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지원 방안에 대한 기대가 강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것이 실망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의 과도한 기대나 임시적인 반응은 사태의 심각성이나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모르는 근시안적인 반응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11일(현지시간) EU 정상들은 브뤼셀에서 개최한 특별 정상회담에서 '필요할 경우' 그리스를 돕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하지만 그리스가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구체안이 나올 수는 없는 상황인데, 금융시장은 그 세부안이 없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이번 그리스에 대한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유로화는 주요통화 대비로 전반적인 약세를 면치 못했고, 그리스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주가는 하락하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이날 그리스 지원 소식에도 불구하고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자 BNP파리바의 선임 외환전략가는 "최근 그리스 구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사적인 지원 약속만 나오자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 EU, 그리스 문제 확산 차단 의지
이번에 EU가 그리스에 대해 지원을 약속한 것은 이례적인 조치인데, 무엇보다 이번 문제가 다른 유로존 국가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의지가 강하다.
구체화된 방안이 아닌 수사적인 지원 약속에 그친 것은 그리스가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 롬파위 EU 상임의장은 이날 정상회담을 앞두고 바호주 유럽위원회(EC) 위원장과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독일 메르켈 총리, 유럽중앙은행(ECB) 트리셰 총재,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등과 함께 사전 협의했다. 이번 EU의 지원은 재정 부담이 큰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는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판 롬파위 상임의장 이어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유럽이 그리스에 대해 '분명하게 일치된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리스가 공식적인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따라서 EU는 현 시점에서 분명한 약속을 할 수 없지만 정치적 성명을 통해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덧붙였다.
유로존 정상들은 이날 발표된 성명서를 통해 "회원국들은 유로지역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가능한 조치들을 규명하고 이들 조치들에 대해 공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내 투기세력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상들은 아울러 그리스에 대해서도 예산적자 감축을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이행하도록 요구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는 EU의 일부며 홀로 남게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러나 (EU에는) 지켜야할 규정이 있고, (그리스가) 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 롬파위 의장도 그리스가 강력한 예산적자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유럽 집행위원회가 유럽중앙은행과 함께 그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이 나온 뒤 ECB 정책 이사인 에발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그리스 리스크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원래 구제를 금지하고 있는 EU가 그리스를 지원할 경우 발생하는 '유로존'에 대한 신뢰 손상의 문제는 이번 사태가 제어 불가능한 상황에 까지 이르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타격만큼 크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지원은 어떤 형태라도 엄격한 요건 아래서 한시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며 그 지원에 이용되는 재원의 출자는 EU 및 회원국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구체 방안은 다음 주에 협의
정상회담에 앞서 EU 소식통들은 그리스에 대한 지원 세부안이 다음주 EU 재무장관 회동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전했다.
금융시장은 그리스의 차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출을 지원하거나 국채를 매입하고 채무보증에 나서는 방식 등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EU 정상들은 다음 주 열리는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지원 세부안이 협의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 때까지는 '필요시 지원'이란 정상들의 약속으로 버티기로 한 셈이다. 또 나아가 실제로는 지원책을 실행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바호주 EC 위원장은 "그리스 정부가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이는 지원이 필요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억측은 안 된다"고 말했다.
시장 분석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우니크레디트의 주식 분석가는 "이번 EU 정상의 발표에서 실질적인 합의는 내용이 전혀 없다"면서, "표면적인 합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합의라는 것을 인식시키려면 세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폴란드 총리는 그리스 지원 방안에 대해 융자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또 독일 연립여당 관계자는 독일 정책금융기관인 KfW가 채권 발행한 뒤 이 자금으로 그리스 국채를 매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의 국채를 인수하면 KfW가 이를 보증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 EU 정상들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인 지원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필요할 경우 그리스의 재정 개혁 등을 기술적인 면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동안 일부 IMF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지원을 기술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EU의 경우 감시 강화 기능 등을 통해 정식 지원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그리스 지원, '도덕적 해이' 문제 유발하지 않도록 해야
그리스 지원책이 세부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결과에 따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따라서 EU 회원국들은 그리스를 지원하더라도 도덕적 해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충분히 강력한 구조조정 목표와 조건을 부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로존 회원국은 높은 수준의 재정 건전성을 인정받았지만, 그리스 위기에 대해 지원하게 될 경우 이런 정책적 원칙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위험이 있다.
문제는 너무 강한 구조조정을 강요할 경우 그리스 금융권을 비롯한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수 있고, 따라서 정치권이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정책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에 있다.
BNP파리바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구제 금융은 모럴해저드를 의미한다"며 "그리스를 비롯한 주요 재정위기 국가들은 유로존이라는 우산 속에서 철저한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그리스의 재정 위기 문제는 일개 국가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오히려 유럽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씨티그룹의 마크 스코필드 글로벌 금리전략 부문 대표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상황을 가볍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따라서 채무보증 계획은 그리스 정부가 택하려는 편한 해결책만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이같은 채무보증 계획을 통해 단기적인 시간을 번 뒤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리스를 지원하려는 주요국들의 경우,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질 경우 이에 대해 알면서도 상황이 악화하도록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모건스탠리의 로렌스 머트킨 유럽 수석금리 전략가는 "투자자들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 구제금융의 예로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구제금융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IMF의 구제금융은 꼭 필요한 수준에서 구제금융을 지원한다"며 "하지만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비용과 함께 정치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