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밤을 꼬박 지새우고 출근한 월요일 아침, 사무실 공기가 어수선했다. 주식시장은 지난 주보다 심하게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한국의 신용위기가 고조되면서 원화도 바닥 모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거래 기업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내가 속한 국제금융팀의 주업무 중 하나는 해외CB 발행을 통해 기업에 외자를 조달해주는 것. 해외CB라는 것이 주가와 통화 변동에 민감한 것이어서 지금처럼 불안한 상황에서는 기업체나 우리 국제부 직원들이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외자조달이 시급한 기업들은 유로나 스위스 시장 동향을 타진해왔고, 상환만기가 다가오는 기업들은 환차손이 상상할 수 없이 커져 전전긍긍했다.
자본시장의 침체와 더불어 그에 젖줄을 대고 있는 굴지의 기업들이 비스켓 부러지듯 무너지며 실업자와 부실채권, 사회불안, 가족해체와 소주시장의 호황을 야기하고 있었다.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국내 자본시장에 대고 약삭빠른 국제 핫머니들은 주식과 원화를 재빨리 팔아치워 달러를 빼가고, 그 결과 주식과 원화는 무섭도록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비슷한 상황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이머징마켓과 남미, 러시아에도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로이터나 블룸버그를 들여다보며 급변하는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체크해야 했으며 리서치 팀이나 해외지점들과도 서둘러 정보를 교환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팀장은 업체 방문에 필요한 자료를 프린트아웃 하라고 몰아댔다. 머리가 팽팽 돌고 가슴이 허했다. 누적된 피로는 추스를 틈도 없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증권시장. 이 바닥에서의 십년 동안 이렇게 머리가 휑한 적도 없었다. 지점에서 브로커를 할 때 신용으로 산 주식이 깡통이 돼 고객에게 아까운 돈을 물어줄 때도, 인수영업부 근무 시절 실명제 실시로 금리가 폭등해 채권발행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혀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싱가포르 선물 시장에서 니께이 선물을 잘못 매매해 영국 굴지의 베어링사를 하루 아침에 파산시킨 닉 리슨의 자전적 소설을 읽을 때의 전율이 나의 현실에서 유사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감당키 어려운 중압감 속에 하루하루 피말리는 생존게임을 벌이며, 초조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사탕을 입에서 떼지 않고 질겅질겅 씹어 먹으며 발악했던 그의 최후의 격전.
피를 지나치게 흘려 허혈의 심장을 부여잡고 링 밖으로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만신창이 복서같기도 한, 딜러로서의 그의 마지막 모습이 남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하는데 유리하도록 금융 상품 캠페인 때 수억의 자금을 유치해 주식을 사놓았는데 십분의 일도 안되는 가격으로 박살나고 있었다.
객장에서
가슴이 쥐어짜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가슴은 뚝뚝 물 떨어지는 걸레가 되거나
물러 터져버린 핏빛 물복숭아가 된다
그래도 감당 안 되는 가슴들은
장마비에 축대 무너진 경기도 고양마을이 되거나
러시아의 독한 보드카가 되거나
태국의 바트화처럼 멍든 휴지 조각이 된다
포카나 고도리, 폭탄주에 다시 한번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중독이 되거나
당뇨에 걸리도록 초조하게 사탕을 씹어 먹던
닉 리슨의 공포와 허혈, 퀭한 눈빛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