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장구한 편지 공세를 받는 아내의 태도는 늘 일정했다. 쓱 훑어보고 검은 핸드백에 쑤셔 넣고는 그만이다. 그리고는 총총히 외출을 하거나 진주를 향해 액셀레이터를 밟곤 했다.
아내가 며칠 만에 돌아올 때마다 집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어질러 있었다. 아이들이 놀던 레고와 인형들. 가위질한 색종이. 여기저기 벗어던진 옷가지. 내가 읽다가 아무데나 놓아둔 책들. 비우지 않은 휴지통. 씻지 않은 식기들이 수북히 쌓인 싱크대....
"내가 원하는 건 사랑의 구체성이라고 했잖아!”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절망 어린 눈빛으로 바뀌는 아내가 힘없이 내뱉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외투도 벗지 않은채 집 구석구석을 병실 청소하듯 치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주식과 외환시장이 하도 불안해 몇 년 전 멕시코 사태와 비교해 보려고 책장 문을 연 순간이었다. 멕시코 외환 위기의 진행 과정, 당시의 국제금융시장 동향, 해외 자본의 급격한 철수, 멕시코 페소화의 폭락, 주식시장 침체, 사회적 여파 및 서민생활의 실상, 위기 후의 추이 등이 수록된 책자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책장 한구석에 두툼한 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무수한 밤을 잠 못 이루며 써서 바친 편지와 시들, 그것들이 안에 뒤죽박죽으로 쌓여 있었다. 순서도 엉망이었고, 위아래, 앞뒤 구분 없이 마구 섞여 있었다. 봉투에 넣어준 것들은 뜯지도 않은 채였다. 어지러웠다. 허한 가슴에, 짜르르 통증의 전류가 흘렀다. 매사에 깔끔하고 정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아내의 성격상 처음 목격한 예외였다.
박스 옆으로는 최근 아내가 사 모은 듯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혼과 선택>, <꿈꾸는 죽음>, <가볍게 살고 싶다>, <이혼이 두렵지 않다>... <이혼과 선택>을 펼쳐 보았다. 여러번 읽은 듯 지질이 부드러웠고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은 문장들도 있었다.
게다가 책들은, 굳이 감출 필요 없다는 듯, 볼 테면 보라는 식으로, 찾기 어렵지 않은 곳에 꽂혀 있었다. 평소 아내의 행동답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마음이 어디 가 있는 것일까. 인사동 찻집 밖 거리에서 내 소매를 끌은 것은 무엇인가. 가슴이 패여나가는 것 같았다. 사십여 일 전의 악몽으로부터 일 밀리도 나아진 것이 없단 말인가. 아내의 책들을 눈에 짚히는 대로 뽑아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당사자 쌍방의 협의, 가정법원의 확인, 신고만 있으면 이혼은 성립되고 특별한 원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협의상 이혼, 민법 제834, 836조. 호적법 제79조)”
“일방의 의사로써 강제로 이혼을 하기 위해서는 법정의 원인을 이유로 하여 가정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심판을 얻어야 하며 이에 관해서는 조정이 선행된다(재판상 이혼, 가사소송법 제2조 1항 및 제 50조. 민법 제 840~842조. 호적법 제81조)”
“한국 이혼율 50% 육박. 가족 해체,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 성 해방. 성과 권력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담론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들. 문명의 위기에 관한 글들. 의사소통, 상호신뢰, 경제난, 욕망, 혼돈, 다원화 시대....”
여기저기서 따온 경구들.
“이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단 하나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오쇼 라즈니쉬)”
“고독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은 없다. 그러나 사람은 때로 그 고독에 눌려죽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