 고조되면서 상황이 다소 복잡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 선임고문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지난 18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TARP 2차분 3500억 달러 집행 에 변화가 가해질 것"이라며 금융권의 부실 자산을 제거하기 위한 배드뱅크의 설립을 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내정자도 20일 미국 의회에 신속한 경기부양책 승인을 촉구하는 한편 TARP에 대한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경기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신용이 이루어지도록 TARP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의회에서 승인된다면 TARP를 중소 기업과 직장과 집을 잃은 가계를 위해 사용하는 쪽으로 초점을 새로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가이트너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기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지연될 가능성도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화당의 반대와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측근들은 다양한 금융안정 대책을 고려 중이지만, 이제까지 나온 대책이 가진 장단점을 평가하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폴슨 장관식의 대책이 빚은 문제점과 납세자의 손실을 감안할 때 그 방식을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데, 사실 금융권의 부실을 처리하면서 납세자의 돈에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손실 부담이 납세자에게 가지 않는다면 주주 혹은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화요일 월가가 '국유화' 혹은 '반국유화' 때문에 주식 가치가 소멸할 수 있다는 공포 심리에 휩싸인 것은 바로 이런 판단 때문이다.
이 가운데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는 미국 기업들의 신용 손실은 최대 3.6조 달러로, 자본금이 1.4조 달러인 미국 금융시스템은 사실상 파산상태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사례가 바로 금융시스템의 부도 사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정책 도입의 문제점은 과연 납세자의 손실을 어느 정도로 공개할 것인가와, 금융기관의 부실 혹은 자산 가치 수준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공개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사실 미국 납세자들의 부담은 예상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예산국(CBO)는 12월까지 집행된 2470억 달러의 TARP 기금 중에서 약 26%인 640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분석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일례로 AIG에 투입된 400억 달러의 공적 자금 중 약 53%는 소멸했다는 평가다.
한편 부실자산 매입 방식이 다시 도입되기 힘든 것은 이 방식이 자산 가치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워낙 난마처럼 얽혀 있는 복잡하고 이례적인 이들 자산의 거래 시장이 쉽게 만들어질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배드뱅크" 설립 방식이 부실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고 또 여기에 드는 비용 부담이 분명한 반면, 은행권은 부실자산이 선명히 드러날 경우 막대한 손실을 청산하면서 폐쇄되는 등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원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8250억달러 부양책 지연.. 감세냐 지출이냐
지난 15일 민주당과 당선인 신분인 오바마 대통령은 8250억달러에 이르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자금규모는 유동적이지만 감세부분에 2750억 달러를 투입하고 나머지 5500억 달러를 정부 지출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주요 지원 분야는 전기 효율을 높인 스마트 전기 지원망 구축에 320억 달러가 지원되는 등 에너지부분에 총 58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며 인터넷 보급망 확충 등 과학, 기술 부문에 160억 달러를 편성했다.
교통/운송 시설 등에 320억 달러가 투입되는 등 인프라건설 분야에 총 920억 달러를 사용하며 지방재원 지원에 790억 달러가 투입되는 등 교육분야와 합쳐 141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밖에도 실업자 건강보험 지원 등 헬스케어 분야에 153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공화당측은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측의 부양책에 대해 공화당측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단순히 빌려다 쓰면 과거의 번영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속편한 근거에서 출발한 부실한 계획"이라고 폄하했다.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 지출은 배제하고 주로 감세에 초점을 맞춘 부양안을 별도로 도입했다.
특히 공화당 에릭 캔터 의원은 "오마마 당선인은 불과 몇주 전 부양책과 관련해 한당의 의견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이번 오바마 부양책이 일방적라는 점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의견을 들어야 하겠지만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부양책의 조속한 실행이 급선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초 그는 대통령 취임식과 동시에 경기부양책에 서명하려고 했지만 의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서명 시기가 2월로 연기됐다.
주요 언론들의 여론 조사결과 오바마의 부양책은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과도한 통화공급과 재정지출에 따른 적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월가, "재정지출보다는 감세가 더 효율적"
특히 월가에서는 재정지출 확대보다는 감세에 초점을 맞추는 쪽이 경기부양에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알베르토 알레시나(Alberto Alesina)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의 기고란을 통해 "감세 정책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Risk Taking) 성향을 강화시키는 것이 경기 회복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미국의 경기후퇴가 통상적인 것이 아닌 예외적인(extraordinary) 것이라면서,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방식의 케인즈식 부양책이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지만 침체는 그 규모가 아니라 원인이 금융위기로 촉발됐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던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위기의 주요 원인이 신용시장의 경색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도를 강화시키는 것이 처방이지만 정부지출 위주의 경기부양책이 이같은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라는 주장이다.
또 그는 이번 경기후퇴가 특이성을 띄게 된 또다른 이유로 이번 위기가 정부와 개인의 낮은 저축율로 인해 경상수지 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발생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부양책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면 소비는 더 확대될 것이고 이러한 불균형은 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큰 폭으로 늘어난 적자규모를 더 확대하지 않고 경기를 부양시킬 방법으로 개인의 보유 자산을 안전자산인 국채에서 주식과 같이 위험 자산으로 옮길 수 있도록 위험 감수(Risk Taking)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최소 2년간 일시적으로 투자자들의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감세 정책이 최고의 방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막대한 적자 부담, 달러 가치에 충격 주나
월가의 감세 우선 주장에는 또한 막대한 규모의 재정 지출 정책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와 나아가 금융자산 및 통화가치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공통적인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의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2009 회계연도의 재정적자가 1.2조 달러까지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2조 달러의 적자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8.3%에 달하는 것이며, 이로써 미국 국가 채무는 7.2조 달러에 이르게 된다. 이는 GDP의 약 50%가 넘는 것이며, 2010년에는 그 비중이 54%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여기에는 예상되는 추가 경기부양책 영향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국채를 외국인들이 보유한 비중이 지난 2000년 31%에서 2008년말 현재 49.3%까지 급증했으며, 앞으로도 그 비중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미국 달러 자산을 매도할 경우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이것이 다시 외국인들의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급등하고, 중앙은행은 통화를 24시간 찍어내느라 바쁘게 될 것이다. 이에 시중 금리는 급등하고 기업들의 차입여건이 어렵게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우려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장 어려워진 해외경제나 금융시장 여건을 감안한다면 외국인들은 당분간 미국 국채 보유 규모를 더 늘리려고 하지 이를 매도할 생각은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새 정부가 제대로 경기를 회복시켜 부채 부담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덧붙여 제기된다.
그 동안 과도하게 소비하던 미국인들이 결국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림으로써 점차 불균형이 해소되어 나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막대한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고착된 소비습관이 바뀔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을 감내하는 인내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