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냉키 시대’의 도래와 ‘이행기’의 불확실성
미국, 아니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앨런 그린스펀 전(前)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이 퇴임하고, 또 다른 인물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에게는 발음도 낯선 벤 버냉키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른바 ‘그린스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제 ‘버냉키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아직은 신중한 분위기가 우세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그가 ‘신참내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미 지난 2002년부터 2005년 중 연준 이사회 이사로 근무한 바 있고, 나아가 2006년 2월 신임 의장으로 취임하기 직전까지는 백악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도 역임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거시경제학 및 통화경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대가’ 중 한명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명함 상으로 자질은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세계 경제의 사실상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해 온 연준의 수장 교체 자체가,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 및 금융시장 전반에 연준 체제 이행기의 불확실성을 환기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설적인 “마에스트로”(Maestro) 그린스펀의 퇴장에 따른 공백과 불안감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이미 미국의 연준은 일종의 ‘통화정책 이행기’ 혹은 ‘변곡점’에 직면한 실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연준 스탭 출신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브라이언 색은 “연준 의장 교체의 타이밍이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른바 ‘3중의 불확실성’이 신임 의장 버냉키의 행로에 먹구름을 드리웠던 것이다. 물론 시장은 대체로 연준 이사 재임기 중 그의 이력, 그리고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의 행보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과연 버냉키가 앞으로도 이런 신뢰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또 전환기의 미국 연준을 어떻게 선도해 나갈지 아직도 그 답은 확정적이지 않다.
일단 2년여에 걸친 연준의 금리 정상화 행보가 일단락되고, 또 버냉키도 이제 취임 1주년을 맞아 ‘신임’이라는 꼬리표를 떼며 한 고비를 넘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린스펀에게서 물려받은 금리 정상화 과제가 매듭을 지은 지금, 다시 말해 이른바 금리 행보의 확실성 시기가 막을 내린 지금, 오히려 향후 금리 행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라는 테마가 새롭게 자리를 트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의 복안 혹은 새로운 전략에 시장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실 버냉키 시대의 진정한 시험은 이제부터라 할 것이다.
또한 그의 이런 복안은 당장의 금리 운영 향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통화정책 전략에 대한 ‘낯설면서도 친숙한’ 그의 기본 입장이나 구상이 쟁점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 19여년간 미국 연준 아니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을 진두지휘하며 세계 경제의 안정, 이른바 “대완화”를 비롯해 혁혁한 경제적 성과를 구가했던 그린스펀의 유산을 버냉키가 얼마나 순조롭게 승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린스펀과의 연속성 혹은 차별성’이라는 쟁점 말이다.
이 점에서 그는 일단 그린스펀의 통화정책 패러다임, 즉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접근을 계승․발전시킨, 이른바 “전망 기반”(forecast-based)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취임 6개월을 넘기던 지난 2006년 7월의 반기별 대(對)의회 통화정책 증언이 그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사실 그는 이 시점을 고비로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신뢰성 시험에서 일단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바티로모 파문’과 맞물린 5~6월의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을 딛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 그 향방을 속단하기는 너무 이르다.
한편 경제 실적 측면에서도 부동산 버블 붕괴 우려나 유가 급등의 충격도 대체로 그의 이른바 ‘연착륙’(soft lanfing) 전망으로 귀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경제 및 시장 환경 자체의 ‘전환기’라는 쟁점은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버냉키 스스로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미국 경제의 “이행기” 환경은 그에 수반해 통화정책 전략 자체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고, 또 그 과정은 아직도 “위태로운 균형”으로 점철돼 있다. 나아가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로 표상되는 글로벌 불균형 문제나, 부동산 버블 논란, 그리고 파생상품의 급등에 따른 리스크 등도 거듭 그를 위협하고 있는 심각한 쟁점들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은 비단 버냉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그린스펀 시절부터 지속돼 온 쟁점이고, 또 주요국 중앙은행은 물론 G-7이나 각종 국제 정책기구의 책임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만 마에스트로의 퇴장에 이은 막연한 불안감, 신임 의장의 부임에 따른 불확실성, 그리고 연준(및 세계 중앙은행 전반)의 통화정책 이행기라는 3중의 도전이 가세하면서, “사실상 세계의 중앙은행 총재” 혹은 “세계 경제 사령관”으로서 그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취임 1주년을 넘긴 지금 그의 이른바 “인내심있는 접근”(patient approach)이 호평을 듣고 있긴 하지만, 그 내구력 혹은 강건성은 아직 의문이다.
이하에서는 이른바 ‘버냉키 시대’의 도래와 관련해 그의 고민의 궤적과 새로운 전략 모색을 위한 노력을 전체적으로 반추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를 통해 버냉키 시대의 좌표, 혹은 버냉키호(號)의 행로를 얼마간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대공황 마니아”로 자평하는 버냉키의 학문적 관심과 간략한 이력을 점검해 본다. 아마도 그의 대공황 연구는 버냉키 시대 연준의 행보에도 깊은 각인을 새길 공산이 크다. 하지만 버냉키 시대의 좌표를 찾는 데 핵심은 역시 그린스펀의 유산에 대한 평가다. 이런 맥락에서 그린스펀의 유산 혹은 ‘그린스펀 스탠더드’를 살펴본다.
이어서 포스트 그린스펀 시대 버냉키의 전략 혹은 일종의 “버냉키 스탠더드”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다. 특히 이 문제는 버냉키가 주도하는 ‘새로운 컨센서스’ 혹은 ‘새로운 종합’으로 귀착된다. 다시 말해 “버냉키의 경제학” 또는 “버냉키의 통치술”을 의미하는 “버냉키노믹스”(Bernanke-nomics)의 문제다.
그 다음 집권 이후 버냉키의 행보를 점검한다. 한동안 ‘시장과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거치면서 그는 점차 자신의 문제의식을 정련화하고 있는데, 전망을 특권화하는 예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의 구체화가 돋보인다.
마지막은 잠정 결론인데, 버냉키 시대의 도래와 관련해 미래 지향적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 쟁점에 주목하는 한편, 글로벌 차원의 위기 관리라는 미해결 쟁점을 남겨 둔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이 글은 곧 출간할 『버냉키노믹스: 세계 경제 사령관 버냉키의 전략』(유비온) 중 제 1부의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돼 있는데, 제 2부는 연준 이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버냉키가 가진 강연 중 그의 행로와 고민을 반영하고 있는 ‘주옥같은’ 글들을 선별해 번역, 소개합니다. 모두 16편의 강연을 모아, 나름대로 큰 주제 의식을 반영하는 5장으로 분류하고 해제를 붙였습니다. 버냉키 시대 연준의 통화정책 전략, 나아가 글로벌 경제 및 시장 환경의 기류 변화와 도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챙겨야 할 글들입니다. 다시 말해 버냉키의 ‘육성 경제학 강의’, 즉 ‘버냉키노믹스’의 요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