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의영기자] "1999년 증시가 IT종목들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쭉쭉 올라갈 때 마음 고생 많았습니다. 전 하나도 사지 않았거든요"
이춘수 슈프림에셋투자자문 대표(사진)의 투자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IT 벤처 붐이 일었던 90년대 말 IT종목을 자신이 맡고 있던 펀드에 거의 편입하지 않았다. 주식운용을 하는 입장임을 감안하면 다소 무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앞으로 비전은 있을지 몰라도 현재로선 검증된 부분이 없어 투자를 안했습니다. 호랑이는 굶어죽을지언정 풀을 먹진 않잖아요? 괜히 덩달아 좇다가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잖아요"
다른 운용사 및 펀드와 수익률 격차가 벌어지며 고객들로 항의도 많이 받았지만 그는 버텼다. 결국 버블이 꺼진 후에 그의 진가는 드러났다. 지금도 그는 방향성은 맞지만 실적이 검증되지 않은 몇몇 업종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 대표가 이렇게 투자시 신중함을 보이는 데는 대한투자신탁 시절 팀장이었던 고(故) 안종현 전 나이스채권평가 대표의 영향이 컸다는 고백이다.
"당시 안 전 대표는 기업 재무제표를 꼼꼼히 확인해 실적개선에 대한 확신이 들 경우에만 투자를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이 대표는 고려대 경제학과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987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국내 경제동향 등 매크로 측면을 맡아 1년 정도 근무하다 1988년 대한투자신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당시 증권붐이 일면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증권회사에 간다고 했다"며 "그때 영향을 받아 우연찮게 지원한 곳이 대한투자신탁"이라고 멋쩍어했다.
얼떨결에 증권가로 뛰어든 그는 1988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투자신탁에서 채권운용부, 주식운용부 등을 거치며 운용경력을 쌓았다.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프로이드 리'라고 불리는 등 증권업계의 브레인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로이드 리'라는 별명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할 때 동료 펀드매니저가 붙여줬다. 평소 펀드 운용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하던 이 대표 스타일 때문이다. 어떤 종목이 뜬다고 얘기가 나올 때 보면 이 대표는 이미 펀드에 편입했고, 그 종목이 많이 떨어져 걱정스러워 물어보면 이미 팔았다는 것.
이 때문에 그는 그는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일례로 대한투자신탁이 운용사와 증권사로 분리되기 전인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연속 최연소 펀드매니저로 꼽히기도했다.
이러한 경험을 발판으로 2007년 10월 슈프림에셋투자자문을 설립, 200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대한투자신탁 입사 이래 20년이 넘는 운용경력이 새로운 도전을 한 셈이다.
"한국 경제와 기업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크게 달라졌어요. 증시도 이를 기점으로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되고, 이전에는 업종 중심으로 주가가 움직이다가 이후에는 기업 중심으로 바뀌었죠"
운용 경험이 많은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으로 들어오면서 기업 실적에 따라 주가에 차별화가 진행됐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대표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을 신뢰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IT 일류기업이지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신사업을 계속 추진 중이고, LG화학의 경우 과거 2만원도 채 안되던 주가가 4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올랐다"면서 "이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그만큼 생겼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물론 내년 이후 증시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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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황의영 기자 (apex@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