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 지하 교회. 울긋불긋한 차트 펄럭이며 십자가가 없던 그곳. 어두침침한 지하실에서 시대와 역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곳. 가끔 지나가다가 들러보면 불이 꺼져있다. 철거가 되려는지 거미줄이 끼어있고, 쾌쾌한 냄새마저 난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며 청춘의 불꽃을 태우던 착하고 반듯한 내 형제자매들. 선배후배들. 세상의 어둠에 속하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그 지순한 갈증을 채워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오로지 멀리 반짝이는 순정한 별빛 하나 발견해 청춘과 생명을 다 버리고 모여든 이곳.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조각난 꿈을 안고. 디아스포라처럼 흩어져서. 그날 밤의 크리스마스 이브. 다른 교우들을 도와주다가 늦은 밤, 곱게 잠든 혜진의 얼굴. 스물두 살 청순한 얼굴. 얼굴들.
그 후유증은 깊은 침전물처럼 참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나는 단지 초기의 순수성, 온몸을 불살라도 아깝지 않은 충절의 감각 속에서 일을 했고 그 일이 역사의 진정한 시작이라 믿고 내 몸을 던졌을 뿐이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했다. 고린도 교회나 안디옥 교회, 기독교 초기사에 나오는 초대 교회를 나 자신이 부름 받아 세우는 성스런 마음뿐이었다. 물론 그런 자기동일성의 발견과 결단에 이르기까지는 지독한 흔들림, 착란과도 같은 과정을 겪어야 했지만.
그런 절대적인 믿음. 그것이 깨지겠는가. 팔레스타인 게릴라에게 총뿌리를 겨눈다고 그가 항복하겠으며, 중세의 마녀들에게 회개하면 장작불에서 내려준다고 해서 그녀들이 따르겠는가. 내가 사 년간 서 있던 자리는 말하자면 그런 곳이었다. 죽음과 사후 세계, 신의 존재, 영혼 문제....이런 것들은 이미 경험을 마친 상식에 속하고 있었다.
무당이나 샤먼, 영매, 영능자들의 세계는 눈을 감고도 환히 보였다. 이를테면 나의 의식은 현대를 사는 고대 이집트인의 그것이었다. 나는 이천 년 전 예수의 사도와 동격이며, 맘만 먹으면 바울도 될 수 있었다.
청주는 구약의 소돔 땅이며 내가 그 땅에 급파된 최초의 새 진리 선지자이기에 부득불 나만이 그 땅의 원주민을 구할 길이요, 생명이었다. 또한 내가 그토록 갈증 속에 그리워하던 상징주의 시학, 중세의 연금술, 고대의 신비주의, 영지주의 같은 것들은 손으로 만져지고 통째로 이해됨직 했다. 기존의 어떤 종교나 가치 체계와도 견줄 수 없는, 완전히 결별된 또렷한 차별성을 띠고 있었다. 그럴수록 세상의 불빛과는 까마득히 동떨어져 돌아갈 수 없는 레테 강 저 너머에 그것은 아스라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의 반대편까지 간 지점에서 ‘나’가 발견되었고, 지금까지의 숱한 우여곡절은 단지 이 순간을 만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며, 바로 이곳에서 세상과 역사가 환히 보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통하고, 나 자신의 절대 불멸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그것을 위해 가족, 친구, 현재와 미래의 모든 기회비용을 포기해버렸는데, 유일한 꿈인 시마저 훌훌 날려버렸는데, 그것이 깨지겠는가.
세상과 역사의 소위 모든 정통들이 뿌리째 의심되고, 내가 믿게 된 진리만이 그 모든 정통들의 허구를 부수고 치유할 궁극적이고 마지막이 될 정통이라고 믿어마지 않던 그 최후의 신념마저 사 년간의 질주 후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을 때, 내 가슴은 풀 한포기, 돌 한조각 남지 않은 폐허처럼 참담했다.
마음을 둘 곳이 세상 한 군데도 없었다. 섭씨 삼천 도의 불에 마음을 데였는데, 그 뜨거움과 공허를 치유할 곳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었다. 처절한 무정부주의적인 상태에 오래 빠져 있었다. 섭씨 삼천 도 이상의 진리 혹은 진실을 만나야 풀어질 텐데, 세상의 종교란 종교, 책이란 책, 영화, 이미지, 스포츠, 문학 등등은 고작 이백 도 정도의 백열전구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