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황수정 기자] '역사저널 그날'에서 충렬왕에 대해 알아본다.
9일 방송되는 KBS '역사저널 그날'이 '충렬왕, 몽골 공주와 혼인하다' 편으로 꾸며져 충렬왕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본다.
1274년 태자 왕심은 쿠빌라이 칸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를 부인으로 얻어 충렬왕으로 즉위한다. 사실 이는 청혼한 지 4년이 지나서야 성사된 양국 황실의 첫 통혼이다.
앞서 1270년 2월 고려 제24대 왕 원종은 몽골의 칸에게 그의 딸과 태자 왕심을 혼인시키고 싶다는 청혼 표문을 전달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청혼 문서를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하고, 4년 후에서야 극적으로 혼인하게 됐다. 고려 원종과 충렬왕이 몽골 황실과의 혼인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며, 몽골이 4년이나 고려의 청혼을 뿌리치지 않고 붙잡았던 속내가 무엇인지 파헤친다.
혼례 후 충렬왕은 막강한 힘을 가진 몽골 황제를 등에 업고 오랜 무신정권으로 잃은 국왕의 힘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밖의 장애물을 만난다. 바로 그의 아내 제국대장공주. 공주는 사찰의 금탑을 훔치고 화가 난다고 지팡이로 왕을 때리는 등 충격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충렬왕은 난관을 극복하고 왕권 강화와 고려의 자주성 확립을 해결할 수 있었을 지, 또 충렬왕 내외의 사적 관계에서 몽골과 고려의 공적 관계까지 살펴본다.
충렬왕은 대외적으로 몽골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자신의 측근 세력을 만들며 힘을 키웠다. 그 대표적 집단으로 몽골이 공물을 요구한 매의 조달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설치 '응방(鷹坊)'이다. 왕은 응방에 큰 권력을 주고 이를 개인적으로 신임하는 이들에게 독점하게 해 세력을 넓혔다.
또 태자 시절 몽골에 입조했을 당시 함께했던 의관 자제들을 모아 왕실의 호위를 담당하게 하고, 공주가 고려에 들어올 때 시종으로 데려온 자들에게 고려의 이름과 관직을 주며 몽골과의 비공식적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삼별초 항쟁 이후 고려를 예의주시하던 몽골 황실의 견제를 피하며 영리하게 측근 정치를 펼친 충렬왕의 전략을 들여다본다.
친원세력으로 오명을 쓴 충렬왕의 고려 국왕으로써의 새로운 면모는 9일 밤 9시40분 방송되는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