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자본확충펀드는 20조원을 조성해 은행의 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목적으로 추진된 방안이다. 은행의 자금여력이 부족한 만큼 자본확충펀드의 절반인 10조원은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지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은행들이 펀드 신청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펀드규모가 대폭 축소될게 분명해 졌다. 어쩌면 한은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셈이다.
사실 한은은 자본확충펀드 지원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영리법인인 민간은행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와 명분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펀드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영리법인인 은행에 직접 대출하게 되는 셈이어서 어떤 형식이든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적법성과 도덕성 논란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한은의 지본확충펀드 지원은 한은법 80조에 근거한다. 한은법 80조는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며 신규대출을 억제하는 심각한 통화신용의 수축기에 금융통화위원 4인 이상의 찬성으로 영리기업에 대해 여신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금융시장이 통화수축기라고 판단될때 영리법인에 대출이 가능하다고 규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에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해 자금지원을 했던 근거가 바로 한은법 80조이다. 현재의 시장상황이 외환위기때 처럼 은행의 신규대출이 막혀 있는 통화수축기에 들어섰다고 확실히 판단되면 한은의 자본확충펀드 지원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사장상황은 외환위기와 같은 통화수축기라는 확증을 잡기가 매우 애매하다. 대폭적인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금리가 하향세에 있고 은행대출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중소기업 대출을 꺼려 할 뿐 은행의 자금공급창구가 막혀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상태도 아니다.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선호하는 탓에 국고채와 회사채의 금리차가 여전히 크고 기업의 신용등급에 따라 기업어음 및 회사채의 금리수준 격차가 심하다.
세계경제의 암울한 전망과 실물경제 침체가 기정사실화 하는 상황에서 은행의 건전성 등이 악화할 우려가 있어 신용경색을 배제하기 어렵다. 경기전망과 금융시장 동향을 감안할 때 시장불안이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인 대응방안을 세울 필요가 없지 않다.
결국 한은법 80조를 적극적이 아닌 보수적으로 해석하면 한은의 자본확충펀드 지원은 명분과 근거가 미약할 수 밖에 없다. 외환위기나 전쟁 등과 같은 금융위기의 확증이 없으면 한은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영리법인에 대한 자금지원은 논란이 되기 마련이다. 한은은 자금지원으로 인해 손실이 불가피하고 발권력을 동원해야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논란이 있는 한은법 80조를 적용한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자금지원 보다는 국회의 동의을 받아 공적자금 투입방식을 채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발권력을 동원한 한은의 지금지원은 국민부담으로 귀결된다. 시장상황이 화급한 것도 아니어서 국회의 동의를 받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감수하면 된다.
[김남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