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들은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경색된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는 면했지만, 아직 이 불어난 유동성을 회수할 조짐은 없다. 2010년 전후 인플레 우려가 제기되면서 유동성 회수, 혹은 '출구전략' 논의가 활발해지는 듯 했으나 유로존 채무 위기가 발생하면서 논의가 자취를 감추면서 선진국의 2차 완화정책과 추가 구제금융이 단행되었다. 위기 발생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여전히 이 보조장치를 달고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불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의 원활한 배분 역할을 왜곡하고 상품시장의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다시 한번 인플레이션 망령이 등장하고 있다. 다시 한번 글로벌 유동성의 실체와 그 위험을 둘러싼 논쟁을 점검할 때다.<편집자 註>
[뉴스핌=김동호 기자] 미국의 3차 양적 완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여전한 가운데 유럽중앙은행과 영국의 영란은행, 일본은행 등 세계 주요국의 은행들 역시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증시를 비롯한 원자재 시장은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한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 시장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의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과 함께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회복되며 미국 국채 가격은 더욱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시장 일각에선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며 미 국채의 투자 리스크를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최근 글로벌 유동성 증가와 안전자산 공급 부족 현상을 감안할때 미 국채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자산이며, 사실상 제로(0) 수준인 금리와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부채 리스크를 고려하면 미 국채에 투자하는 등 방어적인 전략 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美 국채, 하락장 오나? 위험선호↑
최근 미국 국채시장은 지난 2006년 이후 최장기 하락장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의 주식과 국채 시장이 동반 강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은 여전히 저평가됐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국채에 대해선 버블 논란이 일었다.
이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국채 등 안전자산에서 본격적으로 위험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이러한 미 국채 가격의 하락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하락 요인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미국 경기 전망 낙관을 꼽고 있다. 향후 경기에 대한 낙관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연준이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기대했던 시기보다는 양적완화가 늦춰질 것이라는 공감대가 국채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손버그인베스트먼트의 제이슨 브래디 펀드매니저는 "연준의 경기 전망은 사실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면서도 "투자자들은 뭔가 강력한 조치를 기대하는 데 반해 연준의 성명서 내용은 이에 못 미친 것이 국채 가격 하락의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CRT캐피탈 그룹의 데이비드 아더 전략가 역시 "시장 참가자들이 국채 가격 하락을 겨냥해 단기 베팅에 나섰다"며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의 가격 움직임만을 근거로 (국채 가격의) 추세 전환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이 올해 4%까지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경제 지표의 개선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시장의 기대만큼 가까운 시일 안에 연준의 양적완화(QE3)가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더글러스레인 앤드 어소시어츠의 사라트 세디 펀드매니저는 미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이 4%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어 "경기지표와 연준의 시그널 뿐 아니라 잠재적인 투자수익률을 보더라도 국채의 투자 매력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S&P500 지수의 배당수익률이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웃돌고, 3~5년 후를 내다볼 때 주식의 투자 가치가 훨씬 크다는 분석이다.
이 외에도 올해 초 '금융 억압'에 대한 우려가 번지면서 미 국채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부각되는 양상이다.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던 레온 쿠퍼만 오메가 어드바이저스 대표는 "금융 리프레션 조짐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 미국 국채를 매입할 경우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률이 2~3%에 이르는 데다 세금까지 감안하면 수익률 2% 내외의 국채는 사들이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 역시 "현재 미국 국채시장은 자유시장으로 보기 어려우며, 전적으로 정책 결정자들의 손에 휘둘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지금은 금융 리프레션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경기 강한 반등 어려워, 美 국채 여전히 '매력적'
반면 여전히 미 국채의 투자매력에 대해 호평하며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최근 일부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며 경기가 개선되는 듯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강한 성장으로의 회복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연준의 양적완화 역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국채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
특히 최근의 국채 가격 급락이 추세적인 전환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바클레이스 캐피탈의 래리 캔터 리서치 헤드는 "최근 몇 달 동안 주가가 강한 랠리를 보이는 동시에 국채 매도가 나오지 않은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며 "국채 시장이 추세적인 하락에 접어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전자산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이 제한된 만큼 미 국채 매도에도 곧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위기 전 안전자산으로 꼽혔던 패니메이와 이탈리아 국채 등이 위험자산으로 탈바꿈하는 등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선택의 폭은 지극히 좁다고 그는 강조했다.
RBS의 윌리엄 오도넬 국채 전략가 역시 "미 국채를 매입하려는 투자 수요가 도처에 깔려 있다"며 "글로벌 마켓에 유동성이 넘쳐나지만 투자 자산이 제한적인 시장 상황도 미 국채 매입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칼 란츠 채권 전략가는 "투자자들은 안정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싶어한다"며 "달러화 표시 자산을 대신할 만한 대체 자산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해의 경우 유럽 투자자들은 대거 미 국채 투자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위기로 인해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미 재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룩셈부르크가 미 국채 보유량을 74% 확대해 1506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스위스의 보유량은 33% 늘어난 1425억 달러로 집계됐다. 벨기에의 경우 1352억 달러로 보유해, 기존보다 규모를 네 배 이상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미 국채의 수익률 급등세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소시에떼 제네랄은 올 연말까지 미국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이 2.50~2.75%를 넘어서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경제 지표 개선을 인정하더라도 현 수준의 경기 회복으로는 수익률 상승에 한계가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채권왕으로 잘 알려진 빌 그로스 핌코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지난 2월말 경 리스크 자산 보다는 미 국채와 모기지 담보부 증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그로스는 미 국채와 관련해 상승 랠리가 끝났고 지난해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도 비중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채 투자 금액이 2505억 달러에 달해 2010년 7월 이후 최대 수준임을 강조했다.
그로스는 이어 "상대적으로 믿을만하고 또 안전한 투자소득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 1월 그로스는 신흥시장과 같은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미국채 투자 비중을 38%로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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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김동호 기자 (goodh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