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여성최초'라는 단어만큼이나 '고졸신화'라는 표현 역시 찬사인 동시에 종종 꼬리표가 되곤한다. 실력이 아닌 상징성 때문에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졸신화라는 단어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 학력과 학벌의 병폐가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그것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라는 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격차를 줄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를 가리키는 말)' 너머에서 이뤄진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 국장은 지난 1977년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은에 입행해 경제통계국에서 26년간 일한 통계분야의 국제전문가다.
현재도 UN통계위원회, OECD 국민계정 워킹파티 집행위원 등 통계관련 국제기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 신임국장에 앞서 관가에서 고졸신화로 이름을 떨친 주인공은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제2차관으로 쓰임을 받더니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첫 국무조정실장이라는 중책을 떠안았다.
두 고졸신화 주인공의 이력은 여러차례 겹친다.
김 실장은 음성, 정 국장은 청주로 모두 충북 출신이다. 각각 덕수상고와 청주상고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한국신탁은행과 한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둘 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곳에서 사회 첫 발을 내디뎠지만 고졸출신이란 주의의 냉랭한 시선을 쉽게 지나칠 수 만은 없었다.
김 실장은 "100m 달리기 시합에서 50m쯤 뒤처진 출발선상에서 뛰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래서 두 닮은꼴이 선택한 것이 야간대학이었던 국제대학 진학이었다.
정 국장은 "당시 통계국은 야근이 보통이었는데, 부서의 막내가 학교가겠다고 먼저 자리를 떠도 선배들이 양해를 해줬다"며 "그게 마음에 걸려 수업 없는 날이나 주말에 더 열심히 일했다"고 선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야간대학 졸업 이후 정국장은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해외학술연수를 거치면서 한은에서도 손꼽히는 통계분야 전문가로 성장했다.
반면 김 실장은 은행 생활을 이어가면서 주경야독을 통해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소위 '성골, 진골'이라 불리는 이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스스로 고졸이란 유리천장을 노력과 실력으로 극복했다.
어렵게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자리에 연연하기보단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끝내겠다는 다짐도 두 닮은꼴은 비슷했다.
김 실장은 "감사할 줄 알고 물러설 때를 아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전임 국장이 닦아놓은 것들을 잘 마무리하고 내가 선배들에게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것을 마지막 소명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