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봉 명예회장은 '금융보국'의 신념아래 지난 50여 년 동안 오로지 금융외길만을 걸으며 한국자본시장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월급쟁이 은행원에서 출발해 대신증권을 비롯해 대신생명보험, 대신경제연구소,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정보통신, 대신송촌문화재단, 대신팩토링 등 대신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킨 '대신그룹 성공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양 명예회장은 '증권산업계의 선구자' 로 평가받는 거목이다. 그의 입지전적인 삶은 많은 금융인들의 귀감이 됐다.
아호가 송촌(松村)으로, 어려서부터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그는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거상(巨商)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게 된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후 現 한국은행의 전신이었던 조선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계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사업가에 대한 열망은 그를 안정된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사업이었던 양조사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그는 모든 자산을 팔아 부채를 말끔히 청산하면서 '사업가로서의 신용'을 끝까지 지켰다.
'신용'에 대한 남다른 소신은 그 이후에도 그의 변함없는 철학이 되었고 지금의 성공을 이루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한일은행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 초 그는 단자사를 설립하면서 금융업 경영자로 나서게 된다.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한 후 그는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한 후 대신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 대신금융그룹의 기틀을 세운다.
그는 중요한 시기마다 55년간의 금융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판단을 통해 수많은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기지를 발휘해 왔다.
1990년대 초반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대신증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뀌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그의 탁월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고인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이를 통해 '대신증권 최초는 곧 증권업계 최초'라는 등식을 성립시켜오며 한국 증권산업을 선도해 왔다.
그는 초기 집중투자를 통해 타사보다 먼저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1999년 이후 온라인거래의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된다.
이후 그는 증권산업의 발빠른 변화상을 차세대들이 컨트롤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난 2001년 현업에서 은퇴를 한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고 양재봉 명예회장은 증권산업과 대신증권, 후학에 대한 사랑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는 게 그를 아는 모든이들의 평가다. 대신송촌문화재단을 통한 후학에 대한 장학사업과 소외계층에 대한 조용한 지원은 고인이 가장 애착을 가진 '사업'이었다.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 뉴스핌 Zero쿠폰 탄생! 명품증권방송 최저가 + 주식매매수수료 무료”
[뉴스핌 Newspim]장순환 기자 (circlejang@newspi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