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아련하고 진한 풍경화가 아내의 내면 속에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의 그것은 나의 그것보다 훨씬 아련하고 진할 것이며 색조와 내용은 나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아내의 밝은 성격 그대로 화사한 파스텔 톤일 수 있고, 정열적인 면 그대로 붉은 장미빛일 수 있다. 혹은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바닥에 화폭을 눕혀 놓고 미친 듯이 물감을 뿌려대는 방사의 황홀에 취했는지, 취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아내가 솔직하고 투명해 대학 써클 친구 중 다른 남자들에 대해선 묻지 않아도 재미있었던 일화들을 농담 삼아 재잘거리곤 했지만 유독 최영호에 대해서만큼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었다. 아니 대학 써클 친구였다는 말 자체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솔직하다고 여긴 아내에게서 처음 발견한 낯선 대지였다. 비밀의 숲, 미로, 오지의 꽃그늘이었다.
아내에게 있는 그대로 얘기해 달라고 묻더라도 아내는 침묵을 지키거나 은유나 상징, 혹은 거짓으로 처리할 것이기에 다가갈수록 알 수 없어지는 안개, 밀의, 신화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아내 자신도 자기의 경험 속으로 정작 깊게 들어가면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내 첫사랑이 그렇듯 아니 모든 존재, 세계, 본질이 그러하듯. 파도에 쓸려 끝없이 미끌어지기만 하는 해변의 모래알, 바다의 심연, 정지 없이 불기만 하는 바람.....그런 점에서 내 첫사랑의 풍경화는 바로 아내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더 깊은 이야기의 그물망, 시간의 바닥까지 내려가 바라보면 내 과거 이야기나 아내의 그것이나 같은 선상에 있을 것이다. 스토리와 색감, 직조 방식만 다를뿐. 시간이란 비밀, 아니 시간마저 낳은 궁극의 신비스런 카오스가 봄도 되고 여름도 되고, 빙하도 되고 적도도 되듯. 그런 의미에서 ‘뼈 아픈 노래’는 아내의 러브 스토리로 읽혀도 좋을 것이며, 진주 경상 대학교 캠퍼스의 아담한 시공 속을 흘러간 아련하고도 진한 물감으로 여겨져도 좋으리라.
아내에게도 내 벽장 서랍 속 같은 밀폐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이미지 상, 서랍보다는 보자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오랜 세월 여미고 여민 연분홍 혹은 보랏빛 보자기. 단단하게 묶은 그 안에 들어 있을 갖가지 사연의 오래된 물건들. 그 하나하나에 달라붙은 의미와 추억, 깊은 비밀들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보자기 막을 통해 새어나오는 어렴풋한 향기들을 나는 맡을 수 있었다. 그 내밀한 향기들은 뭔가를 말하는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안개를 뿌리며 흩어졌지만, 때론 못 견딜 정도의 어지러움을 주기도 했다.
“같이 잤어?”
괴로움을 못이겨 술에 취해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같이 자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안 잤어”
앞 문장과 뒷 문장, 어디에 포인트를 맞춰야 할지 모를 표현이었다. 잤단 말인가, 안 잤단 말인가. 그 말은, 그 남자와 뭐가 좋았냐고 물었을 때 ‘손짓, 눈짓, 몸짓’이라고 간결하게 말했었는데 그때의 아리송함과도 비슷하다.
‘손짓, 눈짓, 몸짓’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암호였다. 손짓, 눈짓을 강조한 말인가. 몸짓을 강조한 말인가. 손짓, 눈짓, 몸짓이 그저 낭만적이고 애틋한 분위기 속에 오갔단 말인가, 아니면 손짓과 눈짓, 그 다음엔 참을 수 없는 몸짓의 격렬로 휩쓸려갔단 말인가. 평소의 재잘거림과 달리 세 단어로 짧게 잘라 말하는 이유는 길게 말하기 곤란함인가, 나의 상상 작용을 견제하는 방어용 내지 은폐용인가, 혹은 환각적인 상태에서 나오는 몽롱한 시적 표현인가. 도무지 실체가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