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복원해야…포용적 리더십으로 신뢰 회복해야"
한국 정치의 궤도 이탈이 심각하다. 이념, 세대, 젠더 등 각 분야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가로막는 극단적 상황에 처했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고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팬덤 정치가 횡행하면서 극단적인 진영의 대결 정치로 치닫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해법이 절실한 상황에서 뉴스핌은 정치 원로와 국회의원, 전문가들을 모시고 정치 양극화 실태를 분석, 해법을 모색하는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전문가는 정치 양극화를 극복하려면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가 이를 위해 선거구 1곳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여러 명을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윤미 변호사는 이달 22일 방송된 KYD 뉴스핌TV 특별기획 '국가 리스크된 양극화, 어떻게 풀 것인가'에 출연해 "소선거구제에서는 몇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리며 대표성이 결여된다"며 "비대표 확대,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으로 소수정당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귀동 민컨설팅 전략실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적 거래로 왜곡됐다"며 "제3정당이 숨 쉴 수 있도록 제도를 단순화하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조귀동 실장은 "대통령 권력의 불안정은 정당 약화와 소통 부재에서 비롯되며 정당의 제도적 기반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림 고려대 미대어대학 교수는 "중도층의 정치 효능감 저하는 민주주의 약화로 이어진다"며 "정치 리터러시를 높이고 포용의 리더십을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협치 복원도 강조했다.
장윤미 변호사는 "협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말했다. 조귀동 실장은 "팬덤 정치로는 정권을 잡을 수 있어도 통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혜림 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포용적 리더십이야말로 정치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정치양극화 전문가 대담 3부 내용이다.
- (이재창 정치 전문기자, 이하 이 기자) 정치 제도 측면에서 보면, 선거구제 개편이나 다당제 도입 필요성도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당제는 국민의 선택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지금의 구조상 양당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 (장윤미 변호사, 이하 장 변호사) 맞습니다. 결국 고착화됐다고 봐야죠.
- (이기자) 결국 다당제로 가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말씀이죠. 예를 들어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완전히 도입한다면, 한 정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제도를 변칙적으로 적용해 사실상 양당이 나눠먹는 구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소선거구제를 바꾸지 않으면, 극단적인 양당 대결 구도는 계속될 겁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 (장 변호사) 너무 공감이 됩니다. 실제로 소선거구제에서는 단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잖아요.
- (이 기자) '문세표' 사례도 있잖아요. (열린우리당 문학진 후보가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선거 이래 최소표차인 3표차로 낙선한 사례)

▲ (장 변호사) 그렇죠. 세 표 차이로 결정되면, 과연 그 사람을 지역 대표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 역시 다당제가 이상적이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제3정당의 초라한 성적을 떠올리면 현실의 벽이 느껴집니다. '안철수 신드롬'으로 탄생한 국민의당이 완충지대를 만들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같은 소수정당은 여야의 이중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제도 개편입니다. 비례대표 확대나 교섭단체 요건 완화를 통해 소수정당의 발언권을 보장해야 하죠. 국회 개혁특위 소속 한 의원에게 들은 말로는,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하면 지원도 늘고 원내 발언권도 확보된다고 합니다. 다만 여야 모두 기득권 정당이라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잖아요. 그 논의 속에 이런 제도 개선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조귀동 정책실장, 이하 조 실장) 저는 이런 논의가 전략적으로 잘못 의제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할 때, 정의당이 유럽식 모델을 강조하며 너무 당리당략적으로 접근했잖아요. 결국 위성정당이라는 이상한 괴물 구조를 만들어버렸죠. 사실 단순히 비례대표 의석만 늘렸어도 충분했습니다.
제3정당이 숨쉴 공간이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지방의회만 봐도 예전엔 대부분 소선거구나 2인 선거구제였죠. 대표성 확대를 위해 3인, 4인 선거구로 점차 늘려온 사례가 있습니다. 이처럼 조금씩 구조를 바꿔가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 (이혜림 교수, 이하 이 교수) 저는 선거제도보다는 정치문화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도층의 정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일수록 '차선의 선택'을 하죠. 특정 후보를 좋아하지 않아도 반대 진영이 싫어서 찍는 겁니다. 결국 중도층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사표를 우려해 소수정당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 자체도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도 많았을 텐데, 결국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해 좌절감만 커진 거죠. 이 문제는 비례대표제 개편뿐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 리터러시 제고와 연결됩니다. 정치가 제도권 안에서만 논의될 게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참여 문화를 바꾸는 교육과 소통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이 기자) 결국 제도 개편도 필요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손질 없이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개헌 논의로 이어지는데요. 국민의 30% 지지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 과연 온당할까요? 어느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고 웃으며 떠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구속되고, 누군가는 가족이 처벌받고, 결국 불행해졌습니다. 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 게 맞을까요? 단순한 제도 운영 문제가 아니란 점엔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이제 개헌 문제에 대해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 (조 실장) 저는 대통령의 권력이 실제로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임기 초반엔 강해 보이지만, 절반이 지나면 당과의 충돌로 급격히 힘이 약해지죠. 문제는 대통령과 정당의 관계입니다.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대통령과 입법부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면서 권력 불균형이 심화됩니다.
결국 대통령 권력은 한순간에 쏠렸다가 곧바로 당으로 이동합니다. 이 불일치가 대통령의 불행을 낳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정당의 역할 강화와 정치 효능감 제고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제지만 정당의 전통과 조직이 매우 강하잖아요. 그 기반이 있어서 제왕화되지 않는 겁니다.
또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건 지역구 정치인에 대한 책임성과 반응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도를 바꿀 때도 이런 유권자의 효능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 (장 변호사) 맞습니다. 지금의 헌법과 법제는 책임정치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년 단임제의 한계가 너무 명확해요. 대통령이 취임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가 시작됩니다. 이 구조로는 대통령이 온전히 책임정치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임기를 연장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한 번 더 평가받을 기회를 주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물론 개헌이 되더라도 현직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겠지만, 차후엔 논의해야 합니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막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회의 임기와 대통령 임기가 엇갈리면서 정치적 책임의 선이 불분명해지는 겁니다. 이제는 헌법 개정을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 (이 교수) 맞습니다. 미국의 경우 중간선거를 통해 민심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이 재선 여부를 판단하죠. 우리도 그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다만 개헌이 정치 쟁점화되어 정쟁거리로 흐르는 점이 문제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트라우마로 개헌 논의 자체를 '독재 회귀' 프레임으로 보는 경향이 여전히 강합니다. 정치적 색깔을 떠나 냉정하고 합리적인 논의의 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 (이 기자) 그런 목소리가 모였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죠.
▲ (장 변호사)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 (이 기자) 마지막으로 우리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졌으면 좋겠는지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 (장 변호사)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라고 말했죠. 그 말처럼 협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커뮤니티를 공유하던 시절엔 쟁점 법안이 통과되고, 국민들이 그 혜택을 누렸습니다. 지금처럼 정쟁만 반복되면 결국 민생이 피해를 입습니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 (조 실장)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말 위에서는 정복할 수 있지만 통치는 할 수 없다." 팬덤 정치나 양극화된 유권자 동원으로 승리는 얻을 수 있어도, 통치력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보수든 진보든 모두,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이 교수)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포용의 리더십입니다. 시민들은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잉 퍼블릭' 전략이 오래 지속된 결과죠. 이제는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스웨덴의 '탈트요바델 협약'을 예로 들자면, 그런 합의적 정치문화가 결국 민주주의의 힘이 됩니다. 보수·진보 모두 포용하는 리더십이 나올 때, 시민들도 다시 정치에 희망을 가질 것입니다.
- (이 기자) 오늘 세 분의 말씀처럼, 정치가 분열의 리스크가 아니라 국가 발전의 토양이 되길 바랍니다. 장윤미 변호사님, 조귀동 실장님, 이혜림 교수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토론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ac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