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부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을 만들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다 2
마침내 1981년 제5공화국이 들어섰다. 그리고 또다시 무시무시한 군사정권의 철권정치가 7년간 이어졌다. 여기에다 5공화국의 임기 만료시점이 점차 다가오자 후계자 문제에 대한 구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구상의 핵심내용은 제 5공화국 헌법을 고수함으로써 간접선거에 의한 차기 대통령선출 계획이었다. 이는 차기정권을 사실상 자신의 후계자에게 물려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젊은 층을 비롯한 시민들은 이에 격렬히 항거하고 나섰다. 이것이 ‘6월 민주화항쟁(혁명)’이다. 당시 서울대 3년생이던 고(故)박종철 군은 경찰 수사관들의 물고문 가혹행위를 못 견뎌 숨졌다. 사건 직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사인발표는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이는 마침내 ‘6월 민주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6월 민주화항쟁(혁명)이 빛을 발하여 마침내 ‘6․29 선언’이 나오게 된다. 이 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 이양,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시국 관련 사범들의 석방과 기본 인권 신장을 위한 조치의 단행 등이 담겼다.
1987년 9월 12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합의에 의하여 대통령 직선제, 대통령 5년 단임제, 국정감사권 부활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 이어서 10월 27일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확정되었으며, 그 법통은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정권교체도 이루어졌다. 집권여당이 야당이 되고 또 야당이 여당으로 되는 현상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어 다가왔다. 이와 같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져도 별다른 혼란 없이 국정이 운영되었고, 또 정치보복 같은 현상도 큰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아울러 정치발전도 이루어졌다. 그 핵심적인 내용으로는 내 고장의 일꾼을 내손으로 직접 뽑는 지방자치제도의 시행이라 할 것이다.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제도라 불리는 이 지방자치제도는 1995년부터 개시되었다.
5060시절을 거쳐 7080시절에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끊이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는 항상 최루탄 가스냄새에 절어있었다. 여기저기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있고 학생들이 교련시간에 총검술훈련을 받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여기가 대학인지 아니면 군부대인지를 잘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학업이 제대로 잘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툭하면 휴교나 임시휴강 공고가 나붙었다. 그나마 수업이 있더라도 학생들은 데모하러 나갔는지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몸부림치다가 끝내 유명을 달리한 학생도 더러 있었다. 시대의 고뇌였고 아픔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참담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반세기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꽃을 활짝 피우고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