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연춘 기자] "원안대로 처리하자" "동의한다" "재청한다"
A증권사의 지난 6월5일 주총장, "그대로 처리하자"는 주도적인 발언에 참석자들이 "동의"와 "재청"을 연거푸 쏟아냈다.
수많은 안건들이 일사천리로 의결됐다. 어떤 참석자는 "시간이 없으니 모든 안건에 동의한다"며 빨리 끝나기를 재촉하기도 했다. 40여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 기업의 1년 농사가 단 한 건의 불만도 없이 마무리 됐다.
3월 결산법인인 여의도 증권가 '주총의 계절'이 저물고 있다. 지난 5월25일부터 6월5일까지 이미 20여곳의 증권사가 주총을 끝내고 있다.
한 회기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 시작하는 주총은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매듭의 시간'이다. 주주들이 참여한 가운데 경영진의 능력이 평가되고, 신임 여부가 결정된다. 또 기업의 굵직한 경영방향이 정해지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주총 진행현장을 보노라면 '짜고 치는 고스톱'을 연상케한다. 여의도 증권가 역시 별반 다르지는 않아 지극히 형식적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주주보다 회사 직원들이 더 많이 참석하는 주총장의 모습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않다. 심지어 주총장은 주주가 참여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사를 위한 방패막이 행사같은 느낌마저 드는 게 현실이다.
주총 현장에 기업 측이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입 바른 소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한다.
지난 5월25일 B증권사 주총장.
단 1명의 소액주주 때문이었는 지 여느 증권사 주총장과는 사뭇 달랐다. 주총장에서 이 소액주주는 "이의 있습니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곤 주총 진행자에게 해당 증권사와 대표이사의 경영 성적에 대한 질타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단 한 명이 보여준 소액주주의 '입바른 소리'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다른 주주 참석자들로부터 저지를 당한 그는 더 이상의 발언을 포기하고 씁쓸하게 퇴장했다. 퇴장한 소액주주는 주총의 진행을 훼방 놓았다는 비난을 받으며 주총꾼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게 '우리의 주총 현주소'이다.
주주들 눈에는 B증권사의 경영이 실제로 양호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다만 중고품 '땡처리' 하듯 주총 전 과정을 순식간에 넘겨버리는 이날 모습을 보면서, 주주들이 과연 B증권사에 대한 평가나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다.
올해 증권사들의 주총뿐만이 아니라 해마다 되풀이 되는 주총을 지켜보면 '기업들이 주총일을 어느 특정일로 짜맞춘 듯 잡아둔 것은 언론과 세인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작전 같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실제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주총일이 특정일에 집중되면 나름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눈엣가시 같은 소액주주운동의 집중 타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언론의 집중적 관심에서도 살짝 비껴나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주주들의 불참률을 높일 수도 있다.
실적이 악화되었음에도 주총장에서 주주들의 비판 목소리가 보이지않는 현상. '일사천리'로 주총을 끝내고 마는 '속전속결'의 주총 풍경. 이같은 '구시대적 풍토'속에서 과연 글로벌 증권사로의 도약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주주들로부터 실적에 대해 엄정한 평가를 받고, 또 이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마련될 때 비로소 글로벌증권사의 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왕의 귀환" 주식 최고의 별들이 한자리에 -독새,길상,유창범,윤종민...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이연춘 기자 (lyc@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