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로운 시대, 미국 연준의 새로운 도전
③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와 글로벌 불균형
버냉키 시대 통화정책의 행보를 고민하는 데 있어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라는 테마 역시 좌시할 수 없다.
사실 버냉키는 미국의 통화정책 책임자일 뿐이지만, 그의 진정한 위상은 결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의 영역을 벗어난 그의 위상을 그저 세계 최강국의 입지에서 비롯되는 ‘상징적 지위’로만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오늘날 세계화를 필두로 한 글로벌 경제 및 금융시장 사이클의 동조화를 감안한다면, 국경 혹은 관할권의 개념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의 입지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글로벌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역시 현대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의 진화와도 결부된 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 것은 버냉키의 이른바 “글로벌 저축 과잉”(global savings glut)이라는 화두다. 사실 그는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표상되는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단지 미국 내의 문제로만 간주하는 통념을 일축하며, 역시 보다 글로벌한 시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우선, 버냉키는 단순한 무역 흐름의 문제로 오늘날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 즉 글로벌 불균형을 이해하는 시각을 실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중요한 것은 그 근저의 보다 근본적인 동인들이라는 것. 대신 그가 환기시키는 대안적인 시각은 바로 국제 금융 흐름 측면인데, 여기서도 미국 내의 저축 부족이 진정한 쟁점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는 “메이드 인 USA”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그는 미국 외의 사태 전개, 즉 개발도상국 및 신흥시장의 막대한 과잉 저축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바로 이것이 ‘글로벌 저축 과잉’이다. 결국 여기서 버냉키가 암묵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글로벌 불균형에서 ‘신흥시장의 책임론’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방만한 소비, 혹은 순차적인 버블 부양을 통한 연준의 부문별한 통화공급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일축하고, 오히려 신흥시장 혹은 개발도상국의 전략 선회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들의 구조개혁과 내수 진작, 나아가 심지어 순차입국으로의 복귀 등이 글로벌 불균형의 시정에 관건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여기서 아무런 가치판단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긴 하지만, 이후 CEA 위원장 시절 버냉키가 주도했던 2006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에서도 역시 동일한 논조를 담은 바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한편으로 버냉키가 선진국의 적자 반전과 관련해 이른바 “자산 가격의 조정 메카니즘”에 초점을 맞춘 점 역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심화(특히 미국의 순차적인 자산 버블)와 관련해, 글로벌 저축 과잉의 조정 메카니즘으로서 미국 등 선진 금융시장에 주목한 것.
그리고, 지난 2000년 주식시장 버블 붕괴 이전까지만 해도 주가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저축 과잉의 핵심 균형추 역할을 한 반면(미국의 ‘신경제 호황’ 혹은 ‘닷컴 버블’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미국 등 전세계적인 자본 수요의 위축 속에 실질 금리가 하락하고 그 과정에서 조정 메카니즘이 이제 주택 버블로 이전됐다며(“채권 및 부동산 버블”), 이런 조정 패턴의 변화에 관심을 환기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버냉키는 오늘날 국제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 중 하나로, 그린스펀이 임기 말 고민을 집중했던 “장기 금리의 (이상 저공비행) 수수께끼”에 대해 “미국으로 시각을 국한해서 보자면 당혹스러울지라도 글로벌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역설한다. 사실 장기금리 수수께끼는 그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직후 아예 직접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 바 있다.
여기서 그는 장기 금리 이상 저공비행의 이유나 함의와 관련해 확정적인 판단을 유보하지만, 일단 글로벌 저축 과잉 가설과 관련해 이것이 결국 글로벌 균형 금리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전반의 장기 금리 저공비행을 유도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제기한다. 그 함의는 단기 정책 금리 역시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 하에서 버냉키는 미국의 경상수지 불균형에 대해 본질상 그 원천이 중장기적인 것으로,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또 이런 조정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진단한다. 다만 불균형의 조정 메카니즘으로서 금융시장이 특권화되면서, 그에 따른 역공, 즉 금융시장 자체의 “무질서한 조정 리스크”를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정책 결정가들이 적절하고 보수적인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러나 별다른 처방은 없다. 그저 개발도상국의 미시적, 구조적 시스템을 향상시켜 글로벌 금융 흐름의 ‘재역전’을 도모하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것.
여기서도 역시 쟁점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도전”으로서 금융 안정과 경제 안정의 상호 의존성으로 귀착된다. 다시 말해 금융 불안 혹은 버블과 붕괴의 연이은 교체를 대가로 한 실물 경제의 (외관상의) 안정, 그리고 대외 불균형을 통한 내부 불균형의 보전과 대외 불균형의 ‘내재적 조정 메카니즘’으로서 금융시장 등 말이다. 여기에는 석유 등의 상품은 물론 부동산의 준동도 해당된다.
물론 이런 ‘불균형의 균형’을 전후 세계 경제의 재건을 이끈 “브레튼우즈 체제의 부활”(혹은 “브레튼우즈 2”)로 간주하며 그 지속력을 낙관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차적인 조정의 필요성에 입을 모은다. 문제는 그 속도나 방식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치를 비롯한 상당수 논자들은 금융․자산과 실물 경제의 혼연일체라 할 ‘자산 경제’ 테마를 통해, 그 메카니즘의 와해를 통한 동반 붕괴의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이런 우려는 오늘날 글로벌 거시경제의 두 가지 특징인 ‘대완화’와 ‘글로벌 불균형’에도 심오한 함의를 지닌다. 우선 그동안 자산 경제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조정 메카니즘을 통해 인위적으로 억제돼 온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이 다시 전면에 부상하면서 대완화 기조 자체를 반전시킬 수 있고, 또 (버냉키도 인정하다시피) 금융시장 혹은 자산 가격의 격렬한 조정으로 글로벌 불균형의 폭력적인 재조정이 강제될 수 있다는 것. 과연 버냉키는 이처럼 “위태로운 균형”하의 새로운 도전에 얼마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을까?
사실 임기 말 그린스펀 역시 자신의 마지막 숙제 중 하나로 이런 글로벌 불균형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환기시킨 바 있다. 늘 전통적인 경제 이론에서 벗어나 새롭고 발본적으로 문제를 재정의하는 그인 만큼 이런 불균형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도 역시 독특한 뉘앙스를 많이 풍긴다. 특히 이 문제를 무엇보다 미시적 관점에서 투자․경제 주체들의 행태, 즉 모국선호 성향의 추이에 대한 관심 환기나 나아가 경제 주체들의 대차대조표 추이와 연결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이른바 “비연결 적자와 누적 부채의 급증”으로 표상되는 미국 혹은 글로벌 금융 불균형 심화가 그 자체로 심각한 긴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조정이 상당한 왜곡을 수반할 것인지 여부는... 경제적 유연성의 정도에 의존할 것이다”고 진단하면서, 유연성만 충분하다면 불균형도 (케인즈 혹은 마샬적인) ‘수량’ 조정이 아닌 (왈라스적인) ‘가격’ 조정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즉 “적절한 수준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주택시장의 호황을 통해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미국 경제의 불균형은 좀 더 고통스러운 산출, 소득 및 고용의 조정이 아닌, 가격, 금리 및 환율의 조정을 통해 교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
이런 “조정의 동학 변화”는 버냉키가 선진국 금융시장의 조정 메카니즘을 특권화한 것과도 부합한다. 다만 글로벌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경과 환율이라는 장벽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그린스펀 역시 버냉키와 마찬가지로 보호주의에 대한 경계를 역설하며 해법의 단서를 모색한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