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시장 정리, 성장축 중심 투자 재배치
전문가 "복귀 옵션 비용 더는 안 낸다는 판단"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이 러시아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으면서, 업계의 시선은 북미·인도·중동 등 '고성장·고수익'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러시아 공장에 대한 바이백(재매입) 옵션을 포기한 이번 결정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환경에서 '고위험 저수익' 시장을 정리하고 글로벌 공급망과 투자 축을 성장 시장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현대자동차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가동이 중단됐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 대해, 매각 당시 설정했던 재매입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옵션 기한은 2026년 1월 말까지였지만, 전쟁 장기화와 서방의 대러 제재 고착화, 현대차의 공백을 틈탄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복귀 실익이 사라졌다는 판단이다.
재무적 측면에서도 이미 결론은 내려진 상태였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말 러시아 공장을 포함한 현지 지분 100%를 1만루블, 우리 돈 약 '14만원'에 매각하며 장부상 손실을 정리했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시장에 다시 수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와 운영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수익성 관점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다만 생산과 투자는 중단하되,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보증 수리와 부품 공급은 유지하며 브랜드 훼손을 최소화하는 '관리형 철수'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을 철수라기보다 '옵션 비용 정리'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러시아 바이백 포기는 단순 철수라기보다, 지정학·제재 리스크가 큰 지역에 대해 복귀 옵션 비용을 더 이상 지불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현대차그룹의 투자 중심은 북미·인도·중동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북미는 전동화 전략의 핵심 거점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구축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한 현지 생산 체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 국면에서는 하이브리드(HEV)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생산 비중을 유연하게 조절하며 정책과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고 있다.
인도는 현대차그룹의 '제2의 본거지'로 자리 잡았다. 올해 1월 인도 법인은 월간 판매 약 7만3000대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SUV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고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7년까지 인도 전용 전동화 모델을 출시하고, 현지 법인 상장(IPO)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생산 설비 확충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도 구축했다. 장기적으로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인도 진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동은 단순 판매 시장을 넘어 미래 산업 협력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중심으로 수소 버스와 수소 트럭 보급을 확대하며 수소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고,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와 연계해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 AI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 실증도 병행하고 있다.
이호근 교수는 "현대차그룹이 향후 북미·인도 같은 성장축과 중동의 협력형 시장에 투자와 생산 역량을 재배치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