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영업 도중. 인사동 찻집에서
당신보다 두시간 일찍, 인사동 찻집에 앉는다. 난로불이 온몸을 그윽하게 데워준다. 주인마담은 고려차 마시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 준다. 얼마 만인가. 이 익숙한 향기. 법인 영업 다닌다고 서울 시내를 그렇게 쏘다녀도 볼 수 없던 소담한 공간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불황의 거리 한복판에, 난로가에 앉아, 차 향기 그윽히 진동하는 시간.
여기서 나, 당신 기다린다. 우리도 이런 장소를 꽤나 찾아다녔던 것 같은데. 근래에 자주 못한 것이 아쉽다. 기억은 그렇게 쉽게 열렸다가, 쉽게 닫히는가
창 밖으로 전시회 플래카드들이 펄럭거린다. 전신주와 전신주 사이. 예전엔 낭만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이젠 불황의 전리품으로 보인다. 얼마나 그림이 안 팔리고 생계가 딸리면, 하나라도 팔기 위해 저 추운 바람 속에 플래카드가 난무하는가.
주인 마담과 단둘이 있어 무슨 말이라도 나누고 싶지만, 정을 참는다. 당신에게 흐르는 정. 익숙해진 주인 마담에게, 정을 누설하고 싶지 않다
찻집에 앉아 아내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에 아내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닥터 최인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와버렸다. 쌀쌀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그냥 훅 떠나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서 있는데, 아내가 뒤따라 나온다. 소매를 끌기에 못이기는 척 하며 다시 찻집에 들어가 작설차를 마신다. 긴 침묵. 찻집엔 아내와 나, 주인 마담 밖에 없다. 탁자엔 촛불이 켜 있다. 막상 아내를 앞에 대하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내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소매를 끌던 순간에로 생각이 잠시 흐른다. 그 순간의 아내 손의 세기에 마음이 쓰인다. 핸드폰을 부여잡던 힘과 내 소매를 끌던 힘 중 무엇이 강한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에 통증이 인다. 나는 작설차를 연거푸 두 모금이나 마신다. 아내가 찻집 밖으로 나와 내 소매를 끌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노력한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고 아픔이 실려 있었다. 창 밖 차가운 바람 속에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내 안에도 나부끼다가 가라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