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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황운하 "전사 기질…경찰 때부터 조직 개혁 앞장"

기사입력 : 2025년02월28일 17:00

최종수정 : 2025년02월28일 17:00

[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이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경찰관이 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황 의원은 28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전사 기질을 바탕으로 경찰이 돼서도 '조직 개혁'에 앞장섰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황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혁신당 내 유일한 재선 의원으로 현재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황 의원은 1962년 대전광역시 출생으로 이곳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토박이'다. 대전산성초, 대전동산중, 서대전고를 졸업해 경찰대학 1기로 입학했다.

그는 1985년 노량진경찰서 기동대를 시작으로 30년 넘게 재직했다. 치안감 계급으로 경찰 생활을 마무리한 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 대전 중구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황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안녕하세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오늘은 재선 국회의원이신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운하 의원. 이하 황) 안녕하세요. 조국혁신당의 황운하 의원입니다. 반갑습니다. 뉴스핌 시청자 여러분.

-(윤) 요즘 워낙 정국 현안이 바쁜데 또 대표님을 알아보는 시간도 좀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오늘 이 자리 마련했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한번 돌아가 볼까요? 그 과거의 출생 그 당시에 가족 구성부터 현재의 가족 관계까지 좀 궁금한데요.

▲(황) 저는 3남 1녀 중에 막내로 태어났고요. 아버지는 황해도가 고향이신 분이 셔서 이제 아버지 가족은 이산가족이죠. 황해도에서 구월산 유격대 활동을 하시다가 145세 때 내려오셔서 대전에 정착을 하시게 된 것이죠. 청주가 고향이신 어머니를 만나셔서 결혼하셔서 이제 3남 1녀를 두신 것이고 제가 그중에 막내였고요. 제 가족은 저는 좀 결혼을 늦게 했습니다.

-(윤) 몇 살 때 하셨어요?

▲(황) 1999년에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1962년생이니까 37살 때 결혼한 것이죠. 37살 때 결혼을 했는데 또 아이를 좀 늦게 가져서 2004년도에 아이가 태어났죠. 그러니까 제가 42살 때 첫 아이를 가진 딸인데 지금 21살이 돼서 대학교 2학년이 된 것이고 아내와 딸과 저하고 3명이 가족입니다.

-(윤) 딸 하나 저도 딸 하나 가족입니다.

▲(황) 아 그렇군요.

-(윤) 네 그러면 따님과의 사이도 좀 각별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황) 딸하고 사이는 엄청 좋아요. 그래 너무 다행인데 저는 그 딸하고 사이가 너무 좋아가지고 매일 만나지만 굉장히 딸을 보고 싶어 하고 매일 저녁에 집에 들어갔을 때 딸이 없으면 제가 굉장히 막 그 딸을 막 찾아요. 어디 갔냐 하면서 막 찾고 딸도 농담도 잘하고 또 쓴소리도 잘하고 예를 들자면 아빠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면 또는 그렇게 말하면 그게 바로 꼰대인 거야 이렇게 해서 딸한테 지적도 많이 받는데 딸과 사이는 무척 좋습니다.

-(윤) 지금 서울에서 같이 살고 계신 거예요?

▲(황) 서울의 강동구에서 살고 있고 대전 중구 지역구 의원 할 때는 거의 대전 중구 집에서 살았고 가끔 소홀해 왔고 지금은 거꾸로 서울 집에서 주로 출퇴근을 하고 대전에 가끔 가고 물론 그때 지역구 의원일 때나 지금 비례대표 의원일 때나 토요일 일요일 때는 거의 대전에 있어요.

-(윤) 대전에서 태어나시고 또 거기서 자라시고 고등학교 때까지 거기서 마친 걸로.

▲(황) 맞아요. 그래서 대전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졸업하고 경찰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 대전에서 계속 초중고를 다녔죠.

-(윤) 대전 초 어느 초등학교예요?

▲(황) 아 대전 중구의 산성동에 있는 산성초등학교, 문화동에 있는 동산중학교 그다음에 용두동에 있는 서대전고등학교 이렇게 졸업했죠

-(윤) 명문고인가요?

▲(황) 다 역사가 오래된 학교들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산성초는 사회 졸업생 동산중학교는 9회 졸업생, 서대전고등학교 6회 졸업생 다 한 자리 숫자이기 때문에 명문고라고 하면 보통 이제 역사가 오랜 전통 오랜 고등학교 학교를 이제 명목으로 하는데 초등학교도 4회 졸업생이니까 얼마 안 됐고 중학교도 9회 졸업생이니까 얼마 안 돼요. 고등학교도 6회 졸업생이니까 얼마 안 돼. 굳이 얘기한다면 신흥 명문고라고 할 수는 있어요.

-(윤) 신흥 명문고. 당시에 어쨌든 경찰대학 1기로 입학을 하셨잖아요. 그러면 공부를 굉장히 잘하셨다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한번 명문고냐 여쭤봤던 거고. 그 경찰대학 1기 졸업생인데 대표님께서는 1기로서의 뭔가 좀 특별함 자부심 혹은 그런 게 좀 있을까요?

▲(황) 그 경찰대학은 1기는 1기생 가라는 노래가 있어요. 2기는 2기생가 노래가 있고 동기생들이 부르는 노래가 있거든요. 1기 우리 동기생가는 제목이 노래가 선구자였어요. 일송정 푸른 소론 하는 그 선구자였어요. 항상 우리는 선구자다. 경찰 조직의 민주화를 이뤄내야 되고 경찰 조직의 중립화를 이뤄내야 되고 어떤 경찰을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독립시켜야 되는 그런 과제가 있고 이런 과제에서 경찰대학 1기 졸업생이 선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1기 하면은 이제 선구자라는 그런 이제 무거운 책임감을 항상 느꼈죠. 그리고 경찰대학 학교 전통 또한 그 선후배 문화를 만들어야 되느냐 이것이 전부 일기들이 만들어내야 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되는 그런 역할이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스럽고 어른스러워야 되고 또 모범이 돼야 되고 뭐 이런 부담이 늘 따랐고 개척해야 한다. 불모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윤) 1기에 약간 특별한

▲(황) 그렇죠 그게 기존 경찰 조직이 예컨대 권위주의적이다. 기존 경찰 조직이 부패돼 있다. 기존 경찰 조직의 의사소통 방식이 경직돼 있다. 이러면 그거를 깨뜨리고 새로운 민주적인 문화 청렴한 문화 그런 것을 이제 만들어 나가야 되는 그런 숙제가 늘 있었죠.

-(윤) 그러면 대표님은 어릴 때부터 꿈이 경찰관이셨나요?

▲(황) 음 제 꿈은 경찰관이 전혀 아니었고 경찰대학을 가서도 경찰이 꿈이 아니었고 그건 좀 놀라운 사실인데 그 사실은 고등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때가 1979년인데 그때가 박정희 대통령 때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126 사태로 인해서 궁정동에서 이제 피살당하는 그 일이 있던 해거든요. 12 6. 그리고 그 해 12월 12일이 이른바 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이 됐던 1212 사태가 있던 해가 그 해이고 그다음에 1980년에 이른바 5.18이 있었고 이때 정치적인 격동기였죠. 12 6 그일이 있고 나서 그전에는 정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 당시 고등학생들이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죠. 그냥 박정희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끄는 걸로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이렇게 서거하고 난 이후에 지난 박정희 대통령이 무슨 지난 시절 무슨 과오를 저지르는지 뭐 독재가 어쩌고 막 이런 얘기들이 막 나오는 거예요 아 내가 알던 그 세계는 정말 정말 좁은 세계였구나 이거를 이제 깨우치면서 그때부터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대통령이 한 명이 이렇게 죽고 나니까 막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그런 것을 경험을 하면서 정치가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이구나라는 그것을 깨달으면서 이제 정치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그 당시에 이제 명문대학교 이른바 명문대학교 대학생들은 대학에 가서 입주 과외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과외 선생으로서 이제 수입을 가지고 학비도 그걸로 하고 용돈도 하고 등록금도 하고 이렇게 한 경우가 많았었어요. 저도 대학에 갈 때 집에서 서울에 대학을 보낼 만한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됐었어요. 집에 조금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과외를 해서 내 스스로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해 고등학교 3학년 때 과외가 금지되는 어떤 조치가 있었어요. 대학에 가서 과외 선생할 길이 막혀버린 거예요. 내가 스스로 벌어가지고 학비 조달하고 뭐 이렇게 할 길이 막힌 거죠.
그때 고민이 된 거죠. 그러면 내가 어떻게 대학을 어떻게 가지 그때 두 가지 기회를 있었어요. 하나는 경찰대학이나 육군 사관학교를 가서 이제 돈이 전혀 안 들어가는 그런 특수 대학을 택하는 방법이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4년 장학생을 장학금을 주는 대학을 선택하는 게 있었어요. 그때 4년 장학금을 주는 대학들이 좀 조건이 좋은 대학이 경희대학교 그다음에 중앙대학교 한양대학교 이런 대학들이 있었어요.

경희대학교가 가장 좋은 조건이어서 경찰대학이냐 경희대학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경찰대학을 택해서 경찰이 되겠다라고 생각해서 경찰대학을 간 게 아니라 집안 형편 등을 고려해서 경찰대학을 가는 것은 장래에 내가 경찰 조직에서 지금까지 경찰 조직을 에서 큰 큰 변화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간다면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경찰대학을 가서도 계속 경찰 조직의 현안이 뭐지 경찰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되지? 이 생각을 한 것이지 내가 수사를 어떻게 잘할 거야 형사가 되고 싶어 범인을 잘 잡을 거야 이런 생각은 머릿속에 없었죠.

훌륭한 경찰관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경찰 조직을 어떻게 민주화 시킬 거 그 당시에 제일 큰 시대적 과제가 민주화였거든요. 경찰 조직을 어떻게 민주화시킬 것이냐 이 관심 때문에 경찰대학을 택하게 되면.

-(윤) 그러면 그런 개혁 정신이 어릴 때부터 좀 있었던 거예요. 반장이라든지 이런 것도 좀 도맡아 하셨던 건지 좀 궁금.

▲(황) 그러니까 제가 좀 경찰에 있을 때 별명이 경찰 내 좌파의 수괴 이런 별명이었고 밤의 경찰청장 이런 별명이 있었어요. 그리고 트러블 메이커 이제 공통된 것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고 싸우는 그런 트러블베이커이기도 하고 전사이기도 했던 것이죠. 그런 기질이 언제부터 있었나 생각해 보니까 고등학교 때도 그런 기질이 있었더라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그런 기질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데 고등학교 때 그것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 제가 고등학교 때 이제 공부를 잘 했거든요.

그 당시 윤리 선생님이 윤리 고등학교 2학년 윤리가 세계 철학사였어요. 대입 시험에서는 비중이 굉장히 낮아요. 10점도 안 될 거예요. 비중이 낮은 과목인데 선생님이 그 과목에 대한 자부심이 높으신 분이어서 문제를 굉장히 어렵게 내는 거예요. 시험 문제를 그래서 학생들이 평균 점수가 60점이 안 나오게 이렇게 굉장히 어렵게 문제를 냈는데 그 선생님하고 시험 문제 가지고 다퉜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저를 굉장히 아끼긴 했는데 수업시간에 문제 풀이 하다가 선생님하고 이렇게 논쟁이 벌어지니까 선생님이 얼굴이 뻘개져가지고 니가 그럴 수가 있냐 이러면서 이제 선생님한테 대들었다고 교무실로 오라 해서 교무실로 와서 이렇게 많이 맞았어요.

많이 맞고 했는데 맞으면서도 이제 잘못했다 소리는 안 하고 뭐 어쨌든 꼿꼿하게 맞거나 또는 그때 대들은 그런 과정을 돌이켜 보면은 이게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좀 그 싸우는 스타일이었구나 이렇게 기질이 그랬더라고요.

경찰에 들어와서도 그 기질이 계속 그게 영향을 미쳐 가지고 경찰을 개혁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경찰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경찰 개혁에 좀 경찰에 애쓰면서 그 일에 좀 집중해.

-(윤) 근데 대표님은 대학 학사 마치시고 이후에 석사 박사까지 또 하셨더라고요. 이렇게 박사까지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황) 이제 석사 논문 박사 논문을 보면 그 좀 이해가 되는데 석사 때는 공안행정학을 택해서 공안행정학으로 수사 지휘권에 관한 연구 지휘 뭐 이런 것이 행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어서 그래서 공안행정학을 택해서 그 논문을 쓰기 위해서 갔고 박사는 영장 청구권 영장청구권은 헌법에 규정돼 있군요. 검사의 영장 청구권 그래서 어 그건 헌법 연구를 좀 해야 되겠다 그래서 성균관대학교에서 헌법으로 이렇게 했는데 둘 다 경찰 수사권 독립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하나는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해야 된다는 연구였고 하나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그 연구였기 때문에 기존 질서 검사와 경찰의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을 담은 거였고 그 논문을 쓰기 위해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윤) 대표님은 이제 대학 졸업 후에 경찰대학 졸업 후에 경찰로 처음 일하게 됐을 때 그때의 마음가짐은 어떠셨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나는 개혁 이런 검찰 경찰 조직을 바꾸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런 거 말고 또 뭐 다른 마음가짐이 있었을지.

85년도에 경찰대가 졸업했거든요. 85년도에 데모가 엄청나게 많을 때였어요. 이른바 데모 80년 초반에는 막 많은 대학생들이 시국 상황에 대한 큰 좌절과 분노 때문에 분신 자살도 많이 했었어요. 아주 슬픈 그런 시대였는데 늘 그 체부 의식이 있었어요. 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내 친구들은 대학에서 분신자살도 하고 뭐 구속도 되고 수배로 쫓기기도 하고 이러는데 나는 경찰대학에서 너무 편하게 이렇게 생활하는 거에 대해서 시대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는 거에 대한 굉장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 노량진 경찰서 배속 때는 어떤 전투경찰대 근무를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경찰대학 졸업생들은 군 복무를 기동대에 가서 소대장 하는 걸로 군 복무를 대체하기 때문에 시위 진압 부대인 기동대에 가게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그 대학생들 이 친구들이 이제 나는 그때 중앙대학교를 담당했었어요. 그 중앙대학교 앞에 가서 친구들은 나한테 돌을 던지고 나는 방패로 막고 깨스탄을 쏘고 뭐 이런 관계였어요. 그리고 이제 끝나고 나면 한바탕 저쪽에서 막 돌 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이쪽에서는 깨스탄 쏘고 이렇게 해서 한바탕 좀 그 전쟁 치르듯이 하고 나면 그 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그 친구의 하숙집에 다 같이 모이는 거예요.

모여가지고 이제 야 돌을 그렇게 공중으로 던져야 내가 방패로 막지 그 땅으로 이렇게 바운드로 던지면 그 막질 못하잖아 그 불규칙 바운드가 돼가지고 내가 무릎 다치잖아 이렇게 얘기하고 그 친구들은 너 아까 깨스탄 쏠 때 공중을 쏴야 되는데 즉사포를 쐈지 않냐 그럼 얼마나 위험한데 뭐 이러면서 서로서로 이제 뭐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러나 같이 이제 대한민국을 빨리 군부 독재를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이 막아줘야만이 군인이 안 들어온다. 그거에 대해서는 같은 인식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경찰이 막아주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경찰이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갔을 때 군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정권이 항복하는 그런 시절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근데 그게 빨리 왔죠. 그래서 87년에 이른바 629 이때부터 이제 민주화가 그것이 이제 물결이 보물 터지듯이 이렇게 나오면서 결국 그 해 직선제로 개헌이 이루어지고 그다음 이제 직선제로 대통령이 새로 뽑히고 그것이 토대가 돼서 그 후에는 완전히 이제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루게 된 거죠. 그래서 그때 경찰대학을 졸업하면서 내가 어떤 방법으로 민주화에 기여할 것인가 이것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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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스테이지' 첫 주자 민주·김마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이 개최하는 싱어송라이터 경연대회 '히든스테이지'가 드디어 막이 오른다. 20일 오후 4시 10분 유튜브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되는 '히든스테이지'는 미래의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어갈 싱어송라이터를 선발하는 경연 대회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24팀(명)이 매주 2명(팀)씩 출연하여 실력을 겨룬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대회의 첫 경연 주자는 민주와 김마누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싱어송라이터 민주가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5.06.19 oks34@newspim.com 민주(본명 김민주·24)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아직까지 정형화된 음악 대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부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고향 부산에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세상 사람들과 만나왔다. 이번 '히든스테이지' 출전을 계기로 부산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다섯 살 때 김종국의 '사랑스러워'를 불러서 칭찬을 받은 것이 노래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7살 무렵부터는 빅뱅의 열렬한 골수 팬이 됐다.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성악을 공부하면서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아왔다. 자연스럽게 음대에 진학하여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김마누가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노래하고 있다. 2025.06.19 oks34@newspim.com 밴드 '밍글'로 활동할 당시에 KT&G 상상 라이브 연습실 우승(2023)을 차지했고, 부산 MBC '마이스테이지' 가을 특집 출연(2024), KNN '마실가요, 따스함으로 물들다'에 출연(2024)하는 등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해왔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음악과 달리 개성이 넘치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좋아한다. 또 강렬하면서도 파워풀한 여성 로커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도 좋아한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그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참가곡은 '언젠가 별이 될 우리에게'와 '수도 없이'라는 곡이다. '너가 외롭고 아프지 않았음 해/ 내가 외로워져 아파지더라도 말야/ 넌 좀 달랐으면 해. 나와는 말야/ 내가 흘린 눈물의 반의 반만 흘렸으면 해'라는 노랫말을 담고 있는 '언젠가 별이 될 우리에게'는 이타적 감성이 돋보이는 노래다. '수도 없이 많은 밤을 새웠어/ 수도 없이 많은 꿈을 꾸어 왔어/ 수도 없이 많은 사람 만나왔고/ 수도 없이 별 수도 없이/ 이제 나는 빈껍데기만 남아/ 아직도 꿈을 꿔/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며/ 밤을 새워'라는 노랫말을 가진 '수도 없이'는 코로나 시국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만든 노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민주. 2025.06.19 oks34@newspim.com 김마누(본명 김지범 ·34)는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는 싱어송라이터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언젠가는 음악을 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한다. 몽환적이면서도 따스한 분위기의 음악인 베드룸팝과 인디록을 지향한다. 베드룸팝의 대표주자인 Mac de Marco의 노래를 좋아한다. 엄청난 훅을 가진 그의 노래들과 일상 하나하나가 밈이 되는 스타일까지 마음에 든다. 제28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JTBC '슈퍼밴드 1'에도 출연했다. 멜로망스의 7집 앨범 '너랑'의 작곡자이며,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OST에서 작사와 작곡, 노래까지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2022년도 1월 'I'll Be There'로 데뷔했으며 올해 또 다른 앨범 발표와 공연을 준비 중이다. '히든스테이지' 출연을 계기로 국내뿐만이 아니라 크게는 해외 페스티벌 참가 및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운드와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꿈이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고 있는 부모님, 연인, 친구들에게 주는 노래 'I'll Be There'는 김마누의 대표곡이다. '이제 내게 기대/ 내가 늘 옆에 있어 줄게'라는 노랫말처럼 한 편의 멜로영화처럼 아련하고 고요하다. 여기에 비 오는 날의 숨결과 사랑의 리듬을 표현한 'Tiny Couch'를 부른다. 'Tiny Couch'에서 김마누는 사랑이란 거창한 말 없이도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속삭인다. 'You hum that tune like you always do/ And I'll sing low, just like I promised to/ Your laugh fills me, baby I won't let go'라는 노랫말처럼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포옹과 같은 노래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싱어송라이터 김마누.2025.06.19 oks34@newspim.com 미래의 싱어송라이터를 선발하는 '히든스테이지'는 서울 여의도 뉴스핌 본사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녹화 경연을 진행 중이다. 9월 첫째 주 본선 경연이 끝나면 심사위원과 응원단의 점수를 합산하여 톱 10 진출자를 결정한다. 10월 1일 오후 서울 홍릉 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문화광장에서 마지막 톱 10 경연대회를 펼친다.  '히든스테이지' 대상(1명)은 500만 원, 최우수상(2명)은 각 300만 원, 우수상(1명)과 루키상(1명)에게는 각 200만 원 등 총 1,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상이 주어진다. 본선 진출자 모두에게 포트폴리오로 활용 가능한 라이브 클립 제작, 각종 공연 참여 기회 및 언론 인터뷰 등의 기회가 주어진다. 또 최종 우승자인 대상 수상자에게는 음원 발매를 지원한다. 뉴스핌과 감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서울특별시·한국콘텐츠진흥원·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후원하는 '히든스테이지'는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미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는 대회로 손꼽히고 있다. 제1회 대회에서는 대상을 수상한 에이트레인과 최우수상 수상자인 파일럿과 우수상을 탄 미지니가 배출됐다. 지난해 2회 대회에서는 뉴스핌 '히든 스테이지' 대상에 이찬주, 최우수상은 헤밍·채겸이 차지했다.  oks34@newspim.com 2025-06-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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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깊어가는 '당권 고민'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당권 도전을 놓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한 전 대표의 출마에 무게가 실렸으나 최근 '친한(친한동훈)'계 측근들 다수가 출마를 만류하고 있어서다. 출마 땐 승산이 있지만 당내 다수파인 구 '친윤(친윤석열)'계의 벽에 가로막혀 당 쇄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선 참패에도 구 주류는 건재하다. 원하는 후보를 쉽게 원내 사령탑으로 만들었고, 당 개혁안을 다수의 힘으로 저지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한계와 쇄신파가 밀었던 김성원 의원이 친윤계의 지원을 받은 송언석 의원에게 완패했다. 30대 60으로 사실상 게임이 되지 않았다. 구 주류가 지배하는 당의 세력 분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개혁안은 이들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기자단 =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탈락한 한동훈 후보가 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5차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2024.05.03 photo@newspim.com 이런 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어렵사리 당 대표 자리에 오른다 해도 이들이 비토할 가능성이 높다. 영남 중심의 다수파인 이들이 반대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당대회에서 63%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가 이들에 의해 쫓겨난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전 대표의 출마를 강력히 주장했던 측근들조차 신중론으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이다. 물론 한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측근들 다수가 반대해도 본인이 출마를 결심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출마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19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서 "한동훈 전 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안 나온다고 하다가 나올 것"이라며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고, 결국 당 대표로 선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한 전 대표가 패배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한동훈 비토가 세기 때문에 최종 결선 투표에서 진 게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 실제로 한덕수 총리에 대한 지지세라는 게 있었다"면서 "그런 분들이 아무래도 단일화나 이런 것에 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문수 후보한테 갔던 것"이라고 봤다. 이 의원은 나경원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한 전 대표가 김문수 후보와 일대일로 만약에 붙는다고 봐도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기류는 출마 만류 쪽이다. 원내대표 선거 완패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 개혁안 표류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설령 대표가 돼도 현실적으로 당 쇄신은 요원하다고 본 것이다. 친한계인 정성국 의원은 18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개혁안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든지, 또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송언석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당의 변화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한동훈이 등판하면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다"며 "지금 당내 분위기가 아직까지 많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한 전 대표가 만약 출마를 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제일 높다고 본다"면서도 "지금 굉장히 복잡해졌다. 의견들이 5대 5라고 봤는데, 요즘은 주변에서 '출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그러다 보니 한 전 대표가 나와서 이런 당을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라며 "저항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친한계 핵심인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도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전당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좀 신중해야 된다는 의견"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번 출전할 수는 없다. 현실은 그렇다"고 했다. 그는 "친한동훈 그룹 내에서는 신중파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동훈이라는 존재는 보수 재건의 최강병기인 동시에 최종병기, 마지막 보루"라며 "한동훈이 무너지면 보수 혁신, 보수 재건은 거의 물 건너간다. 그러니까 소중한 만큼 아껴 써야 한다"고 했다. 친한계 인사 중 강력한 출마론자였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김 전 최고위원은 20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당의 최대 위기상황에서 한 전 대표가 출마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지만 최근 원내대표 선거와 당 개혁안 표류 등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 전 대표가 대표가 돼도 구 친윤계의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출마를 권유하는 게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한 전 대표의 고민이 깊어간다. 한 전 대표는 출마 쪽에 무게를 싣고 조직 확산 작업 등을 해왔으나 측근 그룹의 만류와 쇄신과는 거리가 먼 당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출마냐, 포기냐의 기로에 선 한 전 대표가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된다.    leejc@newspim.com 2025-06-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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