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은법 개정으로 열석발언권이 만들어진 이래 1999년 6월을 마지막으로 10년 6개월동안 단 한차례도 열석발언권을 행사하지 않을 정도로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행 한국은행법 제 91조는 "기획재정부 차관 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열석하여 발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기획재정부 차관은 금리를 포함해 경제상황과 관련해 '포괄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위원회 소관 사항에 대해서만 '제한된' 의견만 발언할 수 있다.
물론 재정부 차관이나 금융위 부위원장 모두 금통위 의결권은 없다.
이날 한은 이성태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열석발언권'과 향후 금통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자제했다. 다만 이 총재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면서도 "구태여 보탠다면 금통위 의사결정은 금통위 고유권한이고 금통위원들 7명이서 소화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 기획재정부, 11년만에 다시 한은 독립성 논란의 한복판에 서다
이번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해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 1997년 IMF 위기 이후 한은법 개정 파동 이후 10여년 만에, 그것도 글로벌 위기 국면에서 재연됐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경제금융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이며 척박한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제자리 걸음을 걸었지 않았느냐는, 또한 너무 후퇴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오는 11월 세계 주요국들의 정상들이 모여 글로벌 위기를 타개하고 글로벌 경제금융 시스템의 안정적 미래를 창출하려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격 향상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후진적인 양태가 드러남으로써 세계시민들의 평가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가 법적으로 보장된 정당한 권리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열석발언권을 11년 가까이 행사를 하지 않은 것은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로 비춰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정부의 '금통위 열석발언권 행사 정례화' 결정 소식 전해지자마자 한국은행 금통위의 고유권한인 금리결정에 관여하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재정부는 그간 금융위에 쏠렸던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이날 금융 노조와 한은 노조 20여명은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에 '관치금융'의 의도가 있다고 비난하면서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독립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침 재정부 허경욱 제1차관의 한은 도착을 막아서며 시위를 벌였다.
경제개혁연대도 논평을 통해 " 상반기 출구전략 시행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 한은법 개정 등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는 한국은행 길들이기와 다름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회의 참석을 중단시키고 관치금융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도 "기획재정부 차관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참석은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 취지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정부는 한국은행 독립성 인정하고 재정부의 금통위 회의 참석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정책 공조를 위해 한은과 협의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금통위가 아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은, 재정부 등 금융관련 유관기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적절한 모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정책을 공조하는 것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정부의 통화정책을 실효성 있게 논의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 금리인상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재경부차관의 열석발언권 행사가 금통위 독립권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발언권 행사를 통한 재정부 입장을 전달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금통위원들에게는 의사전달 수준을 넘어서 행정부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증권사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와 청와대의 정책방향이 중앙은행과 금통위 위원에게 전달되는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며 "정책금리 인상시기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 재정부, "관치부활, 말도 안돼, 허차관 발언 공표되면 오해 풀릴 것"
하지만 재정부는 이번 열석발언권 행사을 통한 '관치금융 부활'이라는 우려에 대해 "말도 안되는 얘기"라는 반응이다.
국회 재정위원회에서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해 처음 지적이 나왔고 국회요구를 검토하면서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는 일각의 규정은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다는 주장이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논의할 때 재정위 위원들이 열석발언권이 있는데도 행사하지 않는다고 질책을 하고 적극적으로 참석할 것을 권고했다"며 "국회 답변 과정에서 처음으로 열석발언권 행사를 신중히 고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열석발언권 행사을 관치금융과 연결시킨다면 국회에서 재정위원회에서 논의된 앞뒤 전후를 고려하지 않은 얘기"라며 "허경욱 차관의 금통위 발언이 공개되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도 "시장의 반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며 "기본적인 취지는 경제를 잘 해보자는 것이고 금통위의 고유영역인 금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그는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되면 밝혀질 것"이라며 "정부는 정부의 경제정책운영 방향에 대해 좀 더 설명하려는 취지에서 참석하는 것이고, 시장의 반응에 대해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은 오히려 오해를 키우는 처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재정부 허경욱 차관도 이번 열석발언권 행사가 통화정책 개입으로 연결되는 것은 오해이며 한국은행과의 공조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허 차관은 한은 금통위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본적으로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명백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위임돼 있다는 데 정부와 한은 모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허 차관은 이어 "정부의 의도가 오해되고 있는 면이 있다"며 "정책당국 간 정책공조를 강화할 필요성이 크게 부각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열석발언권을 행사했다"고 정부의 통화정책 개입 의혹을 차단했다.
11년만에 부활된 기획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 행사가 '관치금융의 부활'의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기우'에 그칠지 앞으로도 시장의 관심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