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인생의 가을, 중년은 아름다워라
- 깊어 가는 가을에 2
가을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싶은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그러한 감정 같은 것을... 가을이 한창 깊어가는 그 어느 날, 억새로 뒤덮인 진부령고개를 찾았다. 이름 모를 자그마한 산장에 들렀다. 그 곳에는 투숙객이 아무도 없었고 나 혼자이다. 갑자기 이 세상에 나 자신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제 이곳에서 무엇을 할까? 우선 파국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이 드는 로드리고의 기타 곡 ‘아란페스협주곡’을 틀어 본다. 그리고는 억새를 한 움큼 꺾어다 창 곁에다 꽂아둘까, 커피를 끓이며 그 진한 향기에 취해볼까, 혹은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지난 추억을 더듬으며 옛 생각에 사로잡혀 볼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결국 마당에 나가 낙엽을 긁어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과연 어느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낙엽을 태울 때 나는 조금은 매캐한 내음이 갓 볶아낸 진한 커피 향 같았다.
가을은 상념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추억과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본능적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하거나 죽음이 다가오면 고향을 찾게 되고 옛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게 된다. 특히 귀뚜라미 슬피 우는 깊은 가을밤,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이러한 감정에 사로 잡혀 눈시울을 붉힌 경험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래 그리움이란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리움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약이 따로 없다. 화사하고 밝은 추억에 대한 그리움도 오래가지만, 무언가 아쉽고 애틋한 사연에 대한 추억이 훨씬 더 가슴 진하게 오랜 동안 남아있게 마련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에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욱 잘했어야 하는데...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제 그럴 수가 없다.
가을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부치고 싶은 계절이다.
귀뚜라미 울음 애절한 이 가을밤, 문득 당신 생각이 납니다. 당신과 같이했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애틋한 사연들과 음악들 모두가 너무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가장 그리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당신과 함께 즐겨듣던 나나무스쿠리의 노래 ‘Try to remember’를 들으면서, 당신이 즐겨 낭송하던 김인환님의 시를 가만히 읊어 봅니다. “세월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수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난 시절, 우리는 낙엽 지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 했고, 낙엽 지는 소리에 애간장을 태웠고, 또한 비오는 듯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낙엽 지는 거리를 걸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북이 쌓인 낙엽더미에 파묻혀 그 속을 뒹굴어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낙엽을 태우며 지난 추억도 지우려하고 있습니다...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