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나 금리를 포함해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고 ‘공식 및 공개’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금통위원이 학회 주관의 포럼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현재 경기상황에 대한 판단이 어떨지, 기준금리에 대해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당시 현장에 참석한 이들은 ‘어떻게, 왜 왔을까?‘하는 의아함과 궁금증에 갸웃거리면서도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은 강명헌 위원이 처음에 작심한 듯 쏟아놓은 ‘말들’이었다.
강 위원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동안 금통위원이 외부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금기로 여겼다"며 "그것이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저는 어떻게 보면 결심을 하고 이 자리에 섰다"며 "미국의 Fed(연준)나 유럽 등도 보면 우리나라의 금통위원에 해당하는 분이 각자의 생각을 그때그때 말씀을 하는데, 이는 시장에 혼란을 줄 수도 있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걸러져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금통위원들이 대내외에서 발언하는 것은 자유로운 권리이자 권한에 속하며 ‘강제적’ 금기(禁忌)는 아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각종의 ‘노이즈’(雜音)를 줄여 혼란상을 주지 말자는 취지에서, 금통위 의장이자 한은 총재를 통해 이른바 ‘발언의 창구단일화’(One Voice)를 해 왔다.
그런 점에서 ‘불문율’처럼 ‘암묵적 금기’로 여겨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박승 총재 시절 금통위 때마다 총재의 발언이 오해를 낳은 적이 많아 설화(舌禍)로 이어지며 통화정책의 혼란상을 자초했다는 자기비판의 산물로서 자기계율이 된 셈이다.
또 이같은 한은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시장이나 국민과 소통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정책의 신뢰성을 얻게 된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선택이면서도, 오해를 낳은 일을 최소화하자는 뜻에서 적극적인 전략이기보다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한국 회화, 특히 조선시대 문인회화의 특징인 ‘여백의 미’(餘白의 美)를 사대부의 신언서판(身言書判) 행동양식으로 확장시켜 ‘침묵의 여백’을 찬사하며 ‘발언의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것도 같다.
이성태 총재 스스로도 다른 연설 등의 외부 활동을 줄이는 가운데서도 한달에 한번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 결정 내용이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기자들한테도 시간을 충분히 주어 국민들이나 시장, 언론과 소통하는 데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통위 의장을 제외한 금통위원들의 발언이나 입장은 ‘금통위 의사록’에도 굳이 소신 발언이 아니면 ‘익명’ 속에 있었으며, 외부 발언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면서도 입장이나 견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외부에서 볼 때는 본의는 아니겠지만, 사실상 ‘침묵의 동굴’에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 금융통화위원도 시장과 대화해야 투명성 강화
실제로 이런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강명헌 위원의 ‘금기깨기’를 위한 외부 공개 발언이나 포럼 참석 등에 대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통위원들과 시장이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여하튼 금융의 글로벌화, 복잡성이 중층화되는 경제세계에 대한 고급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 당일 한은 총재가 대표로 나서서 질의응답에 응하다 보니 총재의 발언이 개인의 생각인지, 금통위원의 생각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관련해서 통화정책 방향 자료를 좀더 자세히 내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온다.
시장에서 금통위원 각자의 의견을 접하는 경우는 어찌 보면 금통위 6주 후에 공개되는 의사록이 전부다. 6주라는 시차가 존재하는 데다 익명으로 처리되다 보니 누구의 의견인지도 알기 어렵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결국 시장에서는 금통위원을 추천한 기관의 성향으로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추측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금통위원에게도 불편하다.
한 금통위원은 "금통위원들의 성향을 추천기관에 준해 분석해서 많이들 말한다"면서 "금통위원이라는 책임감이 엄청난데 누군가의 입장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추천기관의 입장이나 대통령과의 친분이 판단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설명으로 시장에서의 오해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금통위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예상과 다른 의견을 보여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당연히 온건한 발언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던 위원이 강경 발언을 쏟아낸 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종종 경험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성태 한은 총재도, 강명헌 위원도 강조했듯이 금융통화위원회는 7명으로 구성돼 의견을 수렴하는 기관임에도 마치 1인에 힘이 쏠린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7명이 각자 다양한 루트로 발언을 쏟아낼 경우 시장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때문에 금통위원들의 발언이나 행동이 자제돼 온 것도 사실이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하는 방법상의 문제는 차후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금통위 기자간담회에 금통위원들이 직접 참석한다든가 특정 위원처럼 1년에 2~3회 정도 외부 공식 강연을 통해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도 없애고, 통화정책에 대한 투명성도 확보할 뿐더러 그토록 강조해 온 시장과도 더욱 열린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로서 근대계몽주의의 선구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는 게 힘’이라고 말해 지식정보화시대에는 ‘지식이 곧 권력’임을 주장하듯이, 현대적 의미로서는 ‘정보의 권력화나 사유화’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다른 의미에서는 금통위원들한테 주어지는 각종의 다차원적 정보들은 또한 국민들을 위한 것이므로 폐쇄적이 되는 것보다는 포트폴리오적 자원배분을 통해 분산하고, 상호소통을 다양하고 다차원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서 이른바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에 빠지지 않고,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소통을 통해 완성해 나가는 것이 현대정보사회에도 부합하며, 실험할 수 없는 인간 사회에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