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
분질러져도
아무 데나 머리 박고 피는,
분수 없는 빨간 꽃
그 꽃 꺾어
입술에 루즈로 바르며
젊은 여자들 걷는다
저년들 꺾어진
으스스한 저녁 노을가에
어떤 환장할 꽃들이
입술에 루즈 바르며
피어날까
내 정신 한쪽으로 깊숙히 뚫린 수렁에서는 이런 불온한 상상이 끝 없이 맴돌다가 불쑥불쑥 흘러나왔다. 너무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 진위나 미추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나 홀로 감탄하고 있었다. 삿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 어느 순간 능력이 터지면, 자기 안에서 무한정 흘러나오는 성스런 에너지에 스스로 감동되어, “아 내가 예언자구나, 메시야구나” 하는 자기동일성의 함정에 빠져버리듯. 나는, 스스로 나를 판단할 수 없는 무중력의 황홀에 빠져버렸다.
내겐 몇 년 전부터 만나온 평론가가 있었다. 불문학과 선배인데 내가 쓴 시들을 보여주며 평가를 받아왔다. 부정정인 평가만 받아 왔지만 이제는 자신이 생겨 있었다. 어떤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힘을 나는 믿고 있었으며 내 시가 바로 그런 힘의 탄력을 받은 진귀한 것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다. <과잉>이니 <광기>니 <루즈>니 하는 자작시들을 나는 신성하게 잡은 산양인양 소중하게 다루면서, 그 평론가의 신전에 제물로 바쳤다. 신의 은총을 바라면서.
“야, 너 미쳤어. 이건 시가 아냐. 너 같은 놈은 수두룩하게 많아”
나는 초토화되었다.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삶의 거의 모든 것, 가정과 직장, 사업과 경제 모두에 참담하게 실패한 심정 속에 최후의 자존심으로 간직하고 있는 골동품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시였다.
상황이 꼬이고 몸과 마음이 어지럽게 분열될수록, 이 모든 시련이 나의 골동품을 빛나게 하기 위한 혹독한 연단일 거라고, 나의 쫒기는 자존심은 외롭고 극명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골동품마저, 단 한마디 말, ‘야, 너 미쳤어. 이건 시가 아냐. 너 같은 놈은 수두룩하게 많아’, 툭 건드리는 언어의 망치에 의해, 폭삭 깨지고 말았다. 미쳤다는 말을 찬사로 여기며 눈 멀도록 달려온 길이 한순간에 바닥이 꺼지며, 추락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