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에 설립된 한국은행은 올해 환갑을 맞이하면서 ‘물가안정’에 더해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을 과제로 안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31일과 1일 양일간 열린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의 주제 역시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Changing Role of Central Banks)'로 잡았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급 인사들과 국제금융기구의 주요인사, 저명학자들을 초대해 한은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한국은행의 가장 큰 이슈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이다.
지난 1월 11년만에 부활한 정부의 열석발언권을 비롯해, 시시때때로 터져나오는 금리정책에 대한 외부 간섭은 한은을 남대문 출장소로 돌려놓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도 낳고 있다
◆ 한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꾀하다!
지난 1950년 4월 18일과 21일 찬반토의를 거쳐 한국은행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그해 6월 12일 마침내 한국은행은 업무를 개시했다.
당시 한은의 역할은 ▲ 은행권의 발행 ▲ 은행 의 은행 및 정부의 은행 ▲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 ▲ 은행감독 및 외국환업무 등이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행의 업무에는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일정한 변화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7년말 한국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은행감독업무가 ‘통합 금융감독원’으로 넘어 갔다.
그렇지만 ▲ 지급결제제도의 운영 관리 ▲ 국고금 관리 및 국채 의 발행·상환 ▲ 대외지급준비자산 관리 ▲ 금융안정 분석 및 금융기관 검사 ▲ 경제조사 및 통계편제 등이 추가됐다.
또 지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 이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은의 설립목적에 물가안정과 함께 금융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은 역시 창립 60주년을 맞아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중앙은행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마당을 마련해 이 논의를 공론화했다.
60주년이 되는 해에 한은의 새로운 얼굴이 된 김중수 총재가 취임사를 통해 ‘한은의 위상 제고’를 강조하고 당부한 점은 이런 역할 변화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듯한 모습이었다.
김중수 총재는 이번 60주년 기념사에서도 "한국은행이 21세기 선진 중앙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은행의 역할 변화가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중수 총재는 "지난 5월 31일 개최된 창립 6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의 주제를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Changing Role of Central Banks)' 로 정한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환경에서 한국은행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무엇보다 김중수 총재가 강조한 것은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김중수 총재의 이런 의견에 주요국 총재들 역시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 중앙은행의 크리스찬 노이어(Christian Noyer) 총재는 기조연설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통화정책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자산가격이나 신용상태가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융안정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로 ECB는 Euopean Risk and Stability Board를 통해 금융시장의 감독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중앙은행은 다양한 정책수단 개발을 통해 금융안정을 도모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칠레중앙은행의 호세 데 그레고리오(Jose De Gregorio) 총재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책무에 대한 해이와 감독기관의 거시금융안정에 대한 불완전한 모니터링도 크게 작용했다"고 진단하고 "중앙은행의 목표로 자산가격 안정과 금융취약성 완화 등을 포괄하는 금융안정(financial stability) 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통화정책 수단을 사용할 경우 두 목표가 상충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금리 이외의 추가적인 통 화정책 수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연준의 벤 버냉키 의장 역시 기조연설에서 "위기 때 발생한 자본유출과 최근의 자본유입 등에 대한 대책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며 "금융개혁은 중앙은행이 직 면한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은의 통화정책의 목표에 금융안정을 추가하는 문제는 간단치만은 않다.
실제로 지난 금융위기 이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은 한은에 제한적인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하고 설립목적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도 포함시키는 한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의에 상정됐던 이 법안은 국회정무위원회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금융감독 체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한은법 개정안 처리를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법사위 통과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의 중심에서는 한은의 목표에 금융안정이 추가되고, 필요시 금융기관의 조사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됐지만 상황을 모면하고 나니 또다시 '제 밥그릇 챙기기'만 바쁘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될 수 없는 가치
한국은행의 이성태 전 총재는 퇴임을 앞두고 "금융위기가 국민들에 게는 고통을 안겨줬지만 한은의 역할에 대해서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 금융위기로 한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적극적 금리인하를 통해 금융위기 극복에 그 역할을 다한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정책에 대한 독립성 문제였다.
특히, 현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빈번하게 기준금리에 대한 발언을 쏟아 놓은 점은, 시장을 흔들리게 했고, 여론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한은의 독립성 문제가 정점에 달했던 시점은 11년만에 기획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이 부활했던 올해 초이다.
해외IB들은 새로운 총재가 부임하는 4월부터 한은의 통화정책은 청와대가 이끌 것이라는 비아냥(?)을 내놓기도 했다.
또 역대 최고의 총재였으나 정부하고는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은 이성태 총재의 퇴임 이후 김중수 총재가 새롭게 취임하는 과정도 같은 이유에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일각에서는 한은 직원들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문제 삼기도 한다. 한은법 개정 문제는 한은의 본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통화신용정책의 문제도 결국은 한은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고 법으로 충분히 그들의 권한이 보장돼 있지만, 여론이나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을 펼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한은의 독립성은 한은 내부에서 적극 나서서 해결할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무엇보다 김중수 총재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총재는 본인을 둘러싼 한은의 독립성 논란을 의식한 듯 취임사에서 "한은의 독립성은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생각이 밖으로 보여질 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김중수호(號)가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제 겨우 두 달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김중수 총재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일러 보인다.
다만 김중수 총재가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훼손될 수 없는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의 가치를 잘 살려 앞으로 한은의 미래 60년을 보장하는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