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전 SH공사 사장이 내세웠던 '토지임대부 주택' 공급 증대
황상하 사장 취임하며 신규 분양 계획은 사라져
저렴한 '내 집 마련' 가능하지만
월세처럼 매달 내는 토지임대료가 발목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주변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20~30대 무주택자의 관심을 끌었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토지임대부 주택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장 교체와 함께 신규 분양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기존 계획 물량까지 타 유형의 주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고려하면서, 사실상 토지임대부 주택 사업을 접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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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공사 토지임대부 주택 사전예약 진행 현황 및 향후 일정.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 김헌동 전 사장의 야심찬 공급 대책,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12일 SH공사는 올해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계획됐던 일부 물량을 미리내집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란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면서 수분양자에게는 건축물만 분양하는 것이다. 토지는 사업 시행자가 소유하고 주택 소유권만 수분양자에게 분양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지만 건물만 분양하기에 토지 임대료가 발생한다.
김헌동 전 사장이 재임 시절 집중했던 주택 유형으로, 2011년 서울 서초구에서 최초로 분양하며 야심차게 등장했지만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수분양자는 건물만 갖고 있는 셈이기에 매달 월세처럼 공공기관에 임대료를 내야 한다. 또 지난해 4월 '주택법' 개정 전까진 일정 기간 거주 후 환매를 하려고 해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팔 수 있어서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은 분양원가 공개와 장수명 자재 등을 활용한 고품질 토지임대부 주택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 결과 2023년 5월 진행됐던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3단지 평균 청약에서 18대 1이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시 추정 분양가는 전용 49㎡ 기준 3억5538만원, 추정 토지 임대료는 월 40만1000원이었다.
2026년 예정된 본청약 입주자모집공고 시 기준금리나 토지 시세가 변동될 경우 임대료가 조정될 수 있다는 단점에도 인근 민간분양 아파트의 60~70%로 낮은 분양가가 수요를 끌어올렸다. 지난해 1월 시행한 강서구 마곡지구16단지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에도 273가구 모집에 8378명이 신청해 평균 3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시 김 전 사장은 "건물과 토지를 다 분양하면 미분양 사태가 생기지만 건물만 떼서 분양하면 SH와 시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이달 기준 토지임대부 분양 주택이 확정된 곳은 고덕강일3단지 1·2차와 마곡지구 10-2, 16단지의 총 3단지(1623가구)다. 당초 공급계획(1990가구)의 81.6%가 실제 분양된 셈이다.
대부분 후분양 단지라 준공이 가까워진 시점에 본청약을 진행하겠다는 것이 SH공사의 계획이다. 내년 7월 입주가 예정된 마곡지구 10-2단지(577가구)의 본청약이 올 12월(예정)로 가장 빠르다. SH공사 관계자는 "기존 사전예약 단지는 본청약을 하겠지만 신규로 토지임대부 주택을 더 분양할 계획은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WM사업부 ALL100자문센터 부동산수석위원은 "저렴한 가격에 시민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도입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거주 10년 후에 해당 부동산 가치가 내릴지 오를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미리내집' 집중하는 SH공사… 분양원가 공개는 그대로
SH공사 분위기가 이처럼 전환된 것은 지난해 12월 황상하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1989년 공사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인 황 사장은 1990년 SH 입사 후 전략기획처장, 공유재산관리단장, 금융사업처장,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역임한 '멀티 플레이어'로 불렸다.
황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미리내집 확대 목표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미리내집은 신혼부부에게 안정적 주거와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서울시의 저출생 대책이다. 입주 후 가구원 수가 늘어난 경우 20년까지 거주기간을 연장하고, 시세보다 저렴한 매수도 지원한다.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1022가구 입주자를 모집한 결과, 최대 328대 1의 경쟁률을 쓸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SH공사는 기존에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추진하던 일부 주택을 미리내집으로 전환하려고 시도 중이다. 우선 서초구 방배동 900여가구 공동주택으로 탈바꿈할 성뒤마을 공공주택지구(A1) 사업 내 토지임대부 100가구부터 미리내집으로 변경하려는 안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H공사 관계자는 "본청약 예정된 단지 외에 공급계획을 짜고 있던 사업지 중 우선 설계가 확정된 곳이나 유보지 등을 대상으로 검토를 거쳐 미리내집으로 변경 공급하는 방법을 고려 중"며 "예산 지원 결과에 따라 공급 물량이 조정될 수 있어 가구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선 올해 공급하려는 미리내집은 총 3500가구다.
업계에선 주택 매입을 단순한 거주 공간 마련보다 투자의 일환으로 보는 국내 수요자의 정서를 감안할 때, 토지임대부 주택이 자리잡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손은경 KB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택 구매 시 토지를 포함한 소유권을 원하는 이들이 많고, 향후 주택 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만큼 수요가 이어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호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과 공급주체 입장에서는 계획적인 통제가 가능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비해 관리 부담이 적은 장점이 있다"며 "주택의 분양가는 초기에 회수할 수 있지만, 토지 비용은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기 때문에 사업 초기 공급 주체의 재정부담이 가중되는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전 사장이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분양원가 공개는 그대로 진행한다. 현재 공개 가능한 모든 단지의 정보는 개방된 상태다. 황 사장은 미리내집 공급 확대뿐 아니라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노후 임대주택의 체계적인 재정비 ▲용산 국제업무지구 등 미래형 도시개발 프로젝트 추진 등을 주력 사업으로 밀고 있다.
chulsoofrie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