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고독을, 내 한계 밖에서 발견하는 일의 끔찍함.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얼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빙벽. 차가운 고독 너머 저쪽에서, 얼듯이 울고 있는 현주라는 여자......
그러한 고독의 얼음. 상대를 얼어붙게 만들 듯 고독하게 하는 빙벽이 자기 안에 들어있을 때는,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로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몇 개월 전 지진 같은 충격의 밤과 새벽. 나는 내 안의 얼음을 보았다. 차디찬 얼음.
똑똑히 보았다. 남의 손과 심장을 태워버리는 드라이아이스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깊숙한 곳에 자라있던 드라이아이스를. 그 드라이아이스가 익숙함의 껍질을 깨며 돌연 내 눈 앞에 전신을 드러낼 때의 경악! 그 진실의 떠오름을 목격했다.
나 자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칼로 순식간에 두동강 나는 아픔과 시원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내 친구 미라가 부성애조차 없다는 말을 할 때도, 나는 이미 두동강 나버린 나 자신을 재확인하고 있었다. 두동강 나면서, 수박을 칼로 쩍 가를 때 그 안의 뻘건 속살, 검은 씨들이 한눈에 들어오듯, 내 안에 쌓인 퇴적층의 전부를 일시에 보고 말았다.
무의식의 심연, 아니 그 바닥까지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그것은 경악이었다. 이 엄청난 것. 이 무서운 것. 살 떨리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덩어리들. 이런 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의 목격에 쓰러질 것 같았다.
그 동강 난 균열이 순식간에 상류가 되고, 계곡이 되고 강물이 되어 청정하게 흘러온 것이 내 눈물 젖은 불면의 편지들이었으리라. 오랜 세월 누적되어온 업의 퇴적층. 내가 삶이라는 형태를 부여받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원원한 기록물들. 내 안의 살인. 내 안의 불륜. 내 안의 마녀 사냥, 이단, 전쟁, 파시즘, 내 안의 어떤 사내, 군중, 짐승, 별, 무지개, 물방울, 내 안의 경영 부실, 분식 회계, 내 안의 IMF....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의 힘은 현실 고민들의 지나친 하중에 치여 알게 모르게 버거워져 갔다. 아내를 향해 순정 깊게 흘렀던 내 가슴의 푸른 강물이 절망의 벽에 부딪혀 시적 몽환을 향해 급속도로 선회하고 있었다.
과잉
시가 과잉되었어
대뇌에 파 내려간 샘
소뇌까지 뚫리더니
내 몸, 균형 잃었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위아래까지 요동치면
칼날 위를 펄펄 뛰는
무당이 될까
과잉되는 시를
작두로 썰고 싶어
막을 수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