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1. 자동차 카마스터인 고모(42)씨. 고객들과 상담을 할 때면 노트북을 켜고 판매할 차량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게 세일즈의 주요 방법이다. 하지만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노트북을 켤 때마다 부팅 시간이 오래 걸려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가 그렇다.
#2. 컴퓨터 온라인 게임 마니아인 회사원 양모(32)씨. 퇴근 후 게임 세상은 그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데스크탑 컴퓨터의 부팅이 느려 조급한 마음이 들기 일쑤다. 최근 양씨는 부팅시간을 줄여보려고 기존에 6개월 사용하던 컴퓨터를 과감히 버리고 최신형 SSD(Solid State Drive) 컴퓨터로 교체했다.
#3. 서울에서 소규모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최모(27)씨. 서울지역은 최씨가 직접 배송에 나서기도 하는데, 급한 배송이 있을 때마다 진땀을 흘린다. 자신의 배달차에 설치한 네비게이션 로딩시간이 1분 가량이나 걸리는 탓에 주차 단속원과 잦은 실랑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매 순간마다 시간과 전쟁을 벌이는 현대인에게 '속도'란 무엇보다 소중하다. 때문에 산업계에서도 속도란 곧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수많은 속도의 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물건을 팔려면 바로 속도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전자기기를 비교할 때 빠지지 않는 것도 바로 속도다. 인터넷부터 PC, TV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자기기에 '빨리 작업을 소화하는가', '얼마나 빨리 작동되는가'는 성능과 기술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제품의 '부팅'은 IT업계가 가장 해결하고 싶어하는 숙원과제다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시간 단축은 좀처럼 해결하기도 어렵다.
업계에서는 이 '부팅 속도'를 잡기 위해 매순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컴퓨터를 키기 위한 부팅 과정은 여전히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컴퓨터는 부팅하는데 1500억개 이상의 크고 작은 명령 프로세스를 수행한다. 초당 30억개 가량의 명령이 CPU(중앙처리장치)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결과 부팅 속도의 문제는 컴퓨터를 구성하고 있는 프로세서나 메모리, 하드디스크, 관련 소프트웨어 등 요소자원과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20년 전의 DOS(디스크운영체제) 시대와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컴퓨터의 구동을 위한 BIOS(바이오스), OS 및 애플리케이션이 복잡해지고 무거워졌고 주변 장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필요할 때 빠르게 켜고, 끌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성능을 가지고도 매우 제한된 용도로만 사용된다. 2000년대 초기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상용화된 인터넷 전화(VoIP)가 단적인 사례다.
이 인터넷 전화는 잠시 유행을 타기도 했지만 결국 대중화되지 못하고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바로 '부팅 시간' 때문에 필요할 때 즉시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늘날 널리 보급되고 있는 인터넷전화는 컴퓨터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기존 전화기에 인터넷 통신 형태를 가진 별도의 장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컴퓨터 부팅 시간의 문제가 관련 산업의 성패와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도 부팅의 속도는 산업계에 요원한 과제다.
느린 부팅 속도 때문에 컴퓨터를 켜놓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대기전력 소비의 문제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한국형 대기전력 감축 프로그램인 '대기전력 1W 프로그램'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중급발전소 1개의 전력 생산량과 맞먹는 연간 4600GWh, 금액으로는 약 5000억원이 대기전력으로 낭비되고 있다.
PC나 서버용 컴퓨터 등 범용 컴퓨터 외에 수많은 기기들이 임베디드 컴퓨팅(embedded system)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다. 이들 임베디드 기기도 부팅 시간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TV는 더 이상 브라운관 시절과 달리 전원을 누르는 즉시 켜지지 않는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는 스위치를 켠 다음 최소 십여초가 지나야 사용자는 무엇인가를 조작할 수 있다.
차량 네비게이션은 지나치게 긴 워밍업 시간을 필요로 해서 운전자의 출발을 지연시킨다. 게임 마니아들은 게임콘솔을 초기 구동하는 시간 때문에 항상 켜두기도 한다.
심지어 IPTV, 케이블TV 등 셋톱박스를 통해 서비스하는 업체들은 한번 끄면 부팅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집에 설치한 셋톱박스를 아예 끄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컴퓨터를 대신해 인터넷 검색을 가장 많이 쓰고 있지만, 정작 스마트폰의 부팅 시간도 40초 이상 소요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팅 시간은 접하는 기기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첫 인상으로 남는다. 매번 켤 때마다 지루함, 답답함과 싸워야 하는 소비자는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제조사들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노력 대신 임시방편으로 전력을 잡아먹는 대기모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적 문제로 인한 비용을 소비자와 사회가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도전과 기회가 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전자기기가 복잡해지고 다양화 해지만큼 부팅 속도는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며 "이미 부팅시간 단축시키는 다양한 기술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가 부팅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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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